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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Feb 03. 2021

서른여섯 권을 독식한 날 아침

우리 아파트 재활용 수거일은 매주 수요일 오전 5시~오전 10시까지다. 남편은 매주 수요일 아침에 이 일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내가 퇴사를 한 후 16개월 동안은 단 한 번도 재활용을 버리지 않았다. 남편은 자유로운 수요일을 좋아하게 됐고, 출근하는 그를 향해 한마디를 날려도 괜찮았다.


"오늘 지름신이 와서 질러 버릴지도 몰라"

신발 뒤 축에 손가락을 넣고 문을 열고 나가며 뒤돌아 봤다.

"재활용 꼭 버리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 사"


중문을 얼른 닫고 베란다 책상으로 향했다. 재활용보다 장바구니를 비우는 것이 우선이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는 200권 정도는 있는데 허락한 금액만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서점 두 곳 장바구니를 열어 놓고 바로 읽을 책을 우선적으로 골랐다. 어떤 책을 내 책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재활용 마감 30분 전이다. 


주섬주섬 바지만 바꿔 입고 양말을 신었다. 다시 집에 돌아오는 데는 10분 정도 걸렸다. 외출하는 아들과 조금은 격한 대화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최근에 운전을 시작했는데 지갑을 차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주의를 줬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물 한잔을 마시고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최종 선발 서른여섯 권!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던 책도 있지만, 움베르트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과 『미야자키 월드』는 바로 결제창으로 옮겨졌다.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웹툰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 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옥』이다. 단테 『신곡』을 읽고 있지만, 웰다잉 공부를 하면서 죽음과 사후생 등 다양한 죽음에 관한 책에 관심이 있기때문이다. 편집자 K 영상에서 소개했는데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다.'


글쓰기, 시, 자기 계발, 독서법 그리고 셰익스피어 세트까지 골고루 선택했다. 취향 따라 취향대로 사들이지만 조금은 다른 책을 사려고도한다. 퍼즐 조각 맞추듯이 하나씩 집어 들었다. 한 권당 가격과 두께를 자랑하는 『진리의 발견 』은 다른 조각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았다. 


독식은 혼자서 먹는다는 뜻이다. 그렇다. 혼자서 다 먹어 치울 듯이 책을 고르지만, 언제쯤 펼쳐지고 빨간 볼펜으로 밑줄과 별표가 그어질지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하랴! 집착이라고 불러도 좋다. 내 안에 가두어 놓고 독식하고 싶은 마음은 산 책에서만 가능하니 말이다. 오죽하면 글로 남길까.


<서른여섯 권을 독신한 날 아침>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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