모자와 선글라스

내 멋에 살자

by 낙서인간

저는 모자를 좋아합니다. 야구 모자를 아무렇게나 푹 눌러쓰고 다니는 사람들 모습이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모자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머리 모양 때문인지 얼굴 모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모자를 쓰면 인상이 납작해진다고 해야할까요. 조화가 어긋난 느낌이 듭니다. 아내는 모자가 잘 어울립니다. 캡 Cap이든 햇 Hat이든 모자를 쓰면 더 귀여워집니다. 얼굴이 동그랗고 짱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다 쇼핑몰에 가게 되면 제 발길은 어느새 모자 코너를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모자를 슬쩍 써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혹시나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아내는 안타까운 미소를 나에게 보냅니다.


이런 상황이 역전되는 곳이 있습니다. 여름 해변과 안경점입니다. 선글라스는 내 편입니다. 동그랗든 각이 졌든 웬만한 선글라스는 다 어울립니다. 탐 크루즈가 부럽지 않습니다. 아내가 선글라스를 쓰면,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인상이 더 어려 보입니다. 안경점에서 요것조것 골라 써보는 아내에게 '엄마 선글라스 몰래 쓴 중학생 같다'며 농을 부립니다. 저는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멋지고 부럽습니다. 옷장 구석에는 아내 몰래 사놓고 쓰지 않는 내 모자가 하나 둘 늘어납니다.


사람 마음은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흔하고 덜 멋있게 느껴집니다. 내게 없는 것, 내가 못하는 것은 아름답고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것만 가지면, 그것만 잘하게 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더라도,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싶다! 자크 라캉이 말했던가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래서 심리학자와 의사들은 충고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라. 당신이 잘하는 것,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해라. 장점을 키우고 발전시켜라.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모자가 어울리지 않고 선글라스가 어울린다면, 모자에 미련을 두지 말고 멋진 선글라스만 쓰고 만족하면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공하고 행복을 찾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띠지를 두르고 있는 자기 계발서에는 이런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찾은 수천 가지 사례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언이 수없이 많은 책을 통해 계속 변주되면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방법이 대단히 어렵다는 반증은 아닐까요.


세상의 시선을 초월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도 괜찮습니다. 모자가 안 어울리더라도 모자를 좋아한다면 당당하게 쓰고 다니면 됩니다. 어울리는 모자를 찾거나 정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내 멋에 살면 됩니다.


최악은, 남들 말을 듣고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 모자를 사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모자인 줄 알아?'라는 태도로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혹은 멋진 모자를 쓴 나를 알아봐주기를 바라며 관심을 갈구하는 태도입니다. 이래서야 도무지 행복해질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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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설명: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을 종이에 과슈로 그려보았습니다. 미 서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근방에 있는 브라이스, 자이언, 엔텔롭, 그랜드 캐니언 가운데 어디가 제일 멋있냐며 부질없는 비교를 하곤 하는데요. 왜 순위를 매기고 경쟁을 붙여야 하는 걸까요. 캐니언에 가는 분들은 각 캐니언마다 잘 마련돼 있는 트레일 코스를 반드시 걸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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