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방콕
우리가 그렸던 미래는 바람대로 잘 이루어졌다.
두 달간의 인도여행을 끝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태국으로 향했다.
인도는 예상보다 더 독특한 문화와 환경을 가진 유일무이의 나라였고, 적응했다 마음이 놓이면 그런 자만을 책하듯이 다시 돌팔매를 날렸다. 때로는 정면돌파하기도 매질을 요리조리 피하기도 하며 우리의 방식대로 잘 살아남아, 충분히 즐기고 충분히 돌아보며 한 층 더 단단하고 유연해졌다.
ภาษาไทย : 인디티다이루짝카.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도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조금 더 채운 뒤 마지막 채비를 하고 다음날 아침, 시내로 향하는 공유택시에 올랐다. 가방이 하나 더 생겼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타야 할 기차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이동했다. 이제 마지막 고비, 이 절벽길만 무사히 지난다면 앞으로의 여행은 안전하다. 이 길을 온전히 느끼고자 이어폰과 스마트폰은 잠시 품에 넣어두었다.
원래 이렇게 많이 타는 거였나? 오늘은 사람이 많네. 지난번과 같은 차종인데 사람은 두 배. 맨 뒷자리에 산만한 남자 셋과 채은이가 서로 골반을 꽉 낀 채 무동으로 4시간을 이동한다…. 어렸을 때 이후로 차멀미는 진짜 오랜만이었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항공사. Let’s get high together!! 우리 갈 때까지 가봐요!!
늦은 오후 10시 델리에 도착한 우리는 마지막 잔돈을 털어버리고 곧장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정말 잠만 자려고 예약한 숙손데 호스트가 너무 나이스 해서 더 오래 지내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며 다음여행을 기약했다.
항상 마음의 거리낌이 없는 인도사람들은 가끔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 준다. 전혀 접해보지 못한 문화라 처음엔 생소했지만 결국 그들의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입장줄을 기다리며 잠깐의 대화를 나눴던 그들은 우리의 미래와 가족의 건강까지 기도를 해주고 떠났다. 다소 독특한 억양으로 말을 전한 터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채은이의 팔과 목에는 소름이 돋아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둘이 남게 되자 그녀는 ‘그 사람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느껴졌다.’라는 말로 나에게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던져줬다. 말은 이해하지 못했는데 마음과 눈빛으로 느껴졌다….. 마음은 참 따듯한 사람들이었다.
가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소란스러운 그들을 보며 광기와 순수를 함께 경험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늘 당황스러웠다. 다소 자주 밉기도 했던 그 나라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살면서 경험해 보기 힘든 맑은 마음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사람을 느꼈다. 때 묻지 않은 순수 안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피부로 느끼며 나는 인간, 그 자체를 만났다. 역시나 처음 예상했던 대로 인도는 사람의 나라였다!
태국
두 달 만에 마시는 맥주…. 신선한 채소와 새우볶음요리, 세계 최고의 음식의 나라, 관광대국 태국에 도착했다. 말도 안 되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용히 걸으며 음식을 먹으러 나섰다. 인도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완전 90년대였는데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온 듯 잊고 있던 문명의 혜택을 바라보며 며칠 내내 감탄만 했다. 태국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깨끗한 나라였다. “와 진짜 벌써 다시 오고 싶네.”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지난 이틀간의 행군으로 피곤에 절은 우리는 다음날 아침 요가로 해장했다. 오늘 활동할 만큼의 에너지를 얻었으니 바로 구경을 다녀야겠다.
요가원으로 오는 길에 만난 작은 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매우 유명한 관광지인 짜뚜짝시장은 주말이 아닌 데에다 이른 시간이라 문 연 가게가 몇 개 없었다. 이 시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오토코마켓(Or Tor Kor Market). 먹을거리 볼거리가 풍부하다. 몇 번이고 실패했던 두리안을 코로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틈을 타 난생처음 도전했다. 생각보다 역하지 않은 냄새(버프받은 코)와 적당한 단맛, 풍부한 지방맛에 반 덩이를 다 먹었다. 역시 사 먹고 싶지는 않은 맛.
