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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Oct 23. 2021

소설 속에 나오는 그들처럼,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과 저희 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국어국문과를 지원하신 이유가 뭡니까?”     


소설 속에 나오는 사제처럼, 그렇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제임스 A. 미치너의 『소설』은 내 삶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양방향 소통하는 독서모임을 그만두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으로 진행하는 김영하 작가가 선정하는 도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댓글에 인사하거나 답변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혼잣말로 답변하고 필기했다. 작가가 선정한 도서를 신뢰한다. 읽고 난 후에도 자꾸 생각이 나고 다시 펼치게 되고 묘한 감정선에 닿게 된다. 일종의 쾌감이라고 할 수 있고 충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책 속의 책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단어를 찾아 책을 읽는 편이다. 그렇게 하려면 손에 잡히는 책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줄줄이엮기와 아슬아슬 독서(『,나는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 )와 발췌독인 추출 독서법(『앞으로 올 사랑』)을 선호한다. 줄줄이엮기는 뒷면에 수록된 참고도서를 찾아 읽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 달라진 점은 학술 논문까지 읽게 되었다. 이전에는 읽고 싶어도 접근 방법을 몰랐다. 대학교 인증을 받으면 대부분 필요한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아슬아슬 독서법은 어려운 책을 읽어내는 것이다. 2021년에는 고전을 읽어 보고 싶었다. 단테 『신곡』을 시작으로 『일리아스』도 읽어내고 있다. 읽기의 욕망을 더욱 강화하고 시선이 머무는 범위를 넓혔다.      


제임스 A.미치너의 『소설』은 두 권이다. 5월의 도서로 가정의 달에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작가는 1907년생으로 1991년 84세의 나이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네 명의 화자를 통해 소설의 탄생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와 다른 출판 과정도 보여주는데, 에이전시를 통해 원고를 투고하고 괜찮은 작품을 출판사 편집자에게 전달된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해외 진출 경험을 통해서 실재감을 맛보았다.   


퇴사하면 일반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다. 학력이 아쉽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중년 나이에 목적 없는 공부가 가능할지 의문스럽긴 했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다. 재미있게 배우다 보면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도 없진 않았다. 아무튼, 『소설 』을 읽고 지원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지원은 나의 몫이고 합격 여부 선택은 학교 몫이니 지원하기로 했다.      


첫 줄의 대화는 면접할 때 교수의 질문이었다. 항공사 지상 근무 26년의 경력으로 공항 (직업)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자 중년 여자가 국어국문과에 지원했다. 병영 독서 코칭 강사로 합격한 상태로 면접을 봤다. 회사에서 서비스품질관리와 고객 관리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심리학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질문에 따라 답변했다. 문학을 통한 서비스 직종 종사자의 마음 치유와 군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상적인 답변으로 석연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가장 근본적인 지원동기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이 공부를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서 비평가와 그의 교수처럼 말입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피었다.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가 문예 창작 고급 과정을 10년 세월 동안 지도하고 있다. 소설가가 된 제자 중에 그의 강의를 두고 발표한 글이 있다.      


여는 교수 같으면 유머 감각을 발휘할 곳에서 짜증내는 기미를 보이셨다. 때로 우리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어김없이 조소를 퍼부어 여학생들은 울기까지 했고, 몇몇 남학생들은 그 교수님을 패주고 싶다고까지 하였다. (『소설』 하, 282면)     

‘자, 나하고 한번 해봄세.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두게.’     

‘그분의 얼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요. 우리들이 무언가 의미 있는 걸 만들어 내길 바라셨죠. 저는 그분이 우리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는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소설』 하, 282~283면)   

  

칼은 폴 하셀메이어 교수에게서는 나태와 무감각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새로운 깨달음의 영역으로 들어 섰다고 했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자 폴은 제임스 중편을 다루어 보라고 했고, 자신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논문을 썼다. 그 논문을 읽은 교수는 좀 더 어려운 주제를 다루기를 권했다. 비교할 작품과 다른 배경, 공통된 목적을 이루어 냈는지 등에 말이다. 유능한 칼에게 하버드 대학 문학 박사 과정을 제안하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데블런 교수와 만남 부분에서는 기록된 작가와 작품을 찾아보게 했다. 『미메시스』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 『인도로 가는 길』을 사두게 했고, 고전에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일리아스』와 『오딧세우스』와 『아가멤논의 비극』을 펼쳐 보게 했다. 예술과 문학에 매료되어가는 중에 중심을 잡게 했다.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 대한 예술적 감수성을 더욱 자극했다. 현실적 대학원은 소설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덮어두고 학문적 공부를 하기로 했다.     


칼, 자네가 자네 대학에서 일급 영문학 교수가 되려면 미술, 음악, 건축 등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위대한 심미적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네. 피렌체를 모르면 단테를 알 수 없어. 그곳뿐만이 아닐세. 그가 방황했던 여타의 다른 산악 마을들을 상상하지 못하면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네. 자네는 3~4년 동안 매년 여름 이탈리아를 방문해야 하네. 그게 대학원생들이 갖춰야 할 지혜로움일세. (같은 책, 319면)     


〈현대 시인론〉을 듣고 있다. 시인의 생애를 녹여 작품을 해석하고 소논문을 작성한 후 발표하는 수업이다. 1920 ~ 30년대를 모르면 시인을 알 수 없었다. 시인의 원본을 발굴하고 행적을 따라 기록했던 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만주와 중국 장춘과 러시아를 방문해서 그곳에서 방황했던 시인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국문학 교수가 되기 위해 그들이 했던 것들이 데블런 교수가 조언했던 행적이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나는 조용한 식당에서 데블런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곱씹으며 지혜의 낟알들을 키질하기 바빴다. (같은 책, 3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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