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Oct 03. 2022

다윈, 월리스 그리고 다윈주의 세계

헬레나 크로닌이 추적한 세상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만큼 생명과학을 넘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친 과학자는 보기 드물다. 그만큼 다윈의 업적은 위대하고 대단했으나 다윈이 주장한 다윈주의(진화론)에 대한 아이디어는 유일하지 않았다. 다윈의 주장이 완성되어 갈 즈음 거의 동시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도 다윈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선택에 대한 월리스의 논문을 읽은 다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렇게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월리스의 논문은 마치 1842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정리한 것 같습니다. 그가 사용한 용어들은 내 책 각 장의 제목으로 적당할 정도입니다.”

동물 행동학, 인간 행동학, 다윈주의, 페미니즘, 성 선택 이론과 같은 진화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던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은 성 선택과 협동의 진화를 자신의 박사 논문의 핵심 주제로 삼으며 초창기 다윈과 월리스 주장에 대해 집중하여 다윈주의 역사를 추적한다.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은 헬레나 크로닌이 추적한 다윈과 월리스의 주장과 신(新)ㆍ구(舊) 다윈주의에 대한 과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 영국 자연사 박물관 Photo by Bruno Martins on Unsplash >



다윈과 월리스 그리고 성 선택과 이타주의


1859년에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1859년 이전의 박물학은 상당 부분이 자연 신학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 신과 함께한 박물학은 명백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최고의 설계작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헬레나 크로닌(2022), 개미와 공작, (주)사이언스북스, p33>

이런 사회 상황 속에서 다윈과 월리스는 자연 현상을 바라봄에 있어 서로 놀라울 만큼 일치하는 주장을 가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일치된 주장을 공동 논문으로 제작해 학회에 제출했다. 그 논문의 주된 내용은 자연선택이 놀랄 만큼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만들어 내는 방식은 작지만 수많은 변화가 축적되어 만든 자연선택의 힘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다윈주의(진화론)라 불렸다. 종의 진화가 축적된 자연선택의 힘이라는 큰 틀에서 그들의 의견은 일치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은 다윈과 월리스가 시작한 다윈주의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성 선택과 이타주의를 중심으로 다윈주의를 다룬다.

다윈은 성 선택에서 수컷의 화려한 진화의 원인을 암컷의 선택으로 바라보았다. 월리스는 암컷의 선택이 아닌 자연선택만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협동에 대해서도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려 하였고, 월리스는 자기희생의 개념을 가져와 설명하였다.

저자인 크로닌은 책에서 단순히 다윈주의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다시 가져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각 주장의 공통된 의견, 부족한 부분과 이 부분을 어떻게 다윈과 월리스가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서술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 경쟁에 관한 장을, 안심시키는 말로 조심스럽게 끝맺었다. “이 경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때, 우리는 자연의 전쟁은 쉴 새 없이 않으며, 아무런 공포도 없고 죽음은 대개 신속하게 일어나, 활력 있는 자, 건강한 자, 행복한 자들이 생존해 번식한다는 완전한 믿음 속에서 자신을 위안하게 될지도 모른다.”(Darwin 1859, 79쪽) 월리스는 윤리적인 측면이 너무 많이 오해를 받아서 세부적인 논의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될 정도라고 느꼈다.(Wallace 1889, 36~40쪽) 그는 “‘흉폭한 자연(nature, red in touch and claw)’이라는 시인의 그림은, 우리의 상상으로 사악한 의미가 부여된 그림이다.”(Wallace 1889, 40쪽)라고 결론 내렸다. <헬레나 크로닌(2022), 개미와 공작, (주)사이언스북스, p430>

그리고 다윈과 월리스 이외에 다른 과학자들이 부족한 주장을 메워가며 다윈주의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다윈주의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신(新) 다윈주의와 구(舊) 다윈주의


우리는 근대 다윈주의의 두 가지 지배적 원리인 유전자 중심성과 전략적인 사고 전환을 취해서, 고전 다윈주의가 근대 다윈주의와 어떻게 다르며 왜 다른지 살펴볼 수 있다. <헬레나 크로닌(2016), 개미와 공작, (주)사이언스북스, p109>

크로닌은 『개미와 공작』에서 다윈과 월리스의 공방만 추적한 것이 아니다. 신(新) 다윈주의로 일컬어지는 근대(현대)의 다윈주의와 구(舊) 다윈주의로 일컬어지는 고전 다윈주의를 비교하여 독자에게 제시한다. 다윈과 월리스 주장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신(新) 다윈주의와 구(舊) 다윈주의의 비교 설명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근대 다윈주의와 고전 다윈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연선택의 단위 그리고 비용에 따른 전략적 사고이다. 근대 다윈주의에서는 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바라보았고, 고전 다윈주의는 자연선택의 단위를 개체, 집단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근대 다윈주의에서는 생존에 관련된 비용을 치밀하게 계산한다.

