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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l 22. 2019

[Republika ng Pilipinas] Cebu

3. 필리핀 세부

엿세. Mactan Island - 오도방구

 그제 저녁 파티부터 새벽에 일어나 떠난 투어를 끝내고 막탄섬에 있는 콘도형 아파트로 숙소를 옮겼다. 거의 기절하듯이 잠들어버리곤 오후에나 일어나 숙소를 둘러봤다. 수영장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내 다리처럼 기다라니 놀만하군. 수영을 느긋하게 즐기고 근처에 오토바이를 렌트할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친척형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아마 시티에나 렌탈샵이 좀 있고 막탄섬에는 별로 없을 거라 일러줬지만 "아니 분명 있을 거야"라고 말한 뒤 일단 나가봤다.








으이구 그럼 그렇지

 짜잔. 동네 경비아저씨에게 묻고 택시기사님께 물어 가까운 곳에 렌탈샵을 찾았다. 나랑 종인이만 나와 두 대를 빌리려 하는데 우리 둘 다 여권을 안 가져오는 바람에 난 집으로, 종인이는 서류를 작성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 친구들을 태워 막탄을 둘러보러 떠났다.

 

Alimango

 맹그로브 숲에 많이 살고 강이나 바다에서도 사는 게, 알리망오다. 일단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한화 6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경비가 많이 남아 좀 펑펑 써보기로 했다. 현지에서는 정말 비싼 음식이고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비싼 축에 속하는 갑각류 요리. 하도 한국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다 보니 아끼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나 보다. 이제 남은 이틀은 마구마구 써보자!

 우린 블랙페퍼, 칠리가 뿌려진 알리망오와 구운 로브스터 한 마리, 그리고 커리 같은 녀석을 시켰는데 달걀이 올라가 있다. 한국사람이 많이 오나보다, 된장찌개 비슷한걸 사이드로 내주기도 한다. 별로 추천은 하지 않으니 주소는 패스!

 친척형의 말로는 막탄섬에 있는 해변은 대부분 리조트에 소속되어있는 인공비치이므로 리조트에 머물지 않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해줬다. 섬 내에도 딱히 볼 게 없어 스쿠터를 타고 발 가는 대로 가다가 우연찮게 세부 시티로 다시 넘어와버렸다.

 시티에 들려 뭘 하지.. 하다 연습 카트나 좀 타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기 딱 좋은 놀이터, 그 쓸데없는 자존심을 연료로 경주하는 건 정말 재밌다. 생각보다 운전이 어려워 고군분투하는 도중 우리보다 족히 두 바퀴는 앞서 나가는 꼬맹이 삼인방을 보고 '괜한 경쟁심은 화만 부를 뿐이지'라며 겸손하게 임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제56사단 기동대대를 전역하지 않2년 전의 나는 절대로 불가능할 일을 했다. 물론 당시에도 거의 불가능이었지...

 시간이 좀 남아 지도를 켜 여기저기 찍어보다가

'Sky experience'라는 재미난 곳을 발견했다. 빌딩 외곽을 걷는 '스카이 워킹'부터 건물과 건물로 이동하는 '짚 라인'과 건물 옥상에 인공 암벽을 설치해 즐기는 암벽등반, 건물 모서리로 돌진하는 '에지 코스터'가 있는 곳이다. 시간도 돈도 많으니 일단 가긴 갔는데... 원석이만 빼곤 전부 높은 곳을 질색하고 나는 바이킹도 못 타는 겁쟁이 중 상 겁쟁이다. 무슨 생각으로 가자했는지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지만 일단 티켓을 끊었으니 하긴 해야지...

 짚라인은 당연히 더 높은 건물에서 더 낮은 건물로 이동하는데 순간 의문점이 생겼다.'올 땐 어떻게 오지?' 직원에게 물었다 "알게 될 거야"... 불길한데

 어찌어찌 줄을 꼭 붙들고 건물로 옮겨는 갔지만 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탔던 짚라인에 다시 앉아 기계 만들어주는 동력으로 다시 줄을 당기는 것.... 홀리쉣.... 발밑으론 그물이나 유리벽 같은 것 하나 없고 줄은 엄청나게 천천히 당겨준다. 중간지점에 다다르니 직원이 장난을 친다며 전원을 켰다 껐다 하며 공중 그네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건물 40층 높이에서 장난이라니, 순간 살고 싶은 마음에 하지도 않은 잘못에 사과하며 싹싹 빌다가 결국 온갖 상욕을 난무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도착해 직원에게 귓속말로 "쟤네들은 더 심하게 해 줘" 다음 타자를 더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난 엄청나게 굳어있다. 저 사진도 정말 가까스로 찍은 것. 스카이 워킹 중반엔 바닥이 훤히 보이는 유리부터, 구멍이 난 곳까지.. 차라리 스카이다이빙이 덜 무서웠던 것 같다.


