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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l 18. 2019

[Republika ng Pilipinas] Cebu

2. 필리핀 세부

  나흘. Cebu city - 이상한 보통 사람들

스핑크스

 오늘은 핼러윈데이다! 겸사겸사 사람들이랑 놀고 싶기도 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긴다. 점심에 같이 식사를 하고 2:2로 팀을 나눠 정해진 금액으로 누가 더 재밌게 놀다 오는가 겨루기로 했다. 여행자가 두 명 이상일 때 해보면 미처 가보지 못했던 장소를 재미나게 찾을 수 있다.

House of  Lechon

 필리핀 하면 당연히 레촌을 먹으러 가야지!

 레촌(Lechon)이란 스페인이나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먹는 아기돼지 바비큐이다. 아기돼지라고 하니.. 좀 어감이... 무튼 어린 돼지 통 바비큐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간 곳은 '하우스 오브 레촌' 엄청나게 유명한 가게이니 그만큼 보장된 퀄리티와 대중적인 맛을 생각하고 가면 된다. 조금 이른 점심이지만 즐겨마시던 맥주 'Red horse'로 약간은 느끼할 수도 있는 돼지고기를 담백하게 넘겼다. 맛은 정말 맛있음!


Le Village Hostel

 아침 겸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 벙크배드가 가득 차 있는 숙소. 반갑다. 소지품들을 캐비넷에 얼른 넣어두고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팀은 나(사진 오른쪽), 종인(중) vs 미정(중), 원석(왼)으로 나눠졌다. 나와 함께 돌아다니게 된 종인이는 행운의 여신이 도운 것이 분명하다ㅎㅎ

꽃 시장과 동네 청년

 줄 사람도 없지만 우선 꽃 시장엘 들렸다. 비가 와서 우중충 했지만 오랜만에 꽃 향기를 맡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마사지를 받을까 PC방에 갈까 고민하면서 비를 맞고 동네를 구경하다가 길가에서 기타를 치는 청년을 만났다. 빗소리와 자동차, 사람들 소음 때문에 기타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렸지만 오지랖 넓은 여행객은 기타를 빌려 몇 곡 쳐본다.

화채!

 길가에 파는 500원짜리 달콤한 화채와 마차다.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이동하는데 이게 이동수단인지 관광상품인지 잘 가늠이 안되어 직접 타보기로 했다. 가격을 보니 관광상품이 맞는 것 같다.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동네 꼬맹이들이 비 맞으며 공놀이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매력적인 동네, 큰 도로로 나와 교통체증이 시작되어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라고 한 뒤 다시 걸었다. 슬슬 비도 많이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비도 오고 그래서 미정과 원석에게 연락해 마사지나 받고 숙소로 들어갔다.


저녁

 숙소로 들어가 저녁을 먹 자하니 애들이 장을 봐왔다면서 묵직한 비닐봉지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들었다. 저녁에 한 잔 하자고 위스키랑 음료, 군것질거리들을 사 온 모양이다.... 폭풍감동..... 너희들이 이겼다... 너무 착한 친구들

보통 게스트하우스는 레스토랑이랑 같이 운영하는데 여기는 바비큐 가게를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들 따라 줄을 서 삼겹살, 생선 등등 골라 직화 바비큐를 부탁하고 자리에 앉아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스트가 다가와 "밖에서 사 온 술 마시려면 코르크 차지 500페소 해야 해"라고 이야기한다. 흠...... 뭐 어쩔 수 없지... 500페소를 건네니 대신 재미난 걸 빌려주겠다며 3리터짜리 칵테일 타워와 음료 몇 개를 건네주었다. 이 정도면 이득인데? 역시 정이 넘치는 호스텔이구나!

포켓볼

 여유롭게 포켓볼을 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도중 호스트가 다시 다가온다.