우리는 1880년대의 다윈과 월리스를 교착 상태에 남겨 놓았다. 다윈의 미학적인 이론은 수컷의 장식을 적응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나 암컷의 선택은 설명할 수 없었다. 월리스의 실용적인 이론은 암컷의 선택은 설명할 수 있었으나 수컷 장식의 전형적인 사치성은 설명할 수 없었다. 여기가 바로 고전 다윈주의가 문제를 남겨 놓은 지점이며 성 선택 이론이 20세기 초반 동안 멈추었던 부분이다. 다윈의 견해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해 준 사람은 바로 피셔였다. 1915년의 논문과 그가 쓴 고전인 『자연 선택의 유전학적 이론(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Fisher 1915, 1930, 143~156쪽, 특히 151~153쪽)에서 그는 월리스가 정당하게 요구했던 암컷의 취향에 관한 적응적인 설명을 제시하며, 다윈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헬레나 크로닌(2022), 개미와 공작, (주)사이언스북스, p325>

『개미와 공작』은 다윈과 월리스의 설명과 같이 근대 다윈주의와 고전 다윈주의에서 변화된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치밀하고 논리적인 설명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히 흥미로우나 느릿하게 전개되는 다윈주의의 변화는 성격이 급한 필자에겐 답답함을 불러오기도 했다. 결론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으나 참고 읽으며 고전 다윈주의가 근대 다윈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과학자의 논리 변화, 과학적 사고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크로닌은 처음 시작부터 다윈과 월리스로부터 출발하였고 다윈주의(진화론)를 고전 다윈주의와 근대 다윈주의와 더불어 비교하며 해석하여 보여준다. 단순히 비교에서 끝나지 않고 다윈주의 역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쟁점을 중심으로 다윈주의의 진화를 추적하고 기꺼이 독자의 가이드가 되어 같이 걸어간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윈주의에 대한 작가의 이론이 주로 담겨있는 책 『종의 기원』이나『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다윈주의의 책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책을 분류하자면 다윈주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으로 분류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창의적인 구성은 다윈주의에 관한 입체적인 해석과 자료들을 제공하지만, 독자에게 다윈주의에 대해 용어, 이론 등 많은 상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있다면 『종의 기원』,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다윈 이후』『말레이 제도』 등 다윈주의와 관련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찾아본 후 보거나 같이 읽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저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쉽고 흥미진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시한 내용을 모두 알지 못한다고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겁먹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다윈주의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보여준다. ‘정신과 다른 여러 특성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문화의 진화와 유전적인 진화는 서로 어떤 관계인가?’ 등등. 이 추가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독자가 바로 찾을 수는 없겠지만 다윈주의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설명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윈은 없지만, 다윈주의 상상력의 시대에 살아가는 인류에게 헬레나 크로닌이 소개하는『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을 통해 과학사, 과학, 철학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발견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지 정보


지은이: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

옮긴이: 홍승효

제목: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 협동과 성의 진화를 둘러싼 다윈주의 최대의 논쟁

판사항: 1판 4쇄

발행처: (주)사이언스북스

출간 연도: 2022년 1월 15일

페이지: 792면



Reference


Charles Robert Darwin(2022), 종의 기원, (주)사이언스북스

Richard Dawkins(2021),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Richard Dawkins(2021), 확장된 표현형, 을유문화사

남종영(2017), ‘여혐’과 싸워온 다윈주의 논쟁, 책&생각 : 문화 -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PRINT/779518.html]

Newsppeppermint(2016), [서평] 개미와 공작[https://newspeppermint.com/2016/10/10/m-peacock/]

PhiLoSci Wiki 적응주의 [http://zolaist.org/wiki/index.php/적응주의]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사회 속에 퍼진 혐오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