Baguio craft brewery Cebu

 맛있는 맥주를 즐기러 갔다. 꽤 유명한 로컬 맥주 '바기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아이티파크 앞 팬시한 펍과 바가 모여있는 구역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양조장은 바기오라는 지역에, 지점은 마닐라, 세부, 바기오 세 군데에 있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그 나라의 지역 맥주를 마셔보는 건 기본! 적지 않은 종류의 크래프트 비어를 보유하고 있으니 맥주 애호가라면 필수 방문이다. 고기 요리 한 가지와 타파스를 주문하고 타입별로 IPA, 발리와인, 도펠 보크, 비터를, 후에 밀맥주와 포터도 추가로 더 주문해 전부 비워냈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그간에 담아뒀던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겪고 있던 사람 간 오해를 필두로 서로서로 조언과 격려를 아낌없이 나눠줬다. 이날 모두가 갖고 있던 고민들을 털어내고 감정들을 공유했는데 그 날이 아마 2017년 가장 소중했던 기억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에게 너무나 따듯하고 진심 어린 말들을 듣고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되찾으니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따듯하고 개운했다.

 종인이는 늘 고민이 산더미다. 모든 사람과 상황이 그러하듯 세상은 이 친구에게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핍박만 쏟아내고 있었다. 쉴 틈 없이 일해도 상황은 나아지질 않고 직장에 출근하는 길이 괴롭기만 했을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전에 언급했던 대표님과 함께 케이터링 작업을 진행하던 때에 요리사 한 명이 급하게 필요해 종인이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휴무일을 변경하고 일을 도와줄 정도로 이 아이에겐 즐겁게 일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봉에 일은 재미도 없고 20년 이상 버틸 자신도 없다. 요리사로서 살아가는 게 다 그렇다는 선배들과 교수님들의 말을 난 듣질 않았다. '원래 그런 게 어딨어'  20대 초반인 우리들에게 1년에 한 번 해외여행도 갈 여유가 없다면 그 직장은 때려치우는 게 맞다. 취직이야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세상을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

 종인이는 이 한마디에 힘들게 취직한 서울권 호텔에서 뛰쳐나왔다. 사실 취직하고 잘 살아가던 녀석한테 괜히 불씨를 지펴 앞길을 가로막는 건 아닐까 조금 미안했지만 한 없이 착한 이 친구는 오히려 고맙다며 등을 토닥여준다.


닥트리오

 등을 토닥여준다. 근처 마트에 들려 장을 본 뒤집에 도착했다. 날도 별로 춥지 않고 살짝 오른 취기에 수영장으로 달려 나갔다. 오늘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마지막 정류장이다. 동남아의 여유로움을 뼛속까지 담아가고자 조금은 무리를 했다.

 미정이가 갑자기 우울해 보인다. 처음엔 남자 친구랑 문제가 생겼나 했지만 이내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싫다는 것. 다시 돌아가면 반복되는 일상이 두렵고 허덕이는 삶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이때 미정이가 21살이었는데 21살이 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일단 집으로 와 늦은 저녁과 함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아까 사 온 것들을 풀어 간단히 조리하고 과일을 썰었다. 미정이는 아직도 기분이 많이 우울한지 기운이 없어 보여 잠시 쉬게 하고 나와 원석이, 종인이가 음식을 준비해 해치우려는 찰나, 갑자기 미정이가 울기 시작했다. 우린 어찌할 줄 몰라 일단 울게 내버려두고 구석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슬슬 감정이 정리가 되자 술을 따르고 다 같이 건배를 하며 또다시 속마음 털어놓기 part.2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엊그제 모알보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새 너무 그립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착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 녀석은 그간에 많이 힘들었는지 그들이 줬던 사랑과 정성은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크게 다가왔었다. 다쳤다며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바로 달려가 약품을 사다 주는 아저씨들과 동네 아주머니처럼 챙겨주던 왈라야 아줌마, 약간은 흑심이 있었지만 따듯한 손길을 베풀어주던 라니와 제프리. 조기취업, 상경, 학비, 아르바이트. 사람과 일에 치여 순수함을 잃어버린 이 친구들에게 엊그제 만난 모알보알의 사람들은 꾸밈없는 순수한 미소를 보여줬다. 다들 너무 달려만 왔나 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잠깐이나마 휴식이 필요한 그들에게 세부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그 와중에 원석이는 자기 힘든 얘기를 안 한다. 원래 이런 녀석이니까 굳이 이야기하라고 보채지는 않았다. 얘랑은 그냥 단 둘이 국물 닭발에 소주 한잔 마시다 보면 알아서 술술 털어놓게 되니까 한국에서 이야기를 더 나눠봐야겠다. 눈물바다가 되는 건 덤이다.

 

이제그만 자자

 집에 도착했다. 너무 짧은 여행이었다. 여행은 그만하고 아예 살러가야겠다.

필리핀 세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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