"이따가 9시쯤에 핼러윈 파티할 건데 너네 타워 가지고 와 같이 놀자"

개꿀!! 그때까지 체력을 아껴놓자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깐

할러윈

 그야말로 대 환장 파티였다. 타워 두 개를 세워두고 술 게임 하나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되어 사람들 중 절반은 취해버렸고 벌칙으로 인해 다들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저 거뭇한 것들은 옆에서 바비큐를 한 뒤 남은 숯덩이를 나무에 갈아서 염료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름은 기억나질 않지만 우리나라의 '007 빵!'같은 게임을 2시간 넘게 하니 슬슬 지루해졌는지 누군가 다른 게임을 제안했다.

인간 피라미드

 이건 그냥 먹고 죽자는 것 같은데...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을 두 그룹으로 나눠 술잔을 채운다. 룰은 간단! 술잔을 비우고 테이블에서 손가락으로 잔을 튕겨 한 바퀴 플립 한 뒤 안정적으로 착지시키면 성공! 그다음 사람이 이어간다. 이 릴레이 방식은 사람들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들이붓게 만들었다. 벌칙은 인간 피라미드, 정말 다행인 건 다들 힘들었는지 두 판만에 두 손을 내려놓고 포기해버렸다.

휴식시간

 테이블을 싹 정리하고 불을 줄였다.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다들 호스텔에서 맥주 하나씩 집어 들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스라엘 남자애들 네 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얘네들 우쿨렐레를 들고 다닌다. 걔네들 방으로 놀러 가 연주도 듣고 같이 잼(즉흥 연주)도 즐기며 재미난 밤을 마무리했다. +사실 2차로 다 같이 클럽도 갔는데 금방 나와서 별 이야기가 없다


닷세. Moalboal - 모알보알

 새벽 4시 반. 잠에 든 지 한 시간 반 만에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 마음속으로 '5분만.. 5분만...'을 외치며 늦장을 부렸다. 안주도 없이 술만 들이부어 숙취가 가득한 머리를 부여잡고 오늘 있을 모알보알 투어에 갈 채비를 했다.

 새벽 5시 반. 숙소 앞 큰 길가로 나가 어제 마신 것들을 전부 비워내고 픽업 온 봉고차에 올라탔다. 몇 시간 정도 달려 남쪽에 있는 해안가 마을 '모알보알'에 도착했다. 오늘 우리가 할 건 스노클링과 캐녀닝! 차에 잠을 좀 잤더니 기똥차게 개운하다. 일과 시작!


모알보알 마을

 차에서 내려 짐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들렸다. 워낙 도시랑 떨어진 시골이라 화장실이 반 푸세식이다. 볼일을 보고 받아둔 빗물로 쓱 흘려보내는 식. 아주 마음에 든다.

 스노클링 스팟으로 가기 전 잠시 해안을 구경했는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얕고 넓은 바다가 눈 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다. 베트남에서 바다에 대해 환상이 깨지고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이 곳에서 최소 1박을 하지 않은 건 일생일대의 실수다.

 당시엔 수중에서 촬영할만한 장비가 없어 투어 가이드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촬영을 맡겼는데 파일이 날아갔는지 아쉽게도 수중에서 찍은 건 저 한 장이 전부다. 사실 사진이 더 있었더라도 실제만큼 아름답지 않아 아쉬워했었을 것이다. 탐스러운 꼭지쓰가 부끄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현지 상품을 예약하지 않고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한 바람에 다른 한국분들도 함께 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종인이가 일하는 호텔에서 직원으로 마주쳤다니 사람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의 페이보릿 배불뚝이 아저씨

 두 군데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가와산(Kawasan) 근처에 있는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가이드일을 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시는지 왁자지껄 동네를 신명 나게 만들고 있었다. 긴팔 옷과 워터슈즈를 착용한 뒤 재치 넘치는 아주머니의 안전교육을 듣고 산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왈라야 아주머니와 제프리

 왼쪽에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 여행 전반에 걸쳐 도움을 주신 '왈라야' 오른쪽에 있는 노란색 옷을 입은 친구는 미정이에게 빠져 사랑공세를 퍼붓던 '제프리'라는 친구이다. 여행 막바지 때에 미정이는 왈라야 아주머니와 헤어지기 싫어 하루정도 지내고 싶다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연락처라도 알려달라 했는데 아쉽게도 회사 규정상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는 건 안된다고 하셨다. 아마 투어 회사를 끼지 않고 개인 간에 투어 거래가 있을까 봐 미연에 방지해 놓은 것 같다.


