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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l 29. 2019

[Việt Nam] Hà Nội

1. 베트남 하노이


대학교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학교에서 해외취업 공고가 올라왔다. 당시 서울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보고자 상경하여 지낼 보금자리를 알아보던 시기인데 여자 친구와 관계가 위태해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때마침 이별통보를 받고 잠깐의 아픔을 이겨냄과 동시에 학교에 올라왔던 해외취업공고에 바로 지원했다. 홍콩.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숙소도 지원해주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으나 회사 내에 여러 가지 불화와 가치관 충돌로 8개월 만에 한국으로 복귀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 베트남에 들려 심신을 치유하고자 여행을 떠났다. 기간은 한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인 8월부터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인 9월까지이다.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베트남에서 지내보자!


1. Seoul - 또?

 지난번 필리핀에 갔던 멤버들을 다시 만났다. 홍콩에 같이 취업했던 미정이는 먼저 퇴사를 한 후 안 본 지 몇 개월이 채 안됐지만 원석이나 종인이는 거의 1년 만에 재회하는 셈이다. 이탈리아에 같이 갔던 자경이와 함께 건대입구에서 오랜만에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문뜩 떠올라 다시 휙 하고 던져봤다.

"다음 달에 여행 갈 사람 ㅎㅎ"

종인이와 미정이가 또 손을 든다. 일은 때려치운다나 어쩐다나... 여차저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시간 만에 윤곽이 잡혔다. 베트남, 1개월, 북에서 남으로. 사정상 종인이와 단 둘이 가게 되었다. 거의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떠난다.


2. Hanoi - 다시 여행자 모드로

 

나름 깔끔한 모습

 인천공항 놀부보쌈에 들려 보쌈 2인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행 가기 전이면 꼭 들려 부대찌개와 소주 한 병을 비우는 곳인데 가성비가 훌륭하다. 여분의 여권사진을 찍고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 번 여행의 경비는 60만 원, 숙소와 교통비 모두 포함된 금액이라 제대로 된 배낭여행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볼 수 있다. 다른 말로는 '거지 여행'

오후 10시쯤 하노이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이 전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는 'Grab'이라는 일종의 우버 시스템이 보편화되지 않았어서 택시 색으로 택시를 골라 가격을 흥정하거나 미터기를 켜고 가는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했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녹색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미터기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할증 버튼'같은 걸 눌러 요금을 뻥튀기시킨 것 같은데 하루 만에 1일 경비의 절반을 사용한 터라 이 후로 택시는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택시기사랑 다투고 가벼움 몸싸움까지 있었지만 하나 배웠다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늦게 도착한 탓인지 숙소 문은 닫혀있고 호스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문 앞에서 10여 분간 소리쳐 호스트를 불러 체크인을 한 뒤 근처에 요깃거리를 찾아 나왔다. 종인이는 편의점에서, 나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각자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이른 잠에 들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골목을 쏘다니니 비로소 동남아에 온 것이 실감 나는구나. 굿밤 베이비


Artist guest house

 마음이 들떠있어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종인이는 피곤한지 먼저 나갈 채비를 하는 기척에도 깨지 않고 곤히 잠들어있다. 우선 교통편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오토바이 렌트할 곳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머지않은 곳에 투어리즘 회사가 위치해 있어 3일 정도 렌트하고 덤으로 '론간'이라고 불리는 말린 라이치 같은 과일을 얻어먹은 뒤 집으로 가 녀석을 깨우기로 했다.

 언뜻 보면 무질서와 혼돈의 복합체인 베트남 도로에서 스쿠터로 이리저리 다니는 게 처음에는 낯설고 무섭지만 반나절 정도만 다녀보면 금세 익숙해진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귀가 아프다고 하지만 내겐 오히려 경적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즐겁다. 여기선 '나 지나가요~ 조심하세요~'정도의 의미로 울리는 것이니 신경을 너무 곤두세우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Bún Bò Nam Bộ Hàng Điếu

 분보남보(Bún Bò Nam Bộ)는 분짜(bún chả) 다음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트남 국수의 한 종류다. '분' (bún)이라 하면 얇은 쌀국수를 의미하는데 '분'으로 시작하는 음식은 대부분(내가 아는 한 전부) 국물이 없이 느억맘(피시소스)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만든 소스를 부어 먹는 비빔국수이다. '보'는 베트남어로 '소고기'이고 '남보'는 한국말로 '남부(南部)'라는 의미이다. 베트남어 또한 한국어처럼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언어이므로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이렇듯 베트남 음식은 이름만 보아도 조리방법과 주재료를 쉽게 알 수 있으니 몇 가지만 공부해가면 음식을 주문함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Cộng Caphe

 첫날은 늘 그렇듯 명소를 후다닥 둘러본다.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장소를 둘러보는 것이다. 사실 크게 감흥은 없지만 시간도 많고 굳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발도장 정도만 찍어두고 남은 시간 동안에 아쉬움 없이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수 차례 더 방문해 볼 수 있으니 첫날은 그 장소들을 주관적으로 평가해보는 나름의 '평가일'이다.

