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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Oct 23. 2021

별일 없이 잘 살게 될 테니,

2019년 10월 1일은 퇴직한 다음 날이다. 거실 앞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작은 새 한 마리가 찾아왔다. 유리창 너머 난간에 앉아서 잠시 쉬어갔다. 그 녀석 정체를 알고 싶었지만, 네이버 스마트 렌즈로 검색하지 않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소리를 내는데 짹짹거리지 않으니 ‘참새는 아니구나’ 할 따름이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까마귀 손님이 찾아왔다. ‘깍깍깍’ ‘까악까악’ ‘까악악깎깍깍’ ‘깍!깍!깍!’ 운율이 있다. ‘까악~까악~’하고만 우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소리로 소통했다. 풍경이 보이고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2021년 10월 1일은 퇴직하고 삼 년째 접어드는 날이다. 여전히 익숙한 듯 낯설다. 인터넷 서점에서 쇼핑하는데 『퇴직하고 후회했지?』라는 책을 봤다. 마음이 뜨끔했다. 지난 2년 동안 끊임없이 생각했던 문장이다. 딱히 후회는 아니지만, 이 말 언저리에서 수없이 서성였다. 아쉬운 마음이랄까? 자발적 퇴사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미련이 남는다. 누군가의 강연을 들으면서도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십 년 정도 근무하고 퇴사한 동기는 그 마음이 옅어지는데 10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2019년 7월 2일 블로그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 일없이 산다>는 포스팅을 했다. 기억에는 퇴직 후 두어 달 시간이 지난 후에 썼다고 생각했는데, 퇴사를 결정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루하루 신나고 재밌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 더는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다. ‘우리는 별일 없이 잘_살게 될 테니 말이다. 아주 그냥’이라고 기록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위한 글이었는데, 기억의 오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개최했던 국제도서전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부산 특별전_넘치다’로 전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고 전시회 입구에 쓰인 문장들을 읽었다. ‘기록하지 않는 삶은 이야기로 남지 않습니다. 거꾸로, 그것들이 이야기가 될때 우리의 삶은 기억되고 기록되고 만들어집니다.’ 기억하고 싶었던 그 시절 감정을 블로그에 기록했고 이야기로 남았다. 희미해진 기억은 기록으로 다시 그때를 회상했고, 기억은 명확해졌다.          


기록과 기억은 ‘주노(主奴, Lordship and Bondage) 변증법으로 상호인정의 관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증법은 현상들이 상호연결성과 반대되는 것들의 통합을 강조하는 철할적 사고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문학치료학 수업에서 라캉의 중심 개념들을 배우면서 들었던 개념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록을 찾아봤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를 범했고 기록이 깨끗하게 정정했다.    

  

  헤겔은 이 과정을 일반적으로 ’주인/노예‘의 변증법으로 더욱 잘 알려진 ’주노(主奴, Lordship and     Bondage) 변증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때 두 주체 - ‘주인’과 ‘노예’ - 는 명백히 상호인정의 관계에    갇혀 있다. 주인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노예로부터 그렇게 인정되어야만 한다. 노예 또한 주인에      의해 그렇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노예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의 정체성이 노예의    인정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확실한 지식 안에서만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 


기억과 기록은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협력하며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때, 삶의 이야기라는 변색하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철학자의 난해한 이론 앞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그러니 ‘장기하와 얼굴들’의 다른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처럼 이건 내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알아주면 좋겠다.     


삶은 견디는 것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별일이 없기야 하겠냐만, 그 별일을 견디고 있어 별일 없이 잘살고 있다. 오십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나이가 제일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위로 띠동갑인 동기가 있다. 나에게 청춘이라고 했다. 시인론 교수님은 아래로 띠동갑에서 한 살이 적다. 학생 수요가 부족해서 누구나 입학하는 대학원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공부하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주위에서는 돈 내고 사서 고생하는 곳이 대학원이라고 말렸지만, 그 세상은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름나름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다.      


