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Oct 13. 2022

감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집 아이는 걸렸네..

코로나가 시작될 당시 아이는 유치원에 다녔다.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의 무서운 당부(코로나에 걸리면 엄마 아빠와 같이 잘 수 없다는 무서운(?) 당부)에 마스크를 꼭 쓰고 다녔다. 어딜 가도 마스크를 함부로 벗는 법이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쓰고 다녔지만 마스크의 위력은 대단했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이래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던 아이는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코로나 기간 동안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날씨가 선선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더운 초가을 씨.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답답해 보였는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가 시작됐다. 덕분에 아이에게 올해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마스크를 벗고 뛰놀게 했다. 오랜만에 벗은 마스크 때문에 아이 얼굴에 고양이수염 같은 하얀 마스크 자국이 보였다. 고양이수염은 우리 아이게만 달린 것이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마스크 벗고 뛰노는 아이들 모두 얼굴에 고양이수염이 달렸다. 동네 놀이터는 순식간에 고양이 놀이터가 되었다.

마스크를 벗은 채 신나게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에 방심한 찰나 우리 집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기침을 하던 아이는 목요일 저녁잠을 자면서 ‘컹컹’ 거리는 기침 소리를 냈다. 기침감기(후두염)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이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목과 콧구멍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가래와 콧물을 뽑아냈다. 누런 코와 가래를 뽑아내자 아이는 켁켁거렸다. 어른이었다면 불편하긴 해도 콧물과 가래를 제거하면 시원하다고 느꼈을 것을 아이는 불편하고 아프다고만 했다. 치료하는 내내 불편하고 아픈 표정이 역력했지만 다행스레 아이는 울지 않고 잘 견뎌줬다. 진찰하는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끝내면서 축농증과 후두염이 왔다고 하면서 항생제가 포함된 약을 지어주셨다. 약을 먹으면 아이가 금방 낫을 것처럼 생각되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부터 먹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날 저녁 아이는 밤새 기침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끙끙 앓으면서 힘들어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 아이는 봄, 가을마다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다. 어찌나 심하게 앓던지 기침감기에 걸려있는 동안에는 잠을 자고 있는지 기침 때문에 깨어있는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 먹는 기간이 2주가 넘었는 데도 기침이 잡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아이는 저녁에 특히 심하게 기침을 했는데 나는 아이 기침소리가 들릴 때마다 온몸이 털이 곤두서는 느낌과 안타까움에 잠을 설쳤다. 기침소리를 듣고 아픈 아이를 지켜만 보고 있는데도 기운이 빠졌다. 기침감기는 유독 낫는데 오래 걸렸다. 2주가 넘어가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2주가 넘어가는 감기는 나에게 항상 답답함과 조급함을 불러왔다. 답답함과 조급함에 기침 관찰일지를 써 소아과 의사한테 보여 줄 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가 기침이 심하다고 기침 관찰일지를 쓰지 않을 테지만 이과(理科)인 아빠는 기침 관찰기록이 의사 선생님께 아이 상태를 잘 알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열심히 기록해 병원에 가져갔다. 약을 다 먹고도 차도가 없어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병원에 간 날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좀 어때요?” 기침이 여전히 심하다는 말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나는 기침 관찰기록을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놀라는 눈빛으로 기록을 살펴보고 다시 약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감기는 쉽게 낫지 않았다. 아이는 늘 그랬듯 한참을 아프고 감기를 이겨냈다.


이번에 걸린 감기는 초등학교 들어서 처음 걸린 감기였으나 다행스럽게 유치원 때만큼 아프진 않았다. 아이는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이틀 정도 고생하더니 곧 괜찮아져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감기가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예전처럼 아플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괜찮아지는 모습에 긴장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아픈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아이가 아픈 것도 맞벌이 부부에겐 너무나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아이가 아프면 우리 부부 얼굴에 걱정과 당황스러움이 장마구름처럼 얼굴을 가린다. 아이가 아프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낼 수 없으니 누군가 맡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연락할 곳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를 힘들게 했다. 부탁드리기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전화를 드려 사정을 이야기해 매번 와이프 부모님, 처형, 내 부모님께 수소문해 맡기거나 그것도 안되면 학교에 연락해 사정해가며 연가를 썼다. 맞벌이 시절 아이가 아프기만 하면 그렇게 죄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 부부의 표정은 아픈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구름에 가린 햇빛처럼 잠깐잠깐 반짝이며 좋아졌다가 안 좋아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이가 건강해지면 쨍하니 맑은 가을 하늘처럼 얼굴에 내렸던 걱정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다행스레 육아 휴직 중인 내(아빠) 덕에 아이를 부탁드린다는 죄송스러운 연락을 드리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그런지 와이프도 나도 맞벌이할 때보다 마음은 덜 무거웠다. 다음날 와이프는 비교적 덜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고 나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간호했다. 아이를 덮친 감기는 다행히 일요일을 넘기지 않았고 우리 집 어른들의 얼굴에도 걱정이 사라지고 웃음이 돌아왔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할지 늘 고민이 된다. 맞벌이 부부가 아픈 아이도 믿고 잘 맡길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맞벌이 부부 중 누구나 쉽게 연가를 써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나에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질문과 같았다.


육아 휴직이 끝나고 내년부터 다시 맞벌이가 될 예정인 나는 내년엔 아이가 올해보다 조금 덜 아프길 기대해 본다..



Photo by Vitolda Klei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등교 준비 전쟁 다들 잘 하고 계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