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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ug 03. 2022

조선 시대 가정상비약은 어쩌다 마약(痲藥)이 되었나

한국 근현대사 사회 속에서 바라본 마약과 사회상의 연결고리

보통 사람에겐 단어조차 낯선 ‘마약(痲藥)’. 마약은 특정 약물을 통칭하는 학술적 개념이 아니라 법률적 정의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마약류란 마약ㆍ향정신성의약품(向精神性醫藥品) 및 대마(大麻)를 말한다.” 법률적 정의에서 보이듯이 마약은 사람들이 중독될 가능성이 높은 약물에 관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규정되어 있고 법률에서는 이에 대해 처벌 일변도의 법이 제정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마약류에 대한 연구를 대부분 특정 분야(마약 성분, 중독, 오남용 피해 및 치료)에 대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도록 하였고 상대적으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적었던 마약류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 되어 버렸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마약 문제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연구하던 조석연 박사는 한국사회에서 마약이 ‘범죄’의 영역에 속하는 과정과 정부의 역할을 역사적 상황과 연결하여 살펴보고 마약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봄으로 인해 근현대사 연구의 관심과 주제가 넓어지기를 기대하며 『마약의 사회사』를 집필하였다.

양귀비(앵속) Photo by Anna Meshkov on Unsplash



시대에 따라 유행한 마약의 종류와 이에 대한 인식 변화


‘마약’이라는 용어와 그 정의가 존재하지 않던 전통사회에서는 그것을 재배하고 사용하는 일 자체가 모두 민간의 자연스러운 권리였다. <출처 : 조석연(2021), 마약의 사회사, 현실문화, p21>

저자는 마약에 대한 전통사회 인식부터 시작했다. 과거 전통사회부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마약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대신 시골에서 의원을 만나기 힘들기에 가정에서 갑작스러운 질병의 통증을 억제해주는 가정상비약으로 쓰이는 앵속(양귀비)이 있었다. 앵속은 지금으로 따지면 아편이고 주재료는 양귀비였다. 그러면서 전통사회에서 앵속을 키우는 것은 조선시대 일반 가정의 상비약을 구축하기 위한 일종의 권리라고 해석하였다. 약이 귀하던 시절 민간요법으로 사용된 앵속을 기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 생각되나 이것을 권리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인 듯하다.

전통사회부터 시작한 저자의 설명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를 거쳐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진다.  시기별 유행한 아편, 모르핀, 헤로인, 메사돈, 대마초, 필로폰이 등장하면서 마약의 종류와 마약으로 규정한 약물들은 다양해졌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타난 사회 현상을 바라본 정부는 마약을 ‘망국의 병’으로 규정하였다. 결국 ‘가정상비약’이었던 ‘마약’은 전쟁과 약탈로 급변하며 복잡해진 국제정세, 복잡한 국제 정세 속 개발된 새로운 마약물질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마약(麻藥)’으로 규정된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여러 가지 마약으로 인한 사회문제 현상 중 메사돈 파동과 대마초 파동은 나타난 양상이 다른 마약류와 사뭇 달랐다. 메사돈 파동은 제약회사에서 수익을 위해 메사돈이란 마약 성분을 의도적으로 일반 진통제 및 일반 의약품에 넣어 개발하여 판매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일반인들이 중독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사회 시스템의 허점과 이 조그마한 허점을 파고든 제약회사의 직업윤리 부재 그리고 당시 무분별한 정부의 약품 허가가 만들어낸 참사였다. 문제는 사회 시스템의 허점과 직업윤리 부재 그리고 무분별한 정부의 허가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군과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접촉하던 한국의 청년들도 이 같은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저항과 자유의 상징인 대마초 흡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중략…) 대마초가 서구에서와 같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와 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정부로서는 이를 어떤 형태로든 통제해야 했다. 그래서 제정된 것이 바로 「대마 관리법」이었다. <출처 : 조석연(2021), 마약의 사회사, 현실문화, p150-151>

대마초가 마약으로 규정되는 과정은 독특한 사회상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다. 1960~1970년대까지 베트남전을 계기로 서구에 퍼진 ‘대마초 = 마리화나(Marihuana)’는 우리나라 미군 부대에 유행했고 미군과 자주 접촉했던 청년들은 미군의 영향으로 대마초를 즐겼다. 정부는 저항과 자유의 상징인 대마초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그전까지 마약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대마초를 마약류로 규정하고 단속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목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정부가 시민들의 건강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해 파급력이 큰 연예인을 먼저 단속한 후 이를 언론에 노출해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과정은 분명 옳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자연스러운 대마초 흡연을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불법화되었다고 해석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이는 저자의 의식 기저에 ‘대마초는 마약으로 분류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제가 깔려 있기에 나오는 설명으로 생각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마와 대마초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라 새로운 시각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부 나라는 대마초를 비범죄화 또는 합법화하여 허용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설명은 일부 이해가 되나 대마초 성분의 정확한 분석과 저자의 논리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부족한 주장으로 보이며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조석연)가 주장하는 마약의 사회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저자의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집필한 『마약의 사회사』는 마약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한 마약류와 관련한 사회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바라보는 마약에 대한 관점과 변화하는 마약류와 사회 역사의 연결고리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국의 마약사는 굉장히 흥미로웠으며 처벌 일변도의 마약 정책의 한계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시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마약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핵심이자 기억해두어야 할 부분인 듯하다. 다만 2021년 SBS 스페셜과 KBS 시사 직격에서 다루었듯이 현대사회에서 20~30대에 주로 퍼져나가고 있는 마약 문제의 심각성까지 고려한다면 마약 문제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근현대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198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내용이 빠져 있는 점의 아쉬움과 대마초에 대한 오해를 가질 수 있는 저자의 암시는 읽는 이에게 주의를 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정부가 마약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저렴한 처방 중 하나인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처벌 위주 정책과 ‘비국민(非國民)’취급은 어쩌면 지금까지 지속되며 재활을 희망하는 마약 중독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마약의 사회사』를 통해 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서지 정보


지은이: 조석연

제목: 마약의 사회사 -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판사항: 1판 1쇄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출간 연도: 2021년 1월 15일

페이지 : 310면



Reference


김형중(1998), 마취과 관리 법규, 식품의약품 안전청

박한슬(2021), 강원도 면장은 어쩌다 아편쟁이가 됐나, 서울리뷰오브북스 Vol 2 pp.20~30

밤부엉이(2020), 대마초 중독자에 대한 고찰, 브런치 [https://brunch.co.kr/@nightowwwl/75]

법제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국가법률정보센터 [https://www.law.go.kr/LSW/lsInfoP.do?efYd=20210817&lsiSeq=234847#0000]

오후(2018),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동아시아

이미순ㆍ안원식(2011), 향정신성 의약품 지정, J Korean Med Assoc 54(2):189-196

최화경(2018), 의료용 대마 허용에 따른 우리의 과제, 「아름다운 젊음」,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Winter VOL. 91

[BBC Korea] 태국 대마 합법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국가에서 대마초 카레가 판매되기까지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1924037]

SBS 스페셜(2021.08.29 방송), 나는 마약중독자입니다. ep1 [https://youtu.be/CaWAxPM21Go]

SBS 스페셜(2021.08.29 방송), 나는 마약중독자입니다. ep2 [https://youtu.be/RlqyXdMM64k]

KBS 시사 직격(2021.12.03 방송), 마약을 처방해 드립니다. [https://youtu.be/MQN49JJ7n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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