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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l 16. 2019

[Republika ng Pilipinas] Cebu

1. 필리핀 세부

 2017년 초 일본과 이탈리아를 다녀온 뒤 대학교에 복학했다. 때마침 동기가 일곱 명에 친한 후배들이 세명, 총열명이 함께 복학해 6개월은 거의 놀기만 했던 것 같다. 받은 장학금과 파트타임으로 모아둔 돈으로 여름 베트남 여행 후 2학기를 시작했다. 대부분은 조기취업을 떠났고 서 너 명만 어울려 다니니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그래도 가장 친한 녀석들이 남아있었으니 다행, 술자리에서 갑자기 꺼낸 여행 이야기로 3일 뒤 바로 티켓을 끊고 한 달 뒤 떠나기로 했다. 세부적으로 둘러보자


 '이금기'라는 소스 브랜드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연중행사 중 하나로 이금기에서는 매년 각 학교마다 '이금기 요리대회'를 개최한다. 당연히 참가해 당연히 1등을 노리고 있었는데 오만이 부른 대 참사가 일어났다. 3등... 3등부터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봐도 되는 대회인데 당시엔 다른 개인적인 문제들이 짓 누르고 있던 터라 뭐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타격은 없었다. 세부로 떠나는 항공 출발일이 바로 다음날, 강릉에서 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대회 가면서 칼, 조리복 등과 함께 여행 배낭을 함께 챙겨 끝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사실 전문대에서 마지막 학기는 수능 끝난 고3들의 생활과 비슷하다. 스케줄도 안 바쁘고 학생들은 취업 나가서 강의 때 인원도 별로 없고, 그냥 친한 교수님이랑 동아리 만들어 학교 행사나 시, 도 행사 몇 개 주최하면 삼 개월은 금방이다. 덕분에 교수님들과 다들 친하게 지내며 술자리도 자주 가졌는데 차마 학교를 빼고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은 못 하겠더라. 무단결석으로 다녀오니 교수님들이 기념품과 여행 후기를 들려달고, 하하하하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하루. Seoul - 치킨 치킨 치킨!

 

여행 후 치킨이 되어버렸다

 나는 보통 여행 전 간단히 음주를 하고 비행기에 타는 편이다. 약간의 음주 후 푹 잠들면 개운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으니!

 인천공항 체크인 후 네네치킨에서 엄청나게 비싼 치킨+소맥 세트를 먹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도착은 현지시간으로 밤 12시경, 도착하면 바로 잠들기 위해서 배불리 먹기로 했다. 약 4시간의 비행 후 숙소에 들어서니 또 배가 고파 근처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러 치킨과 밥을 주문해 숙소로 가져와 맥주와 마셨다. 가끔 "어떻게 이 많은 닭 개체수를 유지할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지금도 멜버른에 있는 현지 치킨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말 인간의 농경, 축산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틀. Cebu City - 하루에 여섯 끼니

절묘하게 가려진 그 녀석의 그 것

숙소는 전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첫날에 묵은 곳은 잠만 잘거라 그냥 저렴한 곳으로 정했다. 해는 이미 다 떨어진 새벽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한적한 골목을 몇 개 지나 내리니 동네 길 강아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짖기 시작한다. 이 녀석들 본능인 건 알겠는데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방네 다 떠나가라 짖는 건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집 입구도 못 찾고 호스트님은 연락도 안 받으셔서 불안에 떨다 결국 30분 만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짐을 챙겨 무섭지 않은 동네에 있는 새로운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배낭 하나만 가져왔으니 여유롭게 걸어보자!  

환전하러 갔다가 밥도먹고 나왔습니다

  보통은 세부 시티에서 그리 오래 머물진 않지만 우린 일정 대부분을 시티에서 머물기로 하고 외에 자세한 것들은 그냥 발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좀 남아 한 쇼핑센터에서 환전을 하고 대충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필리핀에 왔으니 당연히 태국 음식을 먹어줘야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며 식당에 들어섰다. 우린 세부 여행기간 동안 정말 농담이 아니라 하루에 6 끼니 이상을 먹었다. 그것도 최소 다섯 접시 이상 씩 주문해서... 태국요리와 버거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누가누가 못생겼나

 그렇지. 동남아 여행은 이거지.

