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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n 29. 2020

일기

06. 29. 20 Vienna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내가 아니지만 내가 아닌 나도 내가 아니지. 내가 되고 싶은 나로 변해가는 건 내가 되는 건지 내가 아닌지. 내가 나로 했던 말이나 또 하곤 했던 모든 일들의 잔상을 따라가. 순간들이 엉겨부터 불어나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SLEEQ - Liquor》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떠고 싶다’ 노력하다 보면 늘 부작용이 나타난다. 싫어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내가 되고 싶던 모습의 반항적 형태라 과정 자체가 무의미한데, 무한의 회귀. 그러고 싶지 않은 건 그러지 않는 어떤 무엇이 되고 싶은 거다. 나는 소극적인가 외향적인가. 주변인들은 후자를 택하겠지만 나는 소극적이다. 성격과 감정들에 명확한 경계는 없으니, 소극적인 경우가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더 잦다는 이야기다. 사람을 만날 때 외향적인 모습은 소극적이기 싫은 마음에 노력된 결과일까. 모르겠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지나가는 행인이 집에 찾아와 맥주를 권한다 한들 아무 문제없을 테지만, 분명 대화가 끝나면 며칠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아 그때 이렇게 말할걸,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러고는 다시 어떠려고 노력하겠지. 또 반복이다. 이런 고민들이 부끄러워 부정하고 사는 듯하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누가 이것저것 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 무의식과 자아의 경계가 너무 모호하다. 스스로 질문하더라면 어차피 준비된 질문에 ‘생각’한 대답을 할게 뻔하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무산되는 것에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을까. ‘그냥 다음에 하면 되지 뭐’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거다. 한 편으로는 정말로 괜찮은 듯한 마음도 있겠지만, 어찌됐건간에 괜찮지 않은 마음이 크긴 하니까 이건 ‘거의 안 괜찮은 편’에 가깝다. 물론 이건 지금 생각하면서 한 대답이니 실제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누가 이것저것 마구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사실은 불안한가 보다. 그간 확신하고 있던 미래의 모습이나 주관들에 금이 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럴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마음도 순수가 아닌 듯하다. 나를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하다. 정말로 나를 설명하려 했던 그 법칙이 사실은 초석부터 틀어진 채로 쌓아 올려진 거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너는 성장하는 달걀에서 무한히 경험하고 있을 뿐이야’라고 말해주면 조금 더 확신이 생길 텐데, 그럴 일은 없겠지. 프로이트가 말한 ‘질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같은 걸 배우는 중이라 생각하는 편이 수월하겠다. 문득 든 생각인데 나는 이런 이유들로 예술가를 동경한다. 복잡 미묘한 생각들을 감지 가능한 상태로 표현해낸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그렇다고 요새 슬프거나 우울하진 않다. 우리가 티베트의 아픈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한다한들 그로 인해 감정이나 생활이 무너지는 일은 극히 드문 것처럼, 그냥 여러 보따리 중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위에서 말한 ‘거의 안 괜찮은 편’처럼 지금 난 ‘대체로 행복한 편’에 속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생각을 즐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또 복잡해질 걸 아는데도 계속 적는 걸 보니 내일은 맥주를 조금 더 사놔야겠다. 이센스 노래도 좀 듣고 김상욱 교수님 영상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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