퇴직하고 제일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간으로부터 해방’이다. 전업주부로 직종을 변경했으니 집안일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 입맛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을 해준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책이나 영화나 유튜브 요리 채널을 보다가 발동이 걸리면 따라 만들어 본다. 이탈리아어판 『피노키오』에서 ‘프리타타’ 단어를 보고 이탈리아식 오믈렛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 시금치와 방울토마토가 있어서 팬에 만들었다. 마켓컬리에서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루꼴라피자를 완성했다. 루꼴라를 먹어 본 사람이라면 달콤하고 쌉쌀한 여러 가지 맛이 나는 풀을 외면하지 못한다. 루꼴라의 참맛을 알아버린 남편은 수족관에 열대어 대신에 루꼴라와 바질을 키우고 있다. 이유 있는 이탈리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고 시간이 주는 편안함이다. 아무튼, 요리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일단 멈춘다.     


국내선 공항에서 일 할 때 카시오 전자시계를 샀다. 정시 운항 공정도에 의하면 기종마다 다르지만, 출발 시각 2분 전에 항공기 문을 닫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시 운항은 운항관리사와 논쟁을 유발한다. 1분 전에 닫았는지, 30초 전에 닫았는지로 시작해서 내 시계가 빠르니, 네 시계가 느리니 탓을 한다. 정시 운항으로 지점 평가를 받고 지상 업무로 총칭하는 과정 중에 문제가 있어 5분 이상 지연하면 보고서를 써야 했다. 결과적으로 정시에 항공기 문을 닫으면 2분 지연이 된다. 초침 시계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는 항공권이 얇은 종이로 한쪽은 흰색, 다른 쪽은 분홍색으로 이쪽을 회수하던 시절이었다.      


시간 맞춰 출근하고 어딜 가지 않으니 두통과 조바심이 사라졌다. 자유로운 부인이 되고 나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 뜨고 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인가 하면 됐다. 물론 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탓할 사람도 없다. 퇴사하고 오히려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불만을 많이 받았다. 언제든지 집에 있는 엄마로 아내가 됐기 때문이다. 작은 슈퍼 수준의 음식을 저장했고, 갑자기 필요할지 모르는 준비물로 동네 문방구처럼 창고를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이 허락되고 집 앞 생협을 냉장고로 활용했고 필요한 것들은 낮에 사다 놓을 수 있었다.      


아침에는 주로 책을 읽었다. 퇴직하면 좋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책을 마음대로

구입 하지 못하는 마음이 걸렸다. 운명은 내 편이 되어 줬다. 2021년 7월 교보문고에서 최상위 회원만을 위한 보다 특별한 혜택으로 웰컴 선물을 준다고 했다. 읽고 싶은 책, 사고 싶은 책들로 책 탑이 계속 쌓이고 있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속 한 문장에 사로잡혔다.      

“아침에는 나이트 씨의 『풍경』을 읽었다.”      


2021년 5월 3일, 아침에는 프루스트씨의 「플로베르의 문체에 관하여」를 읽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 에 실린 글이다. 6월 17일 아침에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씨의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읽었다. 『롤리타』의 작가이며 코넬 대학에서 19~20세기 유럽 소설이라는 과목을 강의한 내용을 엮은 책이라고 썼다.      


“워즈워스 남매는 자연경관을 다룬 기존의 문헌들을 의식적으로 탐독하면서 거기서 배운 시각을 모든 일상 여정들에 적용해보고자 했다.” 같은 책에서 오만과 편견의 두 딸, 메리엔과 엘리자베스도 배웠을 시각이라고 기술했다. 자연경관은 제외하고 의식적으로 탐독하면서 배운 시각을 일상에 적용해보고 싶어서 서두에 ‘아침에는 000씨의 00000을 읽었다’로 시작했다. (누구) 씨라는 표기가 어색할 때는 (누구) 작가로 쓰기도 했다. 특별해지는 느낌에 매료됐다.     


2019년 5월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있던 날이다. 부산공항 도급으로 정직원의 인원 정리를 시작한 달이었다. 시간 속에 묻힌 기억은 그때의 감정을 희석했지만, 기록은 그대로 남아있어 그 공간으로 순간이동 시켰다. 회사가 시끄럽고, 오랫동안 일해왔던 일터에서 서너달 사이를 두고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다시금 찌릿한 감정과 울분이 터진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에 끌려다녀 더 큰 상처를 받아서도 주어서도 안 될 것 같아 ‘감성단련훈련’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감성 일기 몇 편 중에 한 개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이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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