 사실 당시 난 동남아면 어딜 가도 크게 상관없었다. 단지 여유롭게 식사하고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수영하는 게 좋을 뿐. 물론 지금이야 직접 시골이나 한적한 마을로 뛰어들어 로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즐겁지만 당시엔 그 재미를 잘 몰랐었다.

 사진에 함께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론 그들의 거의 첫 여행이다 보니 감동은 두배 세배가 되었다고 했다. 방세 때문에 모자란 생활비로 허덕이며 살던 날들이나 친구, 가족들 간에 갈등으로 스트레스받던 현실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사진에서 보이겠지만 저 여자아이, 미정이는 일하다가 손가락이 베인 채로 여행에 왔다. 다들 그만 고생하자!

 


 








 수영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에어컨을 켰다. 시원하다... 키야... 다들 빠르게 샤워를 한 뒤 각자 바닥이나 침대에 널브러져 낮잠을 기똥차게 즐겼다.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밥 먹으러 가자.. 점심에 식사를 많이 했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배꼽시계는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낮잠의 달콤함을 이겨내 신명 나게 울려 퍼졌다. 밥도 먹을 겸 저녁 세부를 둘러보자!

필리핀의 대중교통 '지프니'

 대중교통 '지프니'이다. 요금은 8페소 정도로 한화 200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의 가격 때문에 애용하기 시작했지만 세부 시티에선 그냥 지프니 타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 그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둘러봤다. 트럭 뒤로 탑승해 기사에게 요금을 직접 내야 하는데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돈을 전달-전달-전달해 기사님에게 드리고 잔돈을 다시 전달-전달-전달해 돌려준다. 탑승은 그냥 차가 설 때 타면 되고 내릴 때는 자동차 천장을 주먹으로 두 번 '톡, 톡'치고 '저 내려요~'라고 기사님에게 알리면 그다음 정류장에서 멈춰주신다. 사람이 많이 붐벼 자리가 없으면 사진처럼 그냥 매달려 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신식 문명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지역에선 사람들과 인사할 기회도 많아지고 당연하게도 웃을 기회도 많아진다. 지프니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학생, 직장인, 아기와 엄마, 노인... 지금 가만 생각해보니 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골목에서 만난 착한 친구들

 지프니를 타고 그냥 마구 돌아다니다 보니 실수로 시티에서 나와버렸다. 우린 노선을 하나도 안 찾아보고 그냥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돌아다녔는데 여기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 내렸던 곳에서 건너편으로 가 무작정 지프니를 탔다. 창밖을(사실 그냥 뚫려있는) 쳐다보면서 이동하다가 어떤 골목에 작은 시장을 발견. 차에서 뛰어내려 가보니 청년들 몇 명이 해산물을 바비큐 해 먹고 있더라.

"혹시 괜찮으면 우리도 같이 먹어도 될까?"

말을 거니 당연하다는 듯이

"물론이지!"

라며 그릴 한편을 내줬다.

 옆에 작은 상점가에서 해산물과 맥주를 사서 같이 노나 먹고 있자니 동네 꼬마들도 나와서 식사에 재미를 더해줬다. 청년들에게 맥주를 권했는데 "미성년자라 안돼"라며 거절을 한다. 미성년자인지 몰랐다. 정직한 녀석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 사수를 위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같이 갔던 멤버 중엔 여자아이도 한 명 있어서 침대 배정을 효율적으로 해야 했다. 내 기억엔 그 애가 1등을 해서 혼자 큰 침대를 쓰고 내가 작은 침대... 나머지 두 명이 소파와 바닥에서 잤던 것 같다. 이 또한 친구들끼리 떠난 여행의 묘미 아닐까!(바닥에서 잤으면 이렇게 말 못 했을 거야)


사흘. Cebu City - 동네방네


늘 고민이 많은 종인이의 뒤통수

달콤하다... 학기 내내 동아리를 창설한 뒤부터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사업계획서에 각종 보고서.. 멤버 모집, 시 행사, 대회 등등 학교 활동 끝나면 저녁엔 크래프트비어집에서 알바도 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오래간만에 찾아온 여유가 너무나도 반갑다. 사실 성격상 조금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아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여유롭게 앉아서 메이플스토리 하는 것도 좋고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것도 좋다. 뭐든 적당한 균형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몇 달 바빴으니 여유로움이 달콤하다. 매일매일 여유롭기만 하면 또 재미없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종인이랑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형 지금 너무 좋은데 한국서 뭐 할지 걱정이에요."

