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Sep 15. 2022

칭찬받고 싶은 아이는 그림일기를 쓸 때..

자꾸 예쁜 문장을 버립니다.

추석 바로 전 목요일. 하교하는 아이의 알림장에는 가지런한 글씨로 “추석을 주제로 하여 그림일기 써오기”가 적혀 있었다. 주말 숙제가 항상 그림일기였는데 이번엔 선생님이 추석에 관련한 주제로 일기를 써오라고 했었나 보다. 들뜬 마음에 숙제는 뒤로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양평 할머니 집에 갔다. 아이는 추석 기간 내내 기대하던 음식 만들기와 차례 지내기를 하며 즐겁고 신나게 추석을 보냈다.


피곤한 몸을 끌고 일요일에 집에 돌아온 후 아이는 월요일 오전에 추석 때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아이랑 호수공원 한 바퀴를 돌고 와 피곤해 안방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거실에서 아이랑 와이프 사이에 큰소리가 오간다. 나중에 들어 보니 아이가 정말 좋은 일기를 쓸 수 있는 문장을 말했는데 무슨 마음에서인지 아이는 그 문장을 쓰지 않고 다른 문장을 생각해서 쓰겠다고 해 와이프랑 말다툼을 한 것이었다. 그때 아이가 버린 문장이다.   


[밀가루와 계란으로 부친 노릇노릇한 동태전을 한입 베어 물자 바다내음이 물씬 풍겨 바닷가에 온 것 같았다.] 


지금 봐도 굉장히 잘 쓴 문장이었는데 끝내 아이는 이 문장을 버렸다. 오전에는 아이가 문장을 버린 변덕을 알 수 없었으나 그날 오후 늦게 아이랑 에버랜드 가는 차 안에서 아이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아이: (부러운 듯이) 그림일기 제일 잘 쓴 사람은 선생님이 한 번 읽어줘!

: 으응? 제일 잘 쓴 사람 읽어줘?

와이프: 읽어준다고?

아이: 응! 읽어줘~

와이프: 준형이 그림일기는 선생님이 아직 안 읽어줬어?

아이: 응! 아직 안 읽어줬어~

와이프: (궁금하다는 듯이) 누구 일기 읽어 줬는데?

아이: 으음.. 000이 꺼 읽어 줬어

와이프: 준형이 꺼도 읽어 줬으면 좋겠어?

아이: 응!! 내 것도 읽어 줬으면 좋겠어!


운전석에서 운전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가 그림일기를 왜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써나갔는지 간신히 생각한 문장을 왜 자꾸 버리고 새로 쓰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이는 일기를 쓰면서 계속 선생님이 읽어 주었던 반에서 제일 잘 쓴 일기가 생각났고, 그 일기 내용과 비교해 자신의 그림일기 내용이 그 아이가 쓴 일기보다 뛰어난지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일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문장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문장을 생각해내려고 발을 동동 굴리며 스트레스받았던 것이다. 아이가 그동안 그림일기를 쓰면서 왜 그렇게 주저하고 망설이며 힘들어하는지 이유를 명확히 몰랐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이는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가 쓴 그림일기가 학급에서 가장 잘 쓴 그림일기로 선정돼서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에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이다.


아이의 심정도 이해되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슨 의도로 읽어줬는지도 이해가 되었으나 내가 아이에게 해줄 이야기는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노력했는지 알기에 아이에게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아이에게 제일   아이의 일기 내용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충분히  해내고 있으니 네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쓰라고 말을 전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얼굴 표정에 묻어 나왔다.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받은 아주 작은 칭찬이라도 받으면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9월 마지막 주가 상담주간이니 아이의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핑계로 나중에 슬쩍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


"아이들 모두 칭찬해주시면 안 될까요?!"




**상단 이미지: 추석 때 아이가 할머니 집에서 커다란 달력을 뜯어 뒷면에 그린 그림.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학생 1학년 가방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