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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Aug 18. 2020

[Netherlands Belgium] 쉬엄쉬엄

Amsterdam, Brussels

 

1. Amsterdam - 그래!


 10월에 아이슬란드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 조금 더 둘러봐야지
meet me in Amsterdam

 비행기의 그림자가 콩알만 하다. 자동차도 집도 다 콩알이다. 땅에서 보는 비행기나 하늘에서 보는 집이나 멀리서 보면 사실 다 거기서 거기다. 보이저 1호가 64억 km 거리에서 본 지구도 콩알이다.

호스텔 Flying pig downtown Amsterdam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영양과 알코올이 풍부한 ipa를 시켰다. 손님은 나 하나, 가게 아저씨가 나와 현 상황에 대해 ‘이제 와서 너무 유난 떨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푸념을 시작한다. 정부에서 아무것도 안 하다가 이제야 관리한답시고 하는 일들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다니까. 흠. 지나가던 사람이 담배를 부탁한다. 그 새로운 남자는 앞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구를 맞으러 가게로 들어갔던 아저씨가 도로 나와 그 남자를 정중히 내보낸 뒤 내게 주의를 준다.


/잘 봐, 거리에 저렇게 작은 가방 메고 걸어다는 사람을 조심해야 돼. 저 사람이나 저 사람 같은 사람들. 알아볼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아저씨와 마저 이야기하던 중 또 다른 사람이 슬리퍼 차림에 비닐봉지를 쥔 채 걸어와 깨끗하게 세탁된 수건을 한 장 주고 다시 홀연히 떠나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아저씨가 말하기를 동네에 있는 술집 몇 개를 운영하는 사장님인데 이 가게도 그중 하나란다. 때가 되면 사장님은 매장마다 새 수건을 나눠 다 주며 둘러본다고 한다. 아마 때때로 가게 사정도 물어보고 하시겠지? 우노 다카시의 책 [장사의 신]이 떠오른다. 이거 아주 좋은 방법인 듯. 메모*


 옆자리가 시끌하다. 어느새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앉았다. 여섯의 영국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강한 억양이 귀를 놀린다. 친구들과 휴가 온 이 중년들은 가방에 작은 캡슐과 풍선을 꺼내 열심히 무언가 만들고 있다. 아산화질소다! 예전에 종인이와 베트남 여행을 할 때 자주 봤던 건데 보통은 술집이나 호스텔에서 큰 가스통을 가져다 놓고 한 풍선씩 팔곤 했다. 마땅한 마취제가 없던 근대에 순간적인 의식하 진정을 위해 사용했던 가스다. 흡입 시 정신이 몽롱해지고 어지러움증과 함께 구토감을 유발하지만 지속시간은 수분 내외. 지금도 치과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웃음가스’ 또는 ‘해피 벌룬’으로 불린다. 호기심에 대화를 나눴다.


 참 재미난 동네다. 모두가 취해 침착하고 여유롭다. ‘세상은 신이 만들었고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이곳은 쾌락의 인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나라임을 단번에 느꼈다. 어떤 나라보다 먼저, 또 유일하게 매춘과 동성애, 대마초 등을 합법화한 나라, 당연하게도 그만큼에 해당하던 범죄의 수가 줄었고 이는 각 나라로부터 이민자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네덜란드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낮은 땅’. 이곳 지형은 매우 낮아 무려 해수면보다도 낮다. 때문에 자연적으로 ‘물’이라는 자원은 제한되었고 이에 부가적인 요인으로 그리 살기 좋지 않은 땅이 되었다. 물을 길어올 인력, 마차에 물을 싣는 운반인력, 그것을 판매하거나 관리하는 인력 등과 자연재해 문제 때문에 더 많은 인구를 외부로부터 들여야 했다. 그로 인해 이 땅에선 예부터 개인의 쾌락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살기 좋지 않은 지형에 건설된 국가가 금기시되는 것들에 대해 관대한 문화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환경적 대처인 것이다.

12인실 혼자씀..

 아침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 것 같으니 근처 Zaanse Schans에 다녀와야겠다.

모터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맛있게 커피마심
음식있는 척 놀리다가 물렸다. 친구한테 짜증났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모르는 강아지가 내 핫도그를 훔쳐가려고했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지 않고 핸들을 돌렸다.
암 그렇지

 사실 얼마 전까지 조금 공허했는데 시간을 두고 잠시 생각을 멈추니 이유가 떠올랐다. 그간 잊고 있던 사업계획도 조금씩 정리하고 있고 나름대로 경험도 하고 있다. 마음이 풍족해진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내가 이것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다시 상기하고 이를 도와줄 동료들에게 이야기한다. 약간 만화 원피스 같은 이야기이긴 한데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다. 오랜만에 힘을 얻은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어젯밤에는 비엔나에 와 처음 사귀었던 친구들의 꿈을 꿨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이에게서 꾸준히 듣던 말이다. 나는 지나치게 확신한 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서 우습게 보는 것 또한 전혀 아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예측 불가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건 과학자, 수학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인정하기 쉬운 사실이다. 하나 결과를 모르는 수백 가지 경우의 가지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보단 차라리 뜬구름이라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덜 예측 불가하지 않을까. 내 선택이 틀렸을 수도 있다. 틀릴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현저히 높다. 그러나 정진하고 이겨냈다면 적어도 다음을 기대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지금의 이번이 될 수 있다.

