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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Oct 23. 2021

나와 닮은 영화들은,

아침에는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을 봤다. 여자 주인공 아키코는 〈카모메 식당〉에서도 핀란드로 이주해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 여성 사치에를 연기했다. 그 작품에서 생생하게 기억하는 몇 가지가 있다. ‘카모메’가 일본어로 갈매기고, 연어 굽는 윗면이 하얀색인 직화 석쇠 그릴과 삼각형 모양의 오니기리와 커피와 시나몬 롤이 있다. 2012년에는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이이지마 나미의 『이이지마 레시피』가 출간했다. 그녀는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요리 영화는 요리하게 만든다. 직화 석쇠 그릴로 연어와 생선을 굽고 닭 불고기, 참치, 제육볶음 오니기리를 만들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빵과 수프를 아키코 스타일로 만들게 했다. 기본 빵과 속 재료를 선택하면 오늘의 수프를 함께 제공했다. 이날 점심은 감자 호밀 빵에 바질 페스토를 바르고 체다 치즈 2장과 계란 프라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옥수수 수프는 시판용 제품으로 따뜻하게 준비했다.     

 

아키코는 출판사 편집자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남는다. 때마침 회사에서는 경리부서로 이동을 권고하고 아키코는 흔들림 없이 회사를 떠난다. 편집자가 책을 만들지 못한다면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게를 꾸미고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한다.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 틈새로 우연히 찾아온 길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했다.     

 

샌드위치 가게에는 커피와 차 음료가 없다. 이웃 가게에서 드립 커피와 차를 팔기 때문이다. 아키코 가게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면접을 볼 때도 카모메 식당에도 출현했던 그녀의 가게에서 주문해서 대접했다. 상도를 지킨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샌드위치와 수프가 먹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만들 수 있다면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달걀 세 개를 풀고 얇게 오이를 썰고 치즈를 한 장 올린 샌드위치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배달 앱을 통해 주문할 것이다.     


드라마에서 노란 수프를 옥수수 수프로 생각했는데 단호박이었다. 재료라도 보여줬다면 좋았겠는데 도서관에서 원작 소설을 빌려보고 알았다. 토마토와 오이와 당근을 넣은 야채수프는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키코는 퇴사 전에 편집했던 요리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져 갔고 에세이를 써볼 것을 제안했다. 아키코의 달걀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했고 그녀만의 가게를 운영할 힘을 얻었다.      

이 두 작품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독특한 주변 인물을 설정하고 여자 세 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는 마사코는 핀란드에 도착했는데 항공사 수하물 사고로 가방을 잃어버린 상태다. 항공사에서 수하물 추적 상황을 전하고 아직 가방을 찾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끝내는 분실로 처리되는 듯한 상황으로 비추면서 마사코는 핀란드를 떠나지 않는다. Lost & Found는 위탁 수하물 파손과 분실을 처리하는 팀이다. 회사 다닐 때 했던 업무가 나오고 아사코는 편집자 경력을 갖고 중년에 퇴사했다. 묘하게 닮은 작품에서 추억과 위안을 받았다. 


저녁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봤다. 도시 생활을 멈추고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이 요리를 한다. 엄마가 만들어 줬던 음식을 기억하고 매 끼니를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아픈 현실을 뒤로하고 스크린에 보이는 풍경과 음식과 그릇에 시선이 모였다. 예쁜 그릇에 담아 나온 음식은 시골 살림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영화 분위기와는 딱 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릇은 ‘화소반’ 제품이다. 인스타에서 화소반을 검색하면 연예인들이 직접 그릇을 사러 온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커다란 사건 사고는 없지만 아픔도 있고 아련함이 있는 순수 장르가 좋다. 소란하지 않고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고 약간의 유머로 웃음을 자아낸다. 가만히 앉아 나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작다’이다. 공간적으로 작은 식당과 작은 숲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도서관』은 작은 도서관을 마련하고 싶은 꿈이다. 작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세컨드 라이프를 풍요롭게 한다. 지금은 베란다 앞에 놓인 작은 책상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트렌드 코리아』를 읽는다. 2022년 키워드 중 ‘러스틱 라이프’를 제시했는데 〈리틀 포레스트〉를 언급했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소구한 것은 저마다 삶을 살아내느라 힘든 현대인에게 필요한, 제목 그대로 ‘리틀 포레스트(작은 숲)’였다. 독일에서는 각 가정마다 ‘작은 정원’을 갖는다. (중략)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과 작은 정원(클라인가르텐)‘에서 ' 작다'는 단지 공간의 소박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창하지 않아도 오롯이 나만의 여유를 안겨준다는 뜻이다. 러스틱 라이프의 핵심은 그저 시골식으로 살라는 '찐'시골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 가능한 '친'시골이다.(272면)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껏 신이 나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샌드위치 빵 두 장 사이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햄과 체다 치즈와 얇게 썬 토마토와 수경 재배한 바질과 루꼴라를 넣고 올리브 오일을 뿌렸다. 콘수프를 따뜻하게 끓여내어 쯔비벨 수프 그릇에 담았다. 샌드위치도 쯔비벨 접시에 담았다. 나란히 앉아서 한 입 베어 먹으면 맛있냐고 물었다. 한 술 떠먹으면 속이 편안하지? 했다. 맛있다고 하며 그만 질문하고 좀 먹자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함께 있으면 말이 많아진다.     


“엄마가 며칠 전에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데 나도 그거 사고 싶어”     

“엄마랑 아빠가 수족관에다 바질과 루꼴라 심었어. 잘 자라더라고”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가도 요리하는 영상을 보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4인 4색 취향에 맞춰 요리해도 즐겁다. 퇴직하면 전업주부로 항상 집에 있는 엄마가 되는 것도 행복하다. 하루 종일 머무는 작은_집에서 오롯이 나만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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