가와산 폭포 캐녀닝

 여긴 세부 살던 우리 친척형 네 부부도 매년 꼭 방문할 정도로 기가 막힌 장소다. 마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산 정상으로 가는 입구가 나와 그 길을 따라 캐녀닝 시작 포인트에 갈 수 있다. 몇 번 방문하면 지인들과 따로 올 정도로 입지가 좋고 계곡의 특성상 외길이라 등산처럼 길을 잃을 경우도 적다.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하고 길이 없으면 물로, 물길이 막히면 바위 밑으로 기어가고 밧줄을 타며 동굴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흡사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같다. 어린 시절부터 모험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일반인이라면 그 꿈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4m 5m 10m 12m 15m 다이빙 포인트는 쉽게 해 볼 만한 경험은 아니니 두려움을 이겨내고 뛰어보자!

 다이빙은 매년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위험하지만 안전수칙만 지키고 무리하지만 않으면 이색 스포츠로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친척형이 이야기 해준 '어차피 죽을 사람은 방에 있다가도 죽고, 아닐 사람은 뛰어내려도 안 죽어'라는 무책임한 말이 모험심을 불러일으켰다.

+참고로 사진에 날짜가 2016년으로 되어 있는데 카메라 세팅을 초기화해서 그렇다고 한다.


따듯한 사람들ㅠㅠ

 정신없이 캐녀닝을 끝내고 트라이시클(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꽤 불어 추위에 떨며 쪽잠을 자던 미정이에게 플라스틱 판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손을 머리에 대 줘 약간이나마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해준 '라니'의 섬세함에 모두가 감탄했었다. 도착 후 샤워를 하고 나오니 왈라야 아주머니가 배고플 것 같다며 음식을 조금 준비해두셨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코코넛과 계피, 설탕을 넣어 만든 Sticky rice(끈적한 밥)라고 설명해주셨다. 한국의 약밥과 굉장히 흡사하고 건더기가 없이 밥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창고에서 꺼내 주신 맥주 하나와 그 약밥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라니' '제프리' '왈라야' 3인방과 꽤 오래 수다를 떨었다. 왜인지 금방 정이 들어 정말로 하루 묵어가고 싶었지만 민폐인 것 같아 이번은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미정이는 가와산으로 출발하기 전 오토바이 머플러에 종아리를 지져 화상을 입었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을 약국으로 달려가 처치 용품들을 사다 주셨었다.

 "야 미정아 제프리가 너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이리로 시집와라"

 처음엔 장난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미정이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후에 들어보니 이렇게 다정하게 챙겨주던 사람들이 흔치 않아 크게 감동받았고 순수한 그들의 모습에 여러 감정이 뒤섞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내 친구들도 다들 참 착한 것 같다.

 아쉽지만 그리운 사람들 뒤로하고 집으로 가자. 차로 약 다섯 시간을 달려 막탄섬에 예약해둔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내일은 늦잠 자야겠다.


+ 세부에서 액티비티 위주로 여행을 한다면 세부 시티나 막탄섬보다 세부섬 아래에 있는 네그로스섬 두마게테(더마겟 Dumaguete)에서 지내기를 추천한다. 시티보다 더 한적하고 사람들도 친절하며 무엇보다 세부의 메인 액티비티들은 거의 세부섬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효율적이다. 개인적으론 세부 30%, 모알보알 30%, 두마게테 40% 정도의 비율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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