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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l 02. 2019

[쉬어가기] 별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앞으로에 대한 고민들이나 지난날들에 대한 회의를 혼자서 곱씹어보고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조금씩 찾아나가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거나 하는 도중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대체 왜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가?'였다. 누군가에겐 6개월간의 고된 근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려 떠나는 휴양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그동안 계획했던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함에 따른 성취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겐 '알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할 때 드는 묘한 긴장감과 문제 해결 능력 향상(?)'정도 일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느끼는 새로운 냄새,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그들의 문화, 길에서 마주친 아이들과 강아지, 교통이 마비되어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 당시에는 불편하고 고되고 또 어쩌면 별일 아닌 일들이 1년 2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헛된 발걸음은 아닌가 보다.  

 사실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대단한 일을 하는 자신을 꿈꾸고 장래희망에는 '대통령'이라 적었지만 만 원짜리 한 장이 전부인 현실, 그 현실과 타협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웃음이 사라지는 2-30대, 지난날에 대한 회의감에 이제는 힘이 다부치는 4-50대. 나 또한 조금이나마 경험해본 '현실과 타협한 삶'은 그리 달콤하지는 않았다. 내 적은 경험으로는 지금의 대한민국, 세계의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겠다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 역시도 언젠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별거 아니네... 조금 실망이다"

하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행도 다니는 내 인생에 이런 걱정은 배부른 녀석의 실없는 소리 같겠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인생은 원래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울 것 같던 도시는 어느새 동화되어 새롭지 않고, 그 맛있던 쌀국수도 열 그릇이 넘어가면 더 이상 맛있지가 않다. 긴 여행기간 동안에 만난 사람들, 이따금씩 일어나는 재미난 순간, 그것들이 가끔 생각나는 마라탕처럼 발화제가 되어 비행기 티켓을 끊게 만드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이 짜릿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순간이 모여 삶을 이룬다'라는 말처럼 기억할만한 순간들을 인생의 책갈피처럼 여기저기 꽂아두는 일을 여행으로 대신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면 대부분이 '부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겐 그 반복된 일상이 지루하고 새롭지 않은데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호주에서 일이 꼬여 두 달간 거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순간 가장 부러웠던 건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내 친구들이었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상 '나'의 인생은 누군가를 부러워할 뿐이고,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의 인생도 사실 그리 특별하지만은 않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와 나의 인생이고 뻔한 말이지만

 '졸업하면, 취업하면, 퇴사하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생각은 '지금'을 살고 있는 내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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