 일도 다 때려치우고 온 녀석이라 이런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몰러 일단 좀 놀고서 생각해보자!"



야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닥트리오

 어제 마트에 들러 봐 왔던 장으로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한 번 여유롭게 바빠보자!! 머리는 비우고 배는 채운다.








대충 씻고 옷도 대충 눈에 보이는 거 집어 입고 길가로 나왔다. 일단 나오긴 나왔는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 오늘 어디가?"

그러게 어디 가지? 시장이나 둘러볼까

빛좋은 꿀망고

 우리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과일을 좋아하는데 특히 미정이는 필리핀에 오기 며칠 전부터 계속

"브로 난 필리핀 가면 매일 망고 10개씩 먹을 거야 말리지 마"

라며 으름장을 놨었다. 시장에 도착하니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강아지마냥 눈은 휘둥그레, 손 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자 시작!'

단거리 육상선수들처럼 추진력을 받고 달려가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하나둘씩 집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선 망고랑 산미구엘만 왕창 먹고 와도 본전은 뽑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당시 친척형이 세부에서 몇 년간 살다가 두마 궤테라는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줬었는데 그 형이 이 시장과 함께 덧붙여 해준 이야기였다. 10월, 과일이 철도 아닌데 망고를 별로 안 좋아했던 나도 옷에 다 묻히고 먹을 정도로 엄청났다. 한 사람당 다섯 개씩은 매일 먹었던 것 같은데 한국에 돌아가고 나선 다시 입도 안 댔다. 한국 망고와 필리핀 망고는 다른 과일이라 봐도 무방하다.


Santo Nino

 사실 세부 여행기에선 명소에 관한 정보가 이미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별로 언급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사진은 잘 나온 것 같아 핑계 삼아 올리려고 한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500년대에 처음으로 세워지고 1700년에 재건된 성당이다. 아기 예수상과 마젤란의 십자가로 유명하니 잠깐 방문해서 5분 정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AA BBQ

 성당을 다녀온 뒤 카페도 가고 별로 올리고 싶지 않은 패스트푸드점 'Jollibee'에서 간식도 챙겨 먹으며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저녁엔 기가 막히는 바비큐집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필리핀 바비큐의 수준을 검토해보겠어'라는 양가감정을 갖고 식당으로 향했다.

 세부에만 매장이 세 개나 되는 거대한 규모의 바비큐 체인점이다. 필리핀식 바비큐는 코리안 바비큐와 형태가 비슷한데 해산물 위주인 점과 대부분 향이 강한 탄으로 직화를 하는 것이 특정이다. 쟁반을 들고 원하는 재료를 마구 담아 직원에게 주면 중량으로 계산하고 조리해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가격이 생각보다 좀 있으니 적당히 담도록 하자

 바비큐 냄새에 맥주를 한잔 하니 노래방에 가고 싶어 진다. 어쩔 수 없는 순도 99.98% 코리안임을 이 곳에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첫날 치킨집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 노래방 기계를 둔 가라오케에 가기로 했다.


가라오케 친구들

세부 시티 어딘가에 한국식당이 몇 개 모여있는 동네가 있다. 이 구역 한가운데에 서면 한 가게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동네방네 쩌렁쩌렁하다. 가게에 들어서니 학생들 12명이 가게에 테이블을 다 모아놓고 회식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우리도 나름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킨 뒤 'Man in the mirror'를 예약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대에 오르길 좋아했고 거의 매일 노래방에 다녔다. 그건 같이 갔던 녀석들도 마찬가지. 좀 유명한 노래 몇 개로 분위기를 띄우니 이 손님 저 손님 할 거 없이 다 같이 들고뛰고 난리가 났었다. 학생 무리들 중 미정이와 좀 친해진 여자아이는 미정이에게 'Sophia'라는 이름을 지어줬었는데 이 이름은 차후 이 녀석이 나와 함께 홍콩으로 취업을 가 실제 사용하기도 했던 이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나니 또 배가 고파진다. 이 미련한 녀석들과 편의점에 들려 간식거리를 사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노느라 고생했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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