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희 Oct 23. 2021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문학동네에서 북클럽 뭉클 4기 회원을 위한 북토크를 준비했다. 세 명의 강연자 중에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저자 심채경 작가 말을 기억했다. 그녀의 책은 회원 가입 선물로 선택할 수 있던 책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나는 발효 빵 만드는 레시피에 관심이 있었기에 요리책을 선택했다. 발효 빵은 마음처럼 부풀지 않았고 처음 모습 그대로 크기를 유지했다. 레시피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위험성이 높은 음식이 빵이다. 이스트를 적정 온도에서 녹여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온도계가 필요했다. 몇 개의 도구가 더 필요했지만 사지 않음으로 인해 열정은 사그라들었다. 눈치 빠른 AI는 검색 엔진을 돌려 인스타그램에 내보냈다.

“베이킹은 장비 빨!”     


강연 중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혁명적이다. “어, 저게 무슨 말이지?” 하는 순간 칸트가 한 말이라는 라이브 댓글에도 빠른 속도로 ‘칸트’가 올라왔다. 작가는 자신의 코페르니쿠스적 사건은 중학교 때 다른 지역으로 배정된 것이라고 했다. 언니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하면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경험을 말하는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가치관이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삶의 방향을 전환 시킬만한 경험이 있었던가? 그 변화의 경험을 알아차리고 핸들을 돌렸는가? 아니면 그때,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잡고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라 멈춰버렸는가? 선택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걸스카우트를 했다. 연한 황토색 유니폼을 입고 가운데 세 손가락을 들고 ‘선서’라고 구령하며 선서식을 했다. 1980년대 걸스카우트를 했던 경험은 장래희망을 결정짓기도 했다. 선생님이 돼서 걸스카우트 대대장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먼저인데, 그것보다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특활활동 중 걸스카우트가 있는지 없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같은 재단으로 배정받았다. 중학교에 걸스카우트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특활로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집에서 먼 곳으로 29명만 배정받았어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마주했다. 청소년 연맹, 적십자는 있는데 걸스카우트가 없었다. 다른 봉사 단체에 입단하면 되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걸스카우트가 없고, 걸스카우트 유니폼을 입지 못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운명처럼 문예부를 선택했다.   

  

아시아나 유니폼도 갈색 계열이다. 따뜻한 분위기를 내고 안정적인 색이다. 디자이너 진태옥 여사가 만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복으로 바뀌기 전에는 맞춤복 유니폼이었다. 꼼꼼하게 치수를 제고 몸에 꼭 맞는 유니폼은 편안했고 보이지 않는 자부심을 높이기도 했다. 


걸스카우트에서 봉사 정신을 문예부에서는 책과 가까이하게 되고 교지를 만들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했던 것, 이 모든 순간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선택했던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하고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예전부터 그래왔던 내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책장에 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해진다. 의도적으로 사들인 책 말고는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있다면 이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발목에 화살을 맞고 죽는다. 유일하게 취약했던 신체였다. 재수하고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일은 평생 족쇄다. 스스로 채운 것을 열쇠가 있어도 열지 못했다. 삼십 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독방에 갇혔다. 인간 존재를 고민하며 니체를 읽었지만 어떤 것도 얻지 못했고 진학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스무 살에 언어를 상실했다. 『영혼의 집 』 클라라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거의 일 년을 그랬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읽기는 계속했던 모양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카토 타이조의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1990년과 1991년으로 문예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가격은 3,000원과 3,500원이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는 보라색 볼펜과 보라색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신경증과 우울증에 대한 것과 ‘사람의 무의식 밑에 있는 것은 사람의 의식과는 정반대로 무질서하고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다.’와 같은 문장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다.     


자가 치유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도 프로이트를 읽고 있고 문학 치료를 배우면서 깨우쳤다. 스스로 입을 열고 예전의 활달한 성향이 조금이라도 돌아왔던 것이 그저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었다. 친정에서 갖고 온 책을 다시금 펼쳤다. 

“이런 책을 언제 읽었었나?”

스무 살에 내가 희미하게 보였다. 보라색 숄로 무릎을 덮었고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을 보느라 고개 숙이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깜짝 놀랐다. 그때의 싸늘한 느낌과 불안한 기운이 올라왔다.     


입학과 입사는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를 거절하지 않았던 대학과 회사에는 충성을 맹세했다. 조기 취업으로 대학 취업률 상승으로 보답했고, 회사는 26년 동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했다. 실패는 거절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병영 독서 코칭 강사를 지원할 때도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주변에서 지원하라고 해도 끝까지 미루다가 마감 일 아침에 서류 작성하고 마감 시간 직전에 제출했다. 다행히 최종합격 했다. 

이전 06화 나와 닮은 영화들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