 '성요셉 성당'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두고 바로 옆에 있는 국민 카페 '콩 카페'에 들어서니 약속이라도 한 듯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여행한 시기는 우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지만 여전히 소나기가 자주 내렸었다. 비도 피할 겸 코코넛 커피 스무디를 들이키며 설탕을 충전했다. 솔직히 나름의 허세와 곤조로 한국인들이 추천하는 장소는 조금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콩 카페는 어나더레벨이기 때문에 망설일 것이 없다. 일단 베트남 커피 자체가 상당히 맛있기 때문에 이를 대박 상품화시킨 가게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노이 기찻길 마을

 신도 도와주는 Justrip의 여행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페를 나서자마자 비가 그쳤다. 오토바이에 빗방울들을 손으로 대충 쓱쓱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기찻길 근처로 좁게 뻗어있는 마을이다. 시간을 잘 맞추면 실제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운행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하면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여행객이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 조용하게 젖은 동네를 구경하기에 훌륭했다. 방학이나 휴가시즌에 오면 쭉 뻗어있는 기찻길을 촬영함과 동시에 적지 않은 인파의 얼굴을 찍을 수 있다.



더위에 지쳐버린 털 복숭이

 비교적 긴 머리를 헤어밴드와 머리끈으로 묶어 다니다가 더운 날씨에 답답한 마음이 들던 찰나 작은 이발소를 발견했다. 한화 2000원 정도 가격에 남자 머리를 다듬어 주는데 가게 안에는 아주머니 한 분과 소녀, 강아지가 앉아있다. 필리핀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려 대충 이런 식으로 해달라 요청하고 별다른 기대 없이 몸을 맡겼으나 웬걸 생각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 집엔 여기저기 강아지와 고양이를 구경할 수 있어 쉽게 떠나기 힘들었다. 응가가 마려워 빌려 사용한 화장실에선 세면대 아래에 자고 있는 고양이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3. Hanoi - 350원 맥주

호엔끼엠 호수

 저녁 무렵이 되어 오전에 잠깐 구경했던 호엔끼엠 호수를 산책하러 다시 들렀다. 여기저기 조깅하는 사람들과 무술 하는 아저씨들, 물건을 판매하는 아주머니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볼 수 있다.

Quán Ăn Ngon

 하노이에 들렸으면 한 번쯤은 가볼만한 식당 꽌안응온(Quán Ăn Ngon)이다. 베트남어로 응온(Ngon)은 '맛있다'라는 뜻이니 여기저기 들리면서 마구 남발해보도록 하자. '짠내 투어'에서 박나래가 소개한 이 식당은 예약하지 않으면 최소 30분 이상 웨이팅을 해야 하니 나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예약은 필수.


여행자거리

 동남아의 대 도시를 둘러보면 대부분 흔히 '여행자 거리'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하노이도 유명한 여행자 거리가 있는데 별칭으로 '맥주 거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빽빽이 들어선 술집들과 가게 앞에 놓여있는 작은 목욕탕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거리를 베트남스럽게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동네를 구경하던 도중 단속반이 출연해 단 30초 만에 손님들과 노상들이 사라지는 놀라운 마술을 보기도 했다.


약 350원

 아크릴로 만들어진 파인애플 모양 잔에 담긴 300cc 맥주가 이 동네에선 단돈 350원이다. 각 집집마다 양조하고 보관하는 맥주들이라 신선도가 보장되진 않지만 저 정도의 가격이라면 충분히 감내하고도 남는다. 베트남 북부에선 보통 500원 정도 하는 프레시 비어(Fresh beer)는 남부에서 150원에 즐길 수도 있다. 날씨가 더 더운 지방이라 가끔 상한 맥주를 마실 수도 있으니 음식을 주문하기 전 먼저 맥주를 한 잔 시켜 보는 것이 팁 아닌 팁이다.

 이날 늘 고민이 산더미인 종인이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열두 잔을 들이켜버렸다. 구태여 말하자면 혼자 아홉 잔을 마셔버려 이 날의 기억은 살짝 희미한 게 흠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북적북적한 클럽에 들어갔다. 그 클럽에서 만난 여섯 명의 친구들 중 두 명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시 하노이에 돌아가면 신세 좀 지기로 약속했다. 이런 게 또 여행의 매력 아니겠는가 한 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갈만한 이유를 남겨두고 오는 것.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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