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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Aug 18. 2019

[Việt Nam] Đà Nẵng

5. 베트남 다낭







동허이 -> 다낭 (기차 7시간)











1. Da nang - 길목

새벽 5시쯤 일어나 오토바이에 시동을 켜고 약간은 쌀쌀한 공기에 졸음을 밀어내며 동허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뒤 예매해둔 기차에 올라탔다.

동허이 기차역. 오른쪽에 보이는 음식은 기차에서 제공된는 물과 음식들이다.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다낭이다. 한국에서 휴양지로 핫한 관광지인데 솔직히 휴양지라기엔 바다도 예쁘지 않고 생각보다 큰 도시에, 호이안이나 바나힐정도를 제외하면 근처에 둘러볼 곳도 많이 없는 곳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직항노선이 생긴 이후 마케팅으로 인해 한국에게 유명해진 대표적인 '거품 여행지'이다. 작년에 방문했던 다낭에서의 기억은 온전히 황홀하지만 어쩌면 여행지로써의 매력이 아니라 '고된 근무 후 떠난 해외여행' 자체에 의미가 더 컸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다낭에서의 일정은 '빨래'에 초점을 맞췄다.


다낭에서 묵었던 Thu 아주머니의 집

 다낭역에 정오쯤 도착해 버스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Thu 아주머니의 집으로 갔다. 다낭 시내 초입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조금 조용한 동네인데 집 근처에 작은 사찰 겸 학원으로 쓰는 건물이 있는 귀여운 집이었다. 사실 또 길을 잃었지만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도로명주소를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맞춰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3층으로 되어있고 옥상이 있는 집, 각 층마다 방이 3개 정도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다. 2층에선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는데 아주머니의 동생분께서 'LOL'을 하시는 걸 보고 '배틀그라운드'를 설치해보려 했지만 금세 생각을 바꿔 빨래를 하러 나갔다. 내리쬐는 태양에 빨래를 바싹 튀겨버리곤 '롯데마트'로 달려갔다.

조 씨 표류기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 마트로 가야 하는데 도로가 너무 넓다. 신호등도 너무 많아... 길을 건너는 횡단보도를 못 찾아 그냥 도로를 가로질러버렸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된다.

 오늘의 목표는 '삼겹살에 된장찌개', 마트에서 커다란 덩어리로 썰려진 삼겹살과 팩에 들은 포장김치, 된장 대신 산 쌈장과 갖가지 채소를 두둑이 가방에 넣어 들뜬 맘으로 마트를 나왔다. 버스를 기다린 지 30분이나 지났지만 집으로 가는 버스는 오지 않고 핸드폰은 방전이라 근처에 보이는 타투샵에 들어가 'Grab'택시를 불러달라 부탁하곤 배고픔을 못 이겨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2. Da nang - 오늘 만났지만 가족!

다낭의 버스정류장

 오후 8시 반, 약간은 늦은 시간에 식구들은 전부 저녁식사가 한창이다. 실은 모두에게 한국식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조금 넉넉히 재료들을 샀는데 미리 말하지 않은 게 화근이다. 아주머니께 식사 다 하시면 우리도 저녁을 해 먹을 테니 미리 일러달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덧붙여 "사실 여러분들 식사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저희가 너무 늦었네요 하하"라며 은근히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재료야 여행하면서 천천히 먹어버리면 되니까 문제없다.





만찬

 음식을 시작했다. 요리사들답게 '채소와 요리'파트와 '육부'파트를 나눠 종인이는 집에서 채소 손질과 전에 호텔에 있을 때에는 가끔 쌈장으로 찌개를 끓였다며 재미난 방법으로 된장 없는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난 밥을 앉힌 뒤 연기가 날 것에 대비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다. 마당에서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고기를 굽고 있으니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둘씩 나와 구경을 하신다. "한궈?(한국?)" 이라며 바로 알아보셔주셨다.

같은 집에 지내고 있던 베트남 아주머니가 나와 말을 걸어주신다.

"지금 어떤 거 만드는 거야?"

좋아 오늘 꿀잼 파티 각이다. 만드는 음식들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여행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재미나게도 이 아주머니 남편분이 이탈리아분 이시란다. 피렌체에서 거주하시고 지금은 친구인 Thu아주머니네 집에 잠시 놀러와 휴식을 즐기는 중이라 하셨다. 이 아주머니와 함께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험담 아닌 험담을 하며 고기를 구웠다. 음식이 거의 준비되어 혹시 몰라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여쭤봤다.

"혹시 배 많이 안 부르시면 같이 와서 맛이나 좀 보실래요?"

다들 주저하시더니 금방 자리에 앉아 이내 테이블이 꽉 들어찼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아저씨의 친구, 아주머니의 어머니, 아주머니의 친구와 그녀의 남편, 삼촌, 동네 아저씨 한 분 까지. 사진에 전부 담겨있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분이 모여주셨다. 덕분에 다 같이 '코리안 칵테일'을 말아 건배를 하고, '발효된 콩 장'과 '돼지 뱃살'을 넣은 '상추 롤'을 입에 넣었다. 커다란 상추쌈을 한 입에 털어 넣는 우리를 보고 다들 놀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다 보니 발효+숙성된 한식의 식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제대로 된 삼쏘(삼겹살+소주)'를 즐기는 법을 알려줬다. 노란색 티를 입은 분이 이탈리아남편분이신데 머그컵에 소주를 벌컥벌컥 드시더니 1시간이 채 안되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잊지 못할 거예요

예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 있었다. 무슨 '한식 전도사'는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며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국요리를 해주고 영상을 촬영해 기록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엔 수익창출도 가능하니 여행경비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예상치 않게 첫 에피소드를 시작했다. 카메라도 없고 편집도 할 줄 몰랐던 때였지만 처음치곤 꽤 훌륭한 발돋움이었다.


