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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Aug 14. 2019

[Việt Nam] Đồng Hới -2

4. 베트남 퐁냐께방 국립공원







동허이 -> 퐁냐께방 국립공원(오토바이 1시간 30분)










1.  Phong Nha-Ke Bang - 솔직해지기

저 고글은 사실 홍콩에서 산 물안경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모래가 눈으로 다 들어온다. 난 선글라스라도 끼고 다녀서 좀 덜했지만 종인이는 맨눈으로 안구에 모래를 정통으로 맞아 고통스러워한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물안경을 꺼내 줬다.


 약속한 대로 어제 만난 잭슨의 친구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퐁냐께방으로 향했다. 차로는 한 시간, 오토바이로는 1시간 반 또는 그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 한국에 비해 포장이 덜 된 울퉁불퉁한 도로는 있지도 않은 수전증을 만들어줬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며칠간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 비에 우리는 '과연 동굴이 괜찮을까?'라며 걱정했지만 역시나 '될 대로 되라지' 마음가짐으로 여지없이 달려갔다.

역시는 역시 역시다

 퐁냐께방 국립공원에 도착해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로 달려갔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항손둥(Hang Sơn Đoòng)은 애초에 우리 여행경비의 몇 배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가격 때문에 고민조차 안 했지만, 비교적으로 작고 대중적인 파라다이스 케이브나 다크 케이브 정도는 들어갈만하다고 판단했다. 

파라다이스 케이브 입구

 동굴 입장 매표소로 가면 짚라인을 타고 들어갈지, 카약을 타고 들어갈지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걸어서 입장하는 줄 알았는데 동굴 입구가 강 맞은편에 있어 무. 조. 건 물길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며칠간 이어졌던 강우로 인해 물살이 빠르고 탁하다는 것. 먼저 동굴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내 또래의 젊은 남자애들이 손사래를 친다. 

"돈 낭비야.." 

좋아. 멋진 기암괴석을 봤으니 좋은 드라이브를 즐겼다 생각하고 바로 다낭으로 넘어가자.

베트남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퐁냐께방 국립공원 동굴여행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빠르게 적응한다. 다른 말로는 변화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몇 주간의 환경으로는 마음 깊은 곳 까진 바꿀 순 없다고 믿어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가장 성품이 곧바른 종인이 입에서 상욕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오토바이 기름이 다 떨어져 간다. 오는 길에 봤던 주유소를 찾아 계속해서 달렸는데 아마 생각보다 더 멀었나 보다. 불안에 떠는 이 녀석의 설레발에 어쩔 수 없이 동네 작은 슈퍼에 들러 휘발유 1L를 사기로 했다.

본문과 상관없음

 슈퍼에는 13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아주머니가 계셨다. 정확하게 1L만 넣어달라 이야기하고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 계산을 하고 그늘로나와 휴식을 취했다. 종인이는 본인이 알아서 주유하겠다 해 별다른 생각 없이 주변 도로를 구경하고 있었다. 약 2분 뒤, 얼굴이 붉어지게 화가 난 종인이는 내게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 형이랑 똑같이 넣어 달라 그랬는데 기름 더 넣고 돈 더 받아갔어요!!"

사실 이해는 안 되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데

"베트남 사람들 죄다 사기꾼이야, 애들도 사기꾼, 아저씨 아줌마도 다 사기꾼이야" 라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에 조금은 흐뭇했다.

'내가 깟바에서 그 사기꾼한테 소리칠 때는 내 편 안 들어주더니 ㅋㅋ' 

이 녀석도 조금은 솔직해지고 있는 것 같다. 화가 날 땐 화를 내도 좋아.



2. Dong hoi - 교통사고

꼴랑 200원이 채 안 되는 돈에 몇 시간 동안이나 열이 받아있다는 건, 현지 물가에 너무나도 적응해버린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동굴에 들어가지 않아서 조금 남게 된 경비로 맛있는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고품격 밥집

 약 4시간이 넘게 뙤약볕아래에서 선크림도 없이 모래바람을 맞으며 운전을 하니 약간은 탈수가 온 것 같다. 슈퍼에서 산 생수를 머리에 부어 열을 좀 식힌 뒤 에어컨을 맞으러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베트남은 과거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로 쌀 바게트 샌드위치인 반미(bánh mì)가 그 증거다. 때문에 베트남뿐 아니라 과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불렸던 현재의 동남아시아 지역은 훌륭한 맥주로 유명하다. 유럽식 라거가 유입되고 더운 날씨로 인해 맥주 문화가 빠르게 확산, 집집마다 양조를 해 즐길 정도인 동남아의 이러한 문화는 더운 날씨와 시원한 라거를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요소가 되었다. 타이거(Tiger), 라루(Larue) 비아 사이공(Bia saigon) 333, 등 베트남에선 꼭 마셔봐야 하는 라거가 여러 종류 있다. 그중 타이거는 사실 싱가포르 맥주인데 동남아 전역에 퍼져있는 모양이다.

