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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Oct 23. 2021

퇴사를 결정하고 처음으로 한 일은,

타이항공은 부산에서 방콕을 운항하고 아시아나항공이 지상 조업을 했다. 그날따라 타이항공 직원이 분주했는데 영업지점 행사로 여행 파워 블로거가 손님으로 온다고 했다. 영업지점 행사로 홍보를 위해 태국 여행을 보내주는 거라고 했다. 카운터 사진을 찍는다고 사전에 알려주었다. 정성스럽게 고객 응대를 하고 카운터 주변이 혼잡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달라고 했다. 탑승 수속을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한, 두 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독일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항공사 직원에게 복지로 제공했던 무료항공권 제도가 없어지는 시점으로 남은 항공권을 사용하기 위해 급하게 출발했다. 프랑크푸르트와 암스테르담을 여행하기로 하고 기차 타는 법과 주변 호텔 검색을 했었다. 자유여행으로 유럽에서 기차 타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기차표 발급 정보를 찾다 보니 화면을 찍어서 자세하게 알려주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사진으로 저장해서 찍어갔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블로그의 정보 가치를 인정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개설은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퇴사하면 한 2~3년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타이항공에서 여행 블로그를 활용해서 영업하는 것을 보고 블로그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고 블로그를 보니 상위 노출, 키워드 검색, 온라인 마케팅, 블로그 수익화 등 다양한 정보가 손에 잡혔다. 기초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노마드 클로이’의 유료 PDF 파일을 내려받았고, 자유의지의 부산 블로그 강의를 듣기도 했다. 1일 1포(하루 한 개 포스팅)를 하면서 쓰는 데 익숙해져 갔다. 서로 이웃 신청을 받는 것도, 안부에 인사를 남겨 주는 것도, 이웃 수가 몇천 명인 블로그가 먼저 손 내밀어주는 것에 감동했다. 신기했다.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다. 일일 방문객은 많지 않지만, 이웃 수도 천 명이 넘었다. 하루 5원, 10원이 모여 한 달에 몇천 원이라도 광고 수입도 발생한다. 광고 수입 신청이 될 때까지 매일 포스팅하려고 했다. 일상, 책, 독서와 교육을 받은 내용을 포스팅했다. 영화와 자전거와 요리와 외국어도 가끔씩 올렸다. 코로나 덕분에 집에서 준비한 팔순 잔치와 목포 보 경수산에서 구입한 목포 먹갈치 손질과 요리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세줄 일기 쓰는 방법을 포스팅한 글은 효자 노릇을 한다.     

 

한동안은 도서 지원을 받아 서평을 썼다. 메일로 제안을 받았고 다섯 군데 정도에서 서평단 신청을 받는다. 이 일도 처음에는 신기함을 넘어서 경이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때때로 제출 기한을 넘기거나 완독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옳지 않은 행동에 죄책감이 생겨서 최근에는 거의 신청하지 않는다. 내 책을 누군가 이런 대접을 한다면 그리 좋은 기분이 들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깼다. 몇 시인지 보려고 핸드폰을 열었다가 블로그 앱을 열었다. 오늘 방문자가 100명이 넘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는데 사람들은 잠도 안 자나? 했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천 명이 넘는 방문객이 온다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은 무조건 신기한 일이다. 서평으로 쓴 『조금씩, 천천히, 자연 식물 식』이다. 누적 조회 7천 명이 넘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조회 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연이어 삼 일 정도 천 명 가까이 방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매일 포스팅을 하면 조회 수가 늘지만 몇 주씩 글쓰기를 멈추면 방문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포스팅할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탓에 적어도 2시간이 소요된다. 읽는 사람도 내 글과 관련된 사람도 내용을 봤을 때 서운한 마음이 닿는 지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쓴 글의 최대 수혜자는 자신임을 알지만, 쓰지 않고 있을 때면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된 기분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블로그 내용이 좋아요’라고 남겨진 말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블로그 덕분에 온라인 클래스에서 강의 제안도 받았다. 서울에 있는 ‘자상한 시간’을 통해 무료로 캘리그라피 수업을 받았다. ‘하나의 책’의 밴드 독서모임을 알고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 2020년 12월 신청하고 2021년 1월에 읽기 시작했다. 어렵게 읽은 고전이지만 완독할 수 있게 리더가 안내자 역할을 했다. 읽기를 미루지 않으려고 매일 읽을 분량을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신기하게도 쓰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했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이 쓰기의 효용이다.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된다는 말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내가 블로그에 기록하는 이유는 내가 받았던 도움처럼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신곡도 매일 분량만큼 쓰겠다고 했지만 빼먹기도 했다. 그러면 쓸 수 있는 그 날부터 썼다. 밀린 일기를 쓰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다. 그러다 보면 오늘 일기도 쓰지 않게 된다.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마음이 끝까지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할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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