물가 너무 비싸..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 신라면도 잘 못 먹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청나게 매운 칠리소스 인도네시안 삼발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차피 소금이나 기름은 다 호스텔에 있을 테니까 재료만 사가자! 주방엔 채소 스톡 파우더부터 카옌페퍼, 큐민, 피시소스, 울금까지 향신료가 가득 있다. 횡재했네. 인도네시안 고추 젓갈을 곁들인 중동 냄새 크림 파스타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2m짜리 남자에게 다가갔다.


‘너네 소시지 맛있어 보이는데 내 파스타랑 좀 바꿀래?’

/오! 당연하지! 안 그래도 뭐 만드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소시지 한 개를 얻었다. 사실 소시지 네 개를 두 명이 굽고 있던지라 챙겨도 되는지 조금 망설여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바에서 맥주를 가져와 멋진 저녁식사를 했다.

콜라가 진짜 맛없다..

 아주아주 평화로움. 내 아이패드 훔쳐가려고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앉아있던 친구들도 느릿느릿해서 다 방어할 수 있었다.

집에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한잔 더 마셨다. 트라피스트(수도원)에서 생산된 맥주가 행사 중이다. 앞자리에 앉은 커플이 숙소를 추천해달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같이 맥주 마심.

기분 좋당

 집에 가는 길을 잃었지만 덕분에 잠시 쉴 수 있었다. 다리에 앉아 강물에 비친 도시를 보며 탄산수를 한 모금 마셨다. 아주 기분 좋음!

물론이죠 아저씨! 고양이가 선채로 잠들었다. 침이 곧 땅에 닳을 기세


I’m just looking for my peace

해가 질 무렵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다녀와 운하에 앉았다. 오는 길에 사 온 맥주를 꺼내고 mac ayres 노래를 불렀다. 흥헐흥헐 거리며 이 말도 안 되는 경험에 혼자 감탄했다.

개미!
 최근 베르나르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그간 미뤄뒀던 ‘개미’를 읽게 되었다.

 우리가 으레 오해하는 것들 중 하나가, 인류의 문명이 유일하다는 오만이다. 크기나 지역에 따른 시점의 차이일 뿐이지 결코 우리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개미의 경우 인간이 감지할 수도 없는 페로몬으로 의사소통을 해 지난 수억 년간 쌓아 올린 유전적 지시 정보들을 십분 활용한다. 그들은 우리만큼이나 번성하며 우리도 그들에 필적하는 능력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물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감지할 수 없는 문명이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만연한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이 지구의 ‘지배자’ 또는 ‘먹이사슬의 정상, 즉 천적이 없는 동물’, ‘가장 번영한 종족’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까. 이미 호주는 근대화 이후 군대가 야생동물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경험이 수차례 있으며 도시의 지하에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린다. 우리는 사자가 아니라 하이에나일 수도 있다.

Heinekene experience

 내가 맥주를 좋아해서 그런가 여기는 정말 재밌었다. 하이네켄의 제조과정부터 역사까지 쭉 둘러볼 수 있으니 맥주를 좋아한다면 꼭 들리시길!

적이 많다


 몰랐는데 집 앞에 기가 막힌 핫도그 집이 있더라. 무려 6가지 재료와 3가지 소스를 골라 뿌릴 수 있는 핫도그가 3.5유로!

 브뤼셀로 떠나는 날 호스텔에서 친해진 이탈리안 친구를 마주쳤다. 부모님이 모로코분이신데 벨기에에 자주 간단다. 가면 꼭 모로코 음식 먹어봐야지. 마지막으로 사진 하나 찍고 버스에 탔다.


2. Bruselles - 맥주!

 암스테르담에서 Flixbus를 타고 3시간 만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도착했다. 이날 기온이 33도였는데 버스 에어컨 고장... 맥주 마시러 가야지

Duvel triple hop, Faro Lambic, Babylon beer project

 내 친구 승필이는 듀벨을 좋아한다. 한국에선 골든 에일 한 가지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선 세 종류의 타입을 무려 생맥주로 마실 수 있다. 당연히 ipa를 주문. 나중에 승필이에게 자랑해야겠다.  기회 되면 한 병 사갈까.

