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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Oct 07. 2019

[Australia] 안녕 호주

호주 대륙횡단


일 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며
최종 목적지인 울룰루를 거쳐 퍼스로 가는 여행을 떠났다.


지난 일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고받았을까, 사랑하는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생각해보다 괜스레 웃게 되었다.


1. 워킹홀리데이 끝!

11개월 하고도 2주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끝났다. 처음 300만 원을 가지고 멜버른에 도착해 부지런히 집과 직업을 찾으며 돌아다니고 그만큼이나 놀기도 열심히 놀았던 초보자가 정말 '어쩌다 보니' 한 야구단의 전속 셰프가 되어 일하고 '어쩌다 보니' 멜버른에서 가장 큰 야시장에서 장사도 하며 '어쩌다 보니' 뉴스에도 두 번이나 출연하며 멜버른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가득 채워갔다. '여행'이 주목적이었던 난 새로운 도시로 가보자는 마음에 시드니를 거쳐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모아둔 돈으로 간간히 친구들도 사귀며 거의 3개월간은 놀기만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기억 속 브리즈번은 가장 평화로웠던 동네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온 자경이와 원석이가 합류하고 곧장 중고차를 구매, 농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만난 일본 친구 'Syu'는 후에 우리를 4총사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


 아시안 농장의 말도 안 되는 시스템과 계속되는 적자로 농장에서의 생활을 급히 정리하고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약 15분 만에


 190,000km를 주행한 2001년식 혼다 캠리에 캐리어 3개, 배낭 1개와 각종 잡동사니를 채우고 나니 좌석은 세 개뿐이다. 통장 고작 10만 원 남짓, 남아있는 조미료와 식재료를 탈탈 털어 마저 싣고 나니 건장한 성인 남자 네 명은 거의 구겨진 상태다. 3일간 시드니를 거쳐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간다.


 2019년 5월, 멜버른에 도착했다. 보증금은커녕 당장 내일 끼니부터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백 패커스)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 날 이후 6주간은 매일매일이 생존싸움이었다.

YHA, 호주 전역에 퍼져있는 브랜드 게스트하우스다. 여기서 만난 여러 친구들과 가장 저렴한 와인과 여행자들이 남겨둔 재료로 음식을 하며 무일푼 파티를 매일같이 열곤 했다. 6주 만에 보증금을 마련하고 멜버른에서 조금 더 남쪽인 세인트 킬다(St kilda)에 네 명이 지낼 둥지를 튼 뒤로는 약 4개월간 죽어라 일만 했던 것 같다. 돈의 무서움을 모르고 살던 이에게 통장에 적힌 잔고 0.7달러는 (약 500원)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적당히 충분하게!


2. 울룰루

 2019년 9월, 쭉 해오던 일자리 두 개를 정리하고 짐을 정리했다. 캐리어를 팔고, 입지 않는 옷은 버리고, 한국으로 보내 배낭 하나로 짐을 줄여 어깨에 멨다.

'꽤 무겁지만 앞으로의
1년 반을 위한 것치곤 가볍네'
 

 

여행자들 사이에 도는 말 중엔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다'라는 말이 있다. 저명한 한 스님이 말했듯 물질의 소유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 뿐이다. 여행자에게 있어 떠나기를 망설이는 건 독약과도 같으니 말이다. 아마 아끼던 난초를 버리던 스님의 마음은 슬픔보단 깨달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25일, 집주인 아주머니와 마주 앉아 서류에 사인을 하고 곧장 빌려둔 캠핑카에 올라타 북서쪽으로 달렸다. 오후 11시 45분 출발, 두 명은 운전 두 명은 뒷 자석에서 휴식을 취하며 6시간을 달리면 첫 번째 목적지인 Lake Tyrrell에서의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다.

첫 끼니

 미리 사놓은 십 수개의 캔들과 라면, 쌀을 꺼내 아침식사를 마련했다. 북쪽으로 조금 더 이동했지만 역시나 날씨는 쌀쌀하다. 덕분에 인생 최고의 진라면을 즐길 수 있었지.


