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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Apr 05. 2021

아서라 세상사

새끼 고라니의 죽음

"뚱아! 거기서 뭐해? 어서 가자"

"냄새 좀 그만 맡아!" 

    

남편이 목줄을 가볍게 당겼지만, 무심히 돌아본 후 계속 자기 길을 갔다. 길가에 잡초가 자란 곳으로 코를 박고 들어갔다.     


"고라니 새끼가 죽어있네. 엉덩이 쪽에 피가 묻어 있는데 낳으면서 죽었나?"     


그 말에 고라니 새끼 죽음을 보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엉덩이에 피가 묻은 채 네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누웠다.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예전 같으면 무서워 근처에 가지도 않았을 것인데 죽어있는 새끼 모습을 자발적으로 봤다. 순간적으로 몸이 꿈질했다.      


"나뭇잎이나 뭐 그런 걸로 좀 덮어줘야 하지 않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목줄에 끌려 걸어가고 있었다. 

‘동물이라면 무서워 죽는 사람이 뚱이랑 살다 보니 많이 변했네’     


뚱이는 3년 전부터 같이 사는 반려견이다. 몰티즈로 작은아들이 데리고 왔다. 밖에서 낳은 자식이다. 동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엄마 때문이다. 특히 크기가 작고 풀려있는 작은 강아지에 민감하다. 가끔 나와 같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의자와 식탁에 올라갔다.      


어릴 적에 오빠와 동생은 번갈아 가며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샀다. 병아리는 상자에 넣어두지만, 높이가 낮아 작은 몸체를 움직여 탈출했다. 


가늘고 반쯤 감은 듯한 눈은 징그러웠고, 이런 병아리에게 공포를 느꼈다. 상자가 거실에 있으면 방에서 나오지 못했고, 마당에 있으면 밖에 나갈 수 없었다. 


공간이 제한되어 불편했지만, 한 회당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 앞 병아리는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갇혀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유효한데, 그런 내가 뚱이와 한집에 살고 있다. 동물과는 절대 같이 살 수 없다고, 같이 지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내가 뚱이와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세상에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고,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때때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새끼 고라니 죽음을 본 뒤로 엉덩이에 피가 묻어 있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어미 고라니 마음이 어땠을까? 어린 새끼를 두고 어미 고라니는 주위를 맴돌고 있을까? 어두워지면 내려와서 새끼 고라니를 핥아줄까? 누군가 새끼 고라니 사체를 덮어줬을까? 그때 그냥 내려온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등산복을 입고 나섰다. 그때 그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지난해 태풍으로 쓰러진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잎이 달린 가지를 찾았다. 새끼 고라니를 덮어주기에 충분했다.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까만 눈이 먼저 들어왔다. 마음속으로 잘 가라고 인사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로 기도했다. 자식은 엄마 말을 흘려듣지만, 마음에 새기게 된다. 


엄마는 죽은 동물을 보면 세 번 기도를 해주라고 했다. 낙동대교를 건너는 새벽 출근길에는 밤새 싸늘하게 죽어있는 작은 동물이 많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주말이면 셋이 산책을 한다. 남편은 얼마나 잘 덮어놨는지 궁금하다며 고라리를 보러 가자고 했다. 냄새를 잘 맡는 남편은 그 길에 들어서자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했다. 나는 마스크 위로 코를 잡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뚱이는 고라니를 금세 찾아내고 남편을 이끌었다.      


"커다란 나뭇잎 찾는다고 시간 좀 걸렸겠네? 잘 덮어줬다"      


어미 고라니가 출산하면서 새끼가 죽었을지 모른다는 말에 죽은 태아를 출산한 동기가 생각났다. 임신 9개월에 태아 심장이 멎었다. 태아와 새끼 고라니가 닮았다는 생각과 동물로 태어나 묻힐 수 없는 삶이 안타까웠다. 인간 사회에서도 돌봄을 받을 수 없고 사회 안전지대에 벗어난 많은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일 수도 있음에 ‘아서라 세상사’ 시구를 뱉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백석, 『사슴』 <내가 생각하는 것은>, 더스토리     


세상사에 따라서 제각기 각자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툴 필요가 없다. 어쩌다 보니 그토록 혐오하던 동물과 한집에 살고 있고, 여전히 무서워도 동물에게 관심과 연민이 생겼다.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나와 직접 연결될 때 생기는 감정이고, 행위이다.      


2019년 10월 부인암에 걸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받는 과정에서 연락을 끊은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허지웅 작가가 아무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던 것도 충분히 이해했고,    

 

"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아팠던 것들이 보이더라."     


죽음과 직면하고 회복한 사람들이 달라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하며 서로에게 힘과 위로했다. 변한 것은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뿐인데, 모든 주체는 '나'를 향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즐거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시간을 내고 돈을 쓴다. 그런 와중에 타인의 고통도 흔쾌히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건강할 때 보이지 않았던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이 견뎌내고 있는 삶이 내 것이 된 후에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얼마나 힘들었어요? 내가 겪어보지 않고는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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