 람빅은 예전에 한국에서 우연히 마셔본 것보다 유난히 과일의 단맛이 풍부했다, 내 스타일은 아닌 걸로. 비어 프로젝트는 아주 맛있었음! 엠버 에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리의 첼로연주자가 우리누나 결혼식 행진곡이었던 곡을 연주하고 있다. 제목은 모름. 하늘에 화성 딱 하나만 보인다.


이욜!

  이번에 지내는 숙소는 다락방이다. 간이로 지은 층인지 걸을 때마다 벽이 흔들린다. 창문도 코딱지만 한 거 두 개뿐이라 매우 덥다. 바람을 쐬러 공원에 나오니 어떤 젊은 남자가 바텐딩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멜버른에서 만난 John도 전에 불같은 거 막 돌리면서 저런 거 하던데 갑자기 생각났다. 한국에서 사업 성공하면 흔쾌히 바텐더가 되어주겠다며 말하는 아이에게 비자와 숙소를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요건 조금 더 후에 일이니까 우선 잠정 연기해야겠다.

우산보단 마스크!....


Horia Eatery
 말로만 들은 설명으로는 추천받은 식당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추천받은 벨기에의 명물 모로코 음식.

 원래 중동, 아프리카 음식을 좋아해 샐러드를 제외하면 전부 훌륭했다(파슬리가 너무 강함). 염소치즈와 요거트, 구운 가지, 렌틸콩, 미트볼, 후무스를 얹은 북아프리카 식단이다. 무엇보다 맥주와 함께 딸려 나오는 올리브가 아주 맛있었음!

Chimay Triple, Satan Black, Campus Belgian Lager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chimay의 맥주를 Delirium village에서 마셨다. 델리리움 빌리지는 브뤼셀의 명소 중 하나로 맥주 거리를 갖고 있는 브루잉 컴퍼니이다. 그만큼 맥주의 품질이나 관리는 최상이니 강하게 추천한다. 가격도 나쁘지 않음. 나중에 동네에서 하고 싶은 게 딱 이런 느낌인데

비가 그쳤다가 또 오려나봐


짐은 김치의 짐이다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오줌싸개 소녀 동상 근처에 홍어 파는 한식당 있어!’


오호라, 그 식당 찾아서 보여주면 재밌겠지. 집 근처라 바로 가방을 챙겨 나갔다. 우선 동상을 찾아 기점을 잡고 그 녀석을 상상했다. 걔라면 이리로 갔을 거야. 결국 1시간 정도 둘러본 끝에 한식당을 하나 찾았지만 홍어는 없다. 주위 사람들도 ‘발효된 생선을 파는 한식당’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녀가 왔을 5년 전 잠시 계절메뉴로 행사해 판매한 것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비 엄청 오는데 문 닫혀서 옥상 흡연장에 갇힘.


마지막으로 한번 더 델리리움

 같은 방을 쓰는 친구와 맥주를 마시러 나왔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각기 다른 국적을 지닌 단톡 방 멤버이고 시간문제로 따로 출발했다고 한다. 진짜 유럽은 대전 가는 것처럼 다른 나라 가고 그런다.

어디로 가야하죠

 나는 브뤼셀에서 비엔나까지 편도항공권을 9유로에 구매했다. 그런데 웬걸 공항이 브뤼셀이 아닌 charleroi라는 지역에 있다고 한다. 대중교통으로 2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고 가장 빠른 기차는 1시간 후에 온다. 기차 환승+공항버스까지 15유로를 지불했으니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라면 출발 공항을 꼭 확인해야겠다. 나는 다행히 오후 4시에 이륙하는 비행기라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딱히 볼 건 없고 그냥 조용~

오잉?

 공항이 무슨 동네 조기축구 간이 사무실같이 생겼다. 주변은 조용하고 공항 건물은 안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공항 출입 전 미리 검사를 해야 해서 뒷 주차장에 내려줬나 보다. 그놈의 코로나..


오!

 공항 화장실에서 델리리움을 또 만났다. 마지막으로 호가든 한잔!

예쁘


 비가 계속 내렸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고 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한다. 비구름을 뚫고 대류권을 지나 햇빛을 막고 있던 구름의 머리를 보았다. 흰 구름. 단지 10km쯤 올라왔을 뿐인데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맑고 하얗다. 그 어둠은 그저 우리가 아는 흰구름이 만든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곳은 원래 그렇다. 나는 두려움이나 걱정은 환경이 만들어낸 잠깐의 폭풍일 뿐이며 곳 지나가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동안 우산을 쓰든 파전을 굽든 그것은 개인의 가치판단에 달려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사람들이 그것을 아는 것. Beer will simplif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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