드디어 벼르고 벼뤘던 태국여행을 왔겠다 그동안 궁금했던 음식들을 다 먹어봐야 한다. 첫 음식은 물론 팟타이와 똠양꿍. 황홀하다. 세상엔 이런 음식도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
간장게장이 있네.. 열대과일과 한입거리 간식들, 각종 밀키트가 진열되어 있다. 태국은 편의점도 그렇고 1인 식사 포장이 잘 돼있다. 아마 일본이나 한국처럼 1인가구가 많아지는 추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태국이 음식을 ‘사 먹는’ 나라여서 그렇다고 한다. 우선 태국음식은 센 불에 볶아야 맛이 나는 음식들이다. 이런 음식을 집에서 하기에는 도구도 많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냄새가 날 테니 보통은 나가서 사 먹는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가격은 저렴하지만 어느 식당을 가도 실패할 수 없는 수준의 식문화가 발달했다. 무엇보다 조리법 자체가 맛있고 이곳은 식재료도 풍부하다. 새우를 이렇게 여기저기 넣는 줄은 몰랐는데 관광객입장에서는 너무나 아름다운 요식시장이다.
건강도 빼놓지 않고 잘 챙기는지 시장 한가운데에는 연근이나 레몬그라스 등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료들이 있다. 연근주스는 고구마 같기도 하고 카사바 같기도 하다.
계획은 없었는데 ’지나가다 들러보자‘한 곳에서 3시간을 쇼핑했다. 짜뚜짝시장 뒤쪽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빈티지빌딩(Red Building Vintage Chatuchak)은 건물 전체가 빈티지를 파는 몰이다. 3층과 4층은 빈티지 옷을 파는 가게가 수백 개가 있어 우리는 그만 양손 가득히 되어버렸다. 티셔츠 한 장으로 시작해서 겨울용 청바지 두장, 모자 등등 이제부터 한국에서 필요한 문명의 물건들을 구비했다. 안 샀던 살구색 반스는 다행히 눈에 아른거리지는 않는다.
마감을 두 시간 정도 앞두고 아시아틱 시장에 도착했다. 잘 정돈되고 관리된 건물에 이런저런 상점이 들어가 있는 전통시장의 백화점버전. 덕분에 가격도 좀 비싸지만 가만 보니 이쪽은 흥정을 하는 분위기다. 태국은 원래 인도처럼 3배씩 부르고 흥정하는 문화는 아니라고 하는데 이곳은 관광객들의 동남아프레임으로 인해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았은 것 같다. 인도의 상인들처럼 털털하게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 쩔쩔매며 가격을 후려치는 게 약간 연극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사지는 역시나 굿. 요가로 건드릴 수 없는 부위까지 삭삭 풀었다.
팟타이를 본 나의 눈처럼 채은이는 반짝반짝한 채로 시장 곳곳에 보이던 뷰티스토어에 들어갔다. 확실히 k-뷰티가 반응이 좋구나. 프로모션 하는 제품은 따로 모아두고 한국으로 테마를 잡았다. 케이팝 좋아하는 친구들 많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친구들‘만’있는 곳은 또 처음이다. 매장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은 심지어 춤도 추고 있다. 굉장히 샤랄라 하고 틴에이지하고 다크한 분위기의 군중들. 예전에 게임이나 영화에서 봤던 모습 같다.
약간 이런 느낌.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사이버펑크. 높고 복잡한 마천루에 가려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빌딩사이를 오가는 드론과 엄청난 양의 전광판으로 뒤덮인 도시. 거대기업의 등장으로 생긴 극심한 빈부격차로 고통받는 사람들. 엄청난 인구밀도. 아마 당시의 우리가 떠올렸던 미래의 모습이었나 보다. 인도에서 나온 지 하루 만에 경험한 세상이다. 그렇게 보니 우리는 미래를 깨나 잘 예측했다. 눈부신 발전과 함께 자연스레 무너져가는 도시의 아름다움.
현재의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고 만드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불안하고 척박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바람을 그대로 그림에 옮겨놓은 모습이다. 오늘 네옴시티를 떠올렸던 나는 미래에서 이런 그림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마사지받으면서 떠올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