 내가 떠나면 울어버릴 거라고 여자 친구인 '아련'에게 이야기했던 슈다. 세 명의 한국인 사이에서 매일같이 음주가무에 시달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난 한국의 문화가 좋아'라며 감동시켜줬던 , 호주에 오면서 "워홀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데려올 친구 몇 명은 꼭 사귀자"라는 목표를 이뤄준 녀석이다. 여러모로 참 고맙다. 이제 이별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날 때 지었던 표정을 보니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은하수
 퀸즐랜드 주 시골에선 아주 자주 봤던 은하수는 도시에 살면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틀간 내달렸다. 한 사람 당 4시간씩 16시간을 이틀간 운전했지만 목적지인 울룰루(Uluru)까진 6시간이나 남았다. 새벽에 깨어 소변을 보러 차에서 내리니 끝도 없이 펼쳐진 평야와 세상을 반으로 가른 듯 하늘에 가득 차 있는 은하수는 순간적으로 '아..'라는 탄성을 강요했다.


 

원주민들의 토템 울룰루

 영국의 배가 시드니에 도착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쫓아낸 지 23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비옥하고 온난한 해안가부터 밀려 호주 내륙지방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호주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바위인 울룰루는 그들에게 있어 신성하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호주 대륙의 원래의 주인들은 아직까지도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한다. 2019년 10월 26일부터 울룰루를 등반하는 것은 철폐가 되지만 설령 일찍 방문하더라도 등반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등반했지만 내려와서 울룰루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조금 후회되었다.


남은 3일은 계속 사막

Northern Territory를 입성하기 직전부터 울룰루를 중심으 퍼스 직전까지는 끝 없는 사막이다. 인간의 시야로 볼수있는 지평선끝 까지 아무것도 없는 걸 보면 적어도 구의 곡면(지구의 곡면)너머까지 산은 없는 것이다(풀에 가려져서 그런 걸지도). 울룰루에서 1박을 하고 남은 3일간은 계속해서 사막이었다. 캥거루, 소, 낙타, 이름 모를 동물들과 마르고 억 풀들을 제외하곤 흙뿐이다.

뻥!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약 1200km를 비포장도로로 달리던 중 뒷바퀴가 터져버렸다.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일어나니 너무나 흥미진진해졌다. 핸드폰은 당연히 안되고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남은지 모르는 상태(마을 간 거리는 최소 300km에서 500km)에서 우선 고립될 수 있으니 여분의 식량을 찾으러 운동화로 갈아 신고 과도를 손에 쥔 채로 멀리 보이는 한 무리의 낙타에게 다가갔다. 물론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면 길들여 다음 마을까지 타고 가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거대한 몸짓과 빠른 이동속도를 보기 전까진.

봤냐

이제 이런 일쯤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수준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법의 문장은 세상을 시큰둥하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닌, '어떻게 해서든 해결되게 되어있어'라는 긍정적인 의미다.

 터진 바퀴 + 시속 10km로 20분 정도 달리다 보니 하루 종일 한 대도 보기 힘들던 차가 뒤에 보였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정차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바로 앞 마을에 사는 예수를 닮은 원주민 부부는 천부적 기계치들에게 스패어 타이어와 공구의 위치를 찾아 이것저것 알려준 뒤 덤으로 가지고 있던 스패너도 하나 넘겨주고선 유유히 길을 떠났다. 이미 해는 다 떨어져 슈퍼마켓 앞에 자리를 펴곤 오랜만에 넷이 함께 곯아떨어졌다.

미아

 슈퍼마켓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어디서 들 나타나는지 꽤 많은 수의 원주민분들이 하나둘씩 가게 앞을 채워나갔다. 아시아인 네 명이 터진 바퀴를 들고 슈퍼마켓 앞에서 옷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앉아있는 모습은 그들에게 꽤나 큰 흥밋거리였을 것이다. 차를 타고 인구 50명도 되지 않아 보이는 마을을 둘러보며 고프로로 통해 촬영을 하니 인상이 험상궂은 아저씨가 '영상을 지우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며 쫒아오는 바람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진과 영상을 모두 지웠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엔 깨나 예민한가 보다.


3. 끝

안녕

 일주일간 부지런히도 달렸다. 5,00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1주일 만에 사륜구동도 아닌 봉고차로 횡단했다니. 26살 배낭여행자의 신분으론 연락하기 꺼린 집안 어르신분들도 응원해줬으니 호주에서의 시간들은 나름 재미난 생활이 되었나 보다. 홍콩에서 살 때만 해도 "외국 생활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은 다음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존'을 겪고 나니 조금은 사라졌다. 1년 전 나는 오만했다. 이젠 '오만'이 아닌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 생각해야겠다. 인도네시아에서 한 달간 지낸 뒤 다시 호주로 돌아가 3개월간 정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하곤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여행을 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한량'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던 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온 괜찮다는 말을 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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