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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Oct 23. 2021

마법의 문에 들어가는 장치는,

두부 된장찌개를 끓여서 김치랑 아침을 먹었다. 남편이 카페라떼를 만드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넘치는 우유 거품을 ‘스읍’ 마셨다. 우유 거품이 쫀쫀하게 에스프레소에 붙어있다. 어떤 날은 그물망처럼 퍼져 버리는데 그때는 밀크커피로 마셔야 했다. 출근 전에 커피를 타주는 일은 남편이 즐겁게 하는 일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라떼를 들고 베란다 책상에 앉거나 소파에 앉아서 손에 잡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는 인스타그램을 주로 보는데 이탈리아어 때문이다. 날씨, 교통수단, 과일처럼 묶어서 그림과 단어를 알려주고, 인칭과 함께 동사 변형을 보여준다. 인칭은 io/tu/lui,lei/noi/voi/lono 나/너/그는, 그녀는/우리는/너희는/그들은 이다. 동사는 인칭에 따라 변하는데 외우기보다는 익숙해지라고 했다. scrivere(스크리베레)동사는 ‘쓰다’는 뜻이다.

아래처럼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니 왕초보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scrivere

to write


io     scrivo       I write

tu     scrivi       you write

lui/lei scrive       he/she writes

noi    scriviamo   we write

voi    scrivete     you write

lono   scrivono    they write 



가끔은 ‘오늘 날씨 어때?’라고 알려주고 질문에 답을 써보라고 한다. <Che tempo fa oggi?>What’s the weather today? 오늘 날씨 어때? 라고 물어보면 댓글에 자기가 사는 곳의 날씨가 올라온다. 이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쓴 댓글을 보면 다양하게 표현한 이탈리아어를 볼 수 있어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오늘 아침에는 <Quale e la tua canzone italiana preferita?>

영어랑 단어가 비슷하다. 단어를 추측해봤다. 칸쪼네(노래), 이탈리아나(이탈리아),

프리페리타(선호하는) 정도를 알아봤다. 물음표로 끝났으니 ‘좋아하는 이탈리아 노래는 뭐니?’ 쯤 될 것 같았다. 빙고! ‘What is your favorite Italian song?’      


다음은 댓글로 이동했다. <Vivo per lei>와 <Il mondo>와 <Parla piu piano>가 많이 보였다. <Il mondo>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결혼식 때 배경음악으로 나왔다. <Parla piu piano>는 영화 ‘대부’ OST로 귀에 익은 노래였다. <Vivo per lei>는 ‘그녀를 위해 산다’로 파파고에서 번역했다. ‘vivere’동사로 살다, per는 ~위하여, lei는 그녀이다. 듀엣곡으로 감미로운 듯 힘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니 유명한 노래인가보다. 가수는 Andrea Bocelli(안드레아 보첼리)이다. 언어 속 언어로 들어가는 마법의 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속 마법적 장치는 무엇일까?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과거로 이동할 때는 옷장으로 들어간다. 어느 강연에서 들었는데 하루키의 마법의 문은 음악이라고 한다. 비틀즈의 음악을 찾아 듣게 하며 읽기와 함께 작품 속으로 빠지게 한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서도 터널을 통과한 후 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주인공이 먼 곳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법의 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스펙을 쌓기 위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묘하게 재미가 느껴진다면 스펙도 마법이 될 수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 필요에 따라 강제적으로 요구해도 누군가는 외국어에 대한 욕구가 더 유창하게 하고 싶은 욕망으로 자랄 수도 있다. 공항에는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대체로 영어는 기본이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교육을 영어로 한다. 미주행 노선이 있는 공항에는 TSA(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 미국교통안전청)에서 하는 안전검사도 받는다. 카운터 직원은 테스트 인터뷰를 해야 한다. 끝나고 나면 유창한 영어 구사를 하지 못해 속상하다. 그러면 또 두어 달 열심히 라디오 영어를 듣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도 노선과 승객이 많아짐에 따라 배웠던 언어다. 모두 왕초보 수준에 머물러있지만, 전혀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유용하다. 일본어는 노선을 축소하면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며칠 전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읽는데 히라가라 ‘래’를 어떻게 썼었지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하이쿠를 지었다.

‘놀라지마라/그럴 수도 있지만/잊지 말아라’     


이 책은 하이쿠라는 세상에 가장 짧은 시를 류시화 작가가 엮은 책이다. 형식은 5.7.5의 열일곱 자로 된 한 줄의 정형시다. 이쯤에서 시인 잇사의 하이쿠를 소개하고 싶다. 

‘죽이지 마라/파리가 손으로 빌고/발로도 빈다’ (70면) 

시인 백석은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 거미 새끼 하나를 차디찬 밤에 내보냈다. 곧 그 자리에 큰 거미가 왔는데 가슴이 찌릿하다. 큰 거미를 쓸어 내고는 밖에 있는 새끼한테 보내면서 서러워한다. <수라>의 시 도입 부분이다. 잇사의 파리에서 백석의 거미를 거쳐 카프카의 벌레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지점이 책을 읽을 때 마법 속으로 빠지는 문이다. 그렇게 꼬리를 물었을 때 손에 잡히는 그 책이 필요하다. 국어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 그 증세는 심해졌다. 누군가는 지나왔겠지만 이제야 그 문을 열고 있다.     


자상한 시간에서 다섯 권을 구매했다. 그중에 제목이 『 도톰한 계란말이』가 있다. 서점에서 번역가와 함께 낭독 모임을 한다는 공지에서 봤던 책이다. 표지에는 흰색 도자기 접시 위에 계란말이 두 개가 놓여있다. 뒷면에는 ‘중국 바링허우 대표작가 단편선’으로 소개하는데 ‘바링허후’ 80 이후? 앞으로 돌아와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조그맣게 쓰인 일러두기에 ‘80後短篇小設集’이라고 적혀있다. 80년, 81년, 82년(3명), 86년, 84년생의 일곱 작가가 쓴 일곱 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지점이 흥미를 자극한다.      


가늘고 길게 관심을 두고 본다. 어느 날 문득 그 낯선 언어들이 보일 때 하루는 마법에 걸려있다. 노래를 듣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그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필요가 즐거움이 될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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