 아주머니가 언제나 마셔도 좋다며 냉장고에 넣어두신 맥주 한 박스를 다 같이 비워내니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가족'에 집착하는 이유. 우리 가족은 화목했다. 별다른 문제없이 성인이 된 나는 대학교를 위해 자취생활을 시작했고 아버지는 근무지 발령으로 인해 바로 옆 도시에서 5년째 자취 중이셨다. 누나도 이미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 어머니가 혼자 지내시던 본가까지 네 명이서 네 집 살림을 하던 셈이었다. 수년간에 자취생활과 갑작스레 편찮아지신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가족들은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고, 그 무렵 난 군에 입대했다. 전역을 하고서 다시 시작한 자취, 건강이 나아지질 않는 어머니로 인해 놀랍게도 가족 간 연결고리는 두터워졌다. 사실 조금은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동대문 곱창'과 함께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며 지난 몇 년간의 감정들을 교류했다. 당연하게도 비극인 부모의 부재는 반대로 다른 가족들로 하여금 단단한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아버지와는 '집에서 먹으면 무생채에 흰밥도 두 그릇은 뚝딱이지!'라며 '집밥'에 대한 경이로움을 찬양하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난히도 감사한 한식 집밥을 베트남에서 즐겼다.


3. Da nang - 조용한 호텔이 안타까워

 난 여행 전 종인이에게 약속했다.

 "이번 여행으로 넌 직장을 잃었으니 내가 작게나마 선물을 줄게".

 오늘이 그날이다. 정확하게 1년 전 묵었던 호텔을 예약했다. 배낭여행자들에게 1박에 6만 원짜리 호텔은 엄청난 거금이지만 하루만!

아침에 일어나 빨래를 걷으러 마당에 나갔다. 아주머니는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시고 나머지 분들은 벌써 진작에 나가셨다고 한다. 하루밖에 머물지 않을 곳이라 아침에 전부 인사하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다. 아주머니는 아침으로 반미를 먹는 게 어떻겠냐며 자전거를 타고 근처 골목길에 다녀오셨다. 사탕수수 주스와 햄 반미로 아침을 먹고 늦지 않게 짐을 챙겨 인사를 드렸다. 그때 아주머니의 어머니, 할머님은 아주머니에게 통역을 부탁해 무언가를 이야기하셨다.

"Thank you for making us unforgettable memories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cảm ơn, cảm ơn(감사합니다...)

가볍게 포옹하고 인사를 드렸다. 우리가 해야 했을 대사를 듣고 나니 살짝 뭉클한 마음에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에선 만남과 이별이 너무 빠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순간의 기억들이 쉽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어제 먹다 남은 쌈장을 가방에 넣고 시내로 나간다.


다낭

 다낭 시내는 워낙에 정보가 많으니 빠르게 훑고 가겠다. 한 시장(Cho han), 꼰 시장(Cho con), 하이랜드 커피(Haigh lands coffee), 쌀국수 맛집 퍼홍(Pho hong), 핑크성당에 들렸다. 꼰 시장은 해산물이나 고기 위주의 시장이고 한 시장은 전형적인 베트남의 잡동사니 시장이다. 개인적으로 2017년 이곳에서 산 가방과 파우치를 2년 넘게 사용하고 있으니 귀여운 아이템을 몇 가지 들고 오는 걸 추천한다. (베트남 바지는 이곳 말고 호이안 시장 구석에 있는 가게에 훨씬 유니크한 것들이 있으니 여기선 사지 않는 게 낫다)


The phoenix hotel da nang

 작년 오늘 이 호텔에 머물렀을 땐 직원도 많고 손님도 바글바글했는데 이상하게 뭔가 낡은 기분이다. 조용하고 관리 안된 느낌... 침대는 역시나 푹신푹신했지만 직원들에게서 그 특유의 '밝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손님들 발길이 끊겼나 보다. 아니면 아직 시즌이 오지 않았다던가,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이 있던 곳이라 후자의 경우이기를 바랐다.

고민이 많은 그 녀석의 뒷모습 (Part.2 )

 호텔 근처에 있는 바비큐집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 누워 티비를 틀어 과자봉지를 손에 쥐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며 이리저리 유추해본다. "저 사람은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거야, 지금은 실패한 사업가로 간신히 삶을 버텨 내고 있지만"이라며

 옆에선 종인이가 친구들과 전화하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다.

 "형 잠시 나갔다 올게요"

 30분 뒤 돌아온 녀석의 얼굴에는 또다시 근심이 가득하다. 몸이 편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 모양이다. 어떤 특정한 것이나 생활 자체에 집중하지 않으면(불편한 숙소라던지) 담아뒀던 걱정들이 하나둘씩 뇌리를 감싸 온다. 실은 걱정하는 일에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거나, 설령 일어난다 해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이렇게 믿고 있는 난 종인이를 데리고 바람도 쐴 겸 옥상에 올라갔다.

작년 필리핀과 비슷한 이야기다. 앞으로의 날들이 걱정된다는 것.

종교가 없는 나도 좋아하는 글귀가 하나 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어쩌면 참 무책임한 말이면서도 뒤집어 생각해보면 '웬만한 일은 감당할 수 있음'이다. 어차피 다가올 일이라면 받아들이고 부딪히고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10시 이후에는 출입이 불가능한 옥상 수영장 바닥에 앉아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축축해진 엉덩이지만 일단은 그냥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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