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1가지의 이유 중 첫 번째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아이패드를 산다. 그럼 나는 아이패드를 사는 게 왜 즐거운가? 새 물건을 사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신체적 고통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는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 가학을 당함으로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스트들에게 고통은 성욕을 충족하는 행복이지 않은가. 이렇듯 우리 모두는 행복의 과정이 다르다. 나의 만족은 이러하고 내 친구의 만족은 조금 저러하다. 누구는 맨발로 진흙을 밟는가 하면 누구는 카페에 간다. 왜?를 다루기 전에, 조금 더 행복이라는 관념을 구체화시켜보자면 이러하다.
웹툰 ‘해피’에서 주인공들은 하나의 사건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각기 다름에도, 각자에게 ‘행복’이라는 에너지를 공유한다. 서선 기자와 그녀의 쌍둥이, 회사원 두레는 목숨을 건지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변했으며 고고학자 ‘미스터 차’는 마침내 행복을 발굴해내는 데 성공한다(인지하지 못함). 건너집 히키코모리는 수년만에 문 밖으로 나가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근원이나 원리는 작품에서 나온 대로 붉고 뜨거운, 팽창하는 어떤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대화와 사랑, 또는 사건을 통해 서로 공유할 수 있고 확장시킬 수 있다. 이 에너지는 긍정적이며 이것을 찾거나 만들어내는 방법이 바로 여러 방향의 만족이겠다. 우리가 오늘 다리 밑에서 떠들어댔던 시답잖은 얘기와 맥주가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꽤 넓은 범위로 공유한다.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과 느낌은 이렇다. 그러면 우리는 왜 행복해야 할까? 이유가 마땅히 없다면 구태여 행복하게 살지 않아도 될 텐데. 방금 그녀와 했던 이야기 중 하나의 이유를 알아냈다.
대한민국의 딸들에게 ‘시간을 거슬러 어머니의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뭘까? 물론 ‘행복하게 살아.’ ‘엄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와 같은 답변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딸은 ‘엄마 나 낳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나를 낳고 키우며 포기했을 수많은 꿈, 겪었을 고생이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에 나를 낳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커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답변을 본 어머니는 되려 고맙기보단 원통할 것이다. 그녀를 갖고 얻은 행복이 무수한데, 그것들을 없는 일 셈 치는 건 오히려 더 큰 행복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이 사실을 몰라 이리 답변했다는 것이 원통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사랑한다. 때문에 엄청나게들 걱정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냥 숨 쉬고, 잘 걷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는 중이다. 그냥 그 존재의 유무가 행복의 지표이니까.
이렇게 잘 살아있는 게 누군가에게 행복이라면 웃으며 즐겁게 사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들에게 엄청난 행복이지 않을까?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존재만으로 행복인 내가, 무려! 엄청나게 즐거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 또한 고마움의 한 표현방식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이런저런 지난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게 내가 따르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이 과정에 올라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면 가끔은 고통이라고 느껴질지언정 행복임을 인지 할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또는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불행히 노력하는 순간들은 행복이 아니다. 허나 그 과정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행하는 노력으로부터 받는 고통의 순간들도 역시, 무한히 가까워지는 열차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니 실은 불행한 시간이 아닌 행복의 작은 한 부분이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종류의 방법을 이용해 이러한 개념의 어떤 것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해외여행 간다. 슬슬 짐 싸서 나가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