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대한 진실
몇 년 전 인터넷의 연예 기사는 댓글이 차단되었다. 지나친 악성 댓글로 연예 기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피해가 컸고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성 댓글 문제는 비단 연예 기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댓글을 달 수 있는 대부분의 인터넷 기사에서 혐오 표현을 포함한 악성 댓글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건 인터넷의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 문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일까. 티앤씨 재단 대표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법을 찾기 위해 혐오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티앤씨 재단 장학생들의 유럽 탐방을 대신할 온라인 컨퍼런스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 혐오에 대한 온라인 강연 기획을 시작했다. 그 결과 혐오에 대해 연구하신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을 모시고 혐오에 대한 온라인 컨퍼런스를 실시했고 그 컨퍼런스를 그대로 옮긴 『헤이트 Hate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라는 책을 완성했다. 유튜브에서 관련 강의는 모두 오픈되어 있기에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책의 각 장이 시작하기 전 강연 링크가 QR코드로 제시되어 있어 교수님들 강연을 쉽게 참고할 수 있었다.
공감이 과잉되거나 혹은 공감이 특정한 집단에게만 편향되게 되면 그 결과물로 혐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인철 외 8인(2021),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마로니에북스, p36>
일반적으로 혐오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혐오를 없애기 위해 해법으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많이 한다. 하지만 혐오의 기원에 대해서부터 설명하는 이 책은 혐오를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혐오는 잘못된 공감의 결과물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특정 집단에 대해 공감이 과잉되거나 혹은 공감이 편향된 결과물로 혐오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혐오는 상대방을 나랑 동등한 존재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이 상대방이 속한 집단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출발한다.
이러한 지적은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을 나와 다른 철학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가진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식 수준이 나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나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혐오 표현이 포함된 인터넷 댓글들에서는 이러한 사고 과정이 내재되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혐오의 문제는 편향적 태도, 편견에서 출발하여 편견에 기반한 행동 및 표현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차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후 차별은 편견에 기반한 폭력을 유발하며 극단적인 경우 Genocide라는 집단 학살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혐오의 피라미드를 통해 설명하며 혐오라는 감정과 혐오 표현, 차별, 폭력, 집단 학살이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인지 심리학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집단에서 편향적 태도는 집단 내에서 주장이 점점 극단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다음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결국 혐오의 시작은 내집단의 정체성 및 안전성 확보였으나 인지 편향, 감정 전파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Genocide가 끝임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여 준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 맘충(Mom+蟲)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사실 맘충이라는 단어 자체는 책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인터넷 나무위키에 따르면 맘충은 ‘엄마’라는 입장의 특성을 내세워 상대방의 이권을 강탈하거나, 주변에 직간접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다. 맘충뿐만 아니라 ‘~~충’ 같은 표현은 보거나 들을 때마다 굉장히 강렬한 불쾌감을 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가장 고생하고 있는 아이 엄마 중 아주 작은 소수의 이기적인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아이 엄마에게 ‘맘충’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는 우리 사회는 혐오 표현을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책에서는 혐오의 피라미드 외에도 Gregory H Stanton의 10단계 Genocide를 제시한다. 그중 눈여겨 볼만한 것은 4단계 비인간화(Dehumanization)이다. 비인간화는 사람을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와 같은 혐오스러운 존재와 연결해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충’에서 느껴졌던 꺼림칙한 느낌 또는 부정적인 이미지 그것은 농도 짙은 혐오였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혐오 표현이 점점 우리 사회에 퍼지면서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를 ‘침묵의 나선’ 모델에 연결하여 설명한다. 혐오 표현이 등장하면 혐오 표현에 동조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사회적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의견을 내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을 두려워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혐오 표현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지점으로 보인다.
인류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는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인류의 기억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혐오로 인한 사건이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혐오의 역사를 홀로코스트에만 집중하지 않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해 이슬람 포비아, 아프리카의 인종주의 및 민족 갈등, 십자군 전쟁, 페스트, 마녀사냥에서 나타난 혐오의 역사를 보여주며 혐오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여러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그중 혐오의 피해자가 혐오의 가해자로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혐오 현상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 일제 식민지로 지배당하던 시절 당시 일본인으로부터 혐오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아픔을 가졌다.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지금도 일본과 스포츠 경기가 있다고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대부분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혐오로 인한 상처가 가시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다시 혐오의 대상을 찾고 있는 듯하다. 걱정스러운 부분이며 우리 스스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행스럽게 이 책은 혐오로 인해 아픈 역사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혐오의 아픔을 이겨내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나라도 보여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와 이를 이어받은 르완다의 사례이다.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 단위의 관습 법정은 지역 원로가 재판을 주재했습니다. 재판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가해자 처벌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가해자에게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면 형사 처벌하지 않는 대신 피해자에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합니다. (… 중략…) 마을 단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르완다가 선택한 해결 방법이었습니다.
<최인철 외 8인(2021),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마로니에북스, p205>
사실 혐오의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취할 방법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혐오의 역사를 끊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사람들과 혐오의 역사를 끊어내지 못하고 여전한 역사를 써나가는 사람들의 자취를 확인하고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혐오가 위험하다는 역사의 사실만 마주했다고 한다면 이 책은 혐오를 끊어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헤이트 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는 혐오가 원시 시대 인간의 안전을 위해 진화적으로 내재한 속성이며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참혹한 역사를 만들어낸 감정이기에 끊임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감정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혐오 문제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야 할까. 책에선 혐오의 감정이 일어날 만한 조건들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혐오의 역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혐오, 차별, 폭력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해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의 설명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토록 입체적인 접근을 보여준다는 점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제시함으로 인해 개인의 성찰과 공감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있기에 혐오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SNS와 미디어의 발달로 나타난 정보의 홍수 속에 무엇이든 빠르게 강렬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사회가 혹시 혐오 표현을 부추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마지막 인용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참혹한 혐오의 역사를 만든 것이 우리 인류였다면 이 문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극복해나가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최인철 외 8인(2021),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마로니에북스, p389>
지은이: 최인철, 홍성수, 김민정, 이은주, 최호근, 이희수, 한건수, 박승찬, 전진성
제목: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판사항: 1판 4쇄
기획 : 티앤씨재단
발행처: 마로니에북스
출간 연도: 2021년 11월 15일
페이지 : 389면
Gregory H Stanton’s 10 stages of genocide: genocidewatch.net
Oberiri Destiny Apuke, Dauda Ishaya Suntai(2018), Revisiting the Spiral of Silence Postulation in the Social Media Age, 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Processing and Communication Vol.6 No.2, pp324-333
Pyramid of Hate [https://www.adl.org/sites/default/files/pyramid-of-hate-web-english_1.pdf]
혐오의 기원 : 생존과 공감의 파편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Pg96LU0Z1Ik]
혐오 현상의 이해와 과제 |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aBhArN9af44]
현대의 혐오: 인터넷과 혐오 | 김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cFp9Zb5L9rk]
혐오 발언 왜 문제인가? | 이은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u-VM5CVhOIQ]
홀로코스트: 혐오와 차별의 종착역 |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q2Iq_n8sqi0]
역사 속 혐오: 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Nf2JL-xEJMM]
집단 정체성과 혐오: 아프리카에서의 인종과 민족 | 한건수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uJDdM9_ZMmQ]
중세 유럽 역사 속 혐오 | 박승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BsXcoWwIt9Y]
왜 독일인은 유대인을 혐오하게 되었나? | 전진성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2020 티앤씨 APoV 컨퍼런스) [https://youtu.be/6DS0o46vy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