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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Sep 19. 2022

아빠의 받아쓰기 공부 방법과 아이의 받아쓰기 공부 방법

똑같을 수가 없는 듯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아이는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경필 쓰기가 정점을 찍어 이제 곧 방학을 앞둔 시점인데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내준 것이죠. 받아쓰기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이는 학교에서 치르는 첫 받아쓰기이니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아이가 받아쓰기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아이 나름대로 연습이 필요했죠.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잘할 수 있는 연습법으로 받아쓰기 문장을 연습장에 직접 써보기를 권했습니다.(사실 거의 반강제였습니다.ㅠㅠㅋ)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경필 쓰기가 너무 힘들었던 아이는 집에서 글씨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첫 받아쓰기 하기 전날엔 받아쓰기 범위에 해당하는 10개의 문장을 한 번 다 써보고 갔으나 두 번째 받아쓰기부터는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하기 싫다는 말로 받아쓰기 연습을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온몸으로 받아쓰기 연습하기 싫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죠. 입으로 하기 싫다는 말을 전해 듣는 것보다 온몸으로 하기 싫다는 표현을 보는 것이 부모로서 얼마나 힘든지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괴로웠죠. 아이도 괴로웠겠지만 그걸 보는 저의 마음도 괴로웠습니다. 앉아 있는 아이의 몸 전체에서 하기 싫다는 부정의 단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는데 저는 그걸 요리조리 다 피하면서 모른 척하려니 마음이 조금씩 타들어 가서 숯처럼 까맣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1학기는 곧 마무리되었고 여름 방학이라 받아쓰기 연습하지 않아도 돼서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이와 저 모두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던 마음은 다시 생기 있는 나무처럼 말랑말랑하게 되돌아왔죠.

아이에게 짧다면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난 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받아쓰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학기와는 다르게 좀 더 본격적인 받아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학기보다 좀 더 본격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선생님이 아이에게 준 파일에 받아쓰기 문장이 매우, 많이, 엄청나게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장 수가 많아졌지만 10개씩 나누어 놓았고 선생님이 제시한 문장이 그렇게 길지 않아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1학년인 아이는 긴 문장을 받아쓰기 어려우니까요.

2학기가 되니 받아쓰기 날짜는 매주 목요일로 정해졌습니다. 받아쓰기를 할 날이 다가오자 저는 아이에게 받아쓰기 연습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아이는 여전히 집에서 글씨 쓰는 걸 싫어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는 집에서 받아쓰기 문장을 직접 써보며 연습하고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아이의 생각과 제 생각은 같지 않나 봅니다.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나중에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습을 미루더니 끝내 하지 않으려고 했죠.

몇 번의 받아쓰기 날이 지나가고 그동안 아이와 받아쓰기 연습에 대해 수십 번의 실랑이를 주고받은 뒤 승리의 기쁨은 끝내 아이가 가져갔습니다. 아이가 받아쓰기를 잘한 것이 아니라 제 입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 거죠. 계속해서 받아쓰기 연습에 대해 실랑이하다 보면 서로 마음만 상할 것 같아 저도 연습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받아쓰기를 많이 틀리게 되면 아이 스스로 느끼는 게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받아쓰기를 다 맞아서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저한테 알려주지도 않아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아이패드로 엄마한테 열심히 문자를 보낸 걸 보고 말이죠.  


“엄마 나 받아쓰기 100점”

“잘했어~~”


아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아이에게 받아쓰기에 대해 묻자 아이는 신나는 표정으로 저에게도 자랑을 하였습니다.


"준형아~ 받아쓰기 100점 받았어?

"응!! 나 받아쓰기 100점 받았어!!"

"잘했어~ 대단하네~^^"


이후 퇴근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받아쓰기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처음엔 저처럼 집에서 연필을 가지고 아이가 직접 쓰게 하면서 받아쓰기 연습시키려고 했다가 아이가 너무 싫어하자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대신 선생님이 주신 받아쓰기 문장이 적힌 종이를 받아쓰기가 있는 날 아침부터 열심히 보라고 했더니 그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결국 아빠의 공부 방법이 아닌 엄마의 공부 방법을 선택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고 그래서 아빠보다는 엄마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 과정은 저에게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던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며 이야기한다는 사실 말이죠. 저 또한 어렸을 적 받아쓰기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제가 경험한 받아쓰기 연습이란 집에서 연습장에 연필을 가지고 직접 써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아이에게 적절한 조언을 못 해준 것이죠. 내가 이야기한 방식대로 상대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당장 우리 집 아이 받아쓰기 문제만 돌이켜봐도 그렇죠. 아이는 아이에게 제시된 두 가지 방법 중 자신이 좀 더 쉽게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방식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제가 아이에게 끝까지 제가 알고 있던 방법만 강요했다면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만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받아쓰기 연습을 강요하는 아빠의 이미지가 남았을 것입니다. 아이는 제가 아닌데 말이죠. 이제 제가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방법을 응원하는 것과 아이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힘들어할 때 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게 고민하고 찾아보는 방법이 남았습니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옆에서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위해서죠.


앞으로는 아이와 해결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이런 문제를 이런 방법으로 해결해왔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아빠의 해결법과 아이의 해결법이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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