 역사나 맥주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셔도 재미있지만 역시 엄청난 열기 속 갈증 끝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숨 한번 쉬지 않고 쭉 넘겨버리는 게 제일이다. 

  사고만 안 나면 오토바이 음주운전이 허용되는 나라이지만 내 경험으로는 다들 조심조심 배려운전을 하므로 직접 목격한 사고는 없었다. 오늘 보긴 했지만...


 300cc짜리 작은 잔에 담긴 맥주를 한잔씩 마시고는 2km 정도 떨어진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약 5분 후 뒤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형!!! 사고 났어요!!"

아, 그렇구나. 뭐 별일 아니겠지,

 갓길에 스쿠터를 세우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옆에 택시가 저를 치고 갔는데 저는 멀쩡하고 택시 뒷 범퍼가 내려앉았어요! 제가 물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겁쟁이 녀석, 시속 15km로 달리던 차끼리 부딪혀서 범퍼가 떨어지는 건 동남아에선 분명 별일이 아니다. 택시 운전기사도 대수롭지 않게 차에서 내려 범퍼를 끼우고 다시 갈길을 갔는 데에도 불구하고 종인이는 두려움에 떨어 큰 도로는 피하고 골목길로 기차역까지 가자고 한다. 나야 뭐 재미있으니까 맞장구나 쳐줘야지. 가끔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니 겁에 질려 파란 안색이 된 종인이의 얼굴이 볼만하다.

분명 겁에 질려있다.

기차역에 도착하고 주차를 한 뒤 매표소로 향했다. 다낭행 기차표가 매진되어 내일 새벽차를 예약했다.

오토바이 렌트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일 반납하겠다 이야기를 하고 기차역 내에서 조금 앉아 있기로 했다. 이유는 '밖에 나가면 경찰한테 잡힐까 봐' 

 장난기가 발동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야 종인아 아까 너 쳤던 택시 무슨 색이야? 혹시 초록색 아니야?"

베트남 택시 중 60% 이상이 초록색이다

"네... 맞아요... 왜요?..."

"앞에 초록 택시 몇 대랑 사람들 서있고 나한테 오토바이탄 아시아 남자애 못 봤냐고 물어보던데?"

기차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과 운전기사들이고 여긴 아시아다.

"야 빨리 저기 플랫폼에 가서 숨어있어 기차 기다리는 척하고!!"

잽싸게 가방을 들고 뛰어간다. 웃음 참느라 죽을 뻔


급하게 찾은 숙소

 이 순진하고 착한 어린양을 달래주고 하루 더 묵을 숙소를 찾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스트레스에 피로가 몰렸는지 한숨 자겠다고 한다. 난 동네를 좀 더 둘러볼 겸 저녁거리나 사러 가야겠다. 

 집에서 나와 몇 걸음 가다 보니 문득 '아 시간도 남는데 핸드폰이나 사러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물어 근처에 있는 전자제품점에 갔다. 핸드폰 가격은 어느 나라나 똑같기 때문에 내 예산으로 만족스러운 녀석을 사는 건 불가능이다. 중고폰 코너로 가 가장 저렴한 것을 집어 들었다. 150만 동 한화로 7만 5천 원짜리인데 생전 보지도 못했던 브랜드다. 전원을 켜 와이파이를 연결한 뒤 카카오톡을 설치해보니 작동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주일 만에 핸드폰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지갑에 있던 카드를 들어 주저 없이 긁어버렸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저녁거리로 근처 마트에서 신라면과 과자 몇 개를 사 집으로 갔다. 종인이를 깨워 핸드폰 개통을 하고 라면이나 먹자고 1층 주방으로 갔다. 집에 우리밖에 없어 꺼뒀던 불을 켠 순간, 발 밑으로 하나, 도마 뒤로 넷 냉장고 옆으로 둘. 꽤 많은 수의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신발을 신고 있더라면 별로 무섭지 않았겠지만 맨발로 다닌 난 잽싸게 의자 위로 올라갔다. 배는 고프니 꾸역꾸역 집어넣는 라면과 약 5시간의 운전으로 홀라당 타버린 허벅지, 테이블에는 이름도 모르는 7만 원짜리 중고폰, 결의의 찬 주먹까지. 이날은 찍어둔 사진이 별로 없어서 그냥 받아 놓은 건데도 가만 보니 이 하루가 담겨있었다. 별로 한건 없지만 재밌었던 동허이, 오늘 하룻밤 더 자고 내일 새벽에 다낭으로 향한다. 종인이는 여전히 경찰 걱정이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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