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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Nov 21. 2022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준형아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등교를 위해 가방을 메는 아이를 도와주며 물었다. 아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학교 갔다 와서 이야기해줄게 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저러다 뜬금없는 메뉴를 이야기하면 안 될 텐데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아이가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한다. 얼른 정신을 차려 손을 흔드는 아이의 손에 맞춰 내 손을 흔들었다.

저녁 식사 거리를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식구들이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왔을 때 난감해질 때가 많다. 항상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다짐하건만 고민을 시작하는 것은 늘 그렇듯 그날 아침이다.


'저녁으로 뭘 먹지'


그에 비해 아침 식사는 고민이 없다. 육아 휴직을 했지만 지금까지 바쁜 직장 생활하며 간신히 차렸던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계란 프라이 하나씩에 김치, 밑반찬 한 두 개 그리고 김.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이다. 그놈의 김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지 아이는 아침마다 김을 찾았다. 그마저도 없는 날엔 실망하는 표정을  보이는 아이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다.


학교가 끝나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전 내 틈틈이 고민한 저녁 메뉴를 물어본다. 아이는 치킨, 햄버거, 라면, 구운 고기를 제외하고 한 번에 수락한 적이 없다. 누굴 닮아서 입맛이 이렇게 까다롭나 생각하다 포기했다.


"우리 집 아이가 닮긴 누굴 닮겠어"


혼자 중얼거리다 아이가 학원을 가니 마음이 조금씩 급해진다. 이제 저녁시간까지 고작 4시간 남았다. 오전에 저녁 메뉴를 결정하지 못한 날은 이때가 가장 고민스러운 시간이 된다. 점심은 혼자 먹기에 간단하게 먹던 거하게 먹던 아무 상관없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은 그럴 수가 없다. 이럴 때 은유 작가의 문장이 날아와 박힌다.


밥에 묶인 삶.


아침밥, 저녁밥. 육아 휴직을 하고 나니 밥에 묶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 저녁 메뉴가 늦게까지 결정되지 못한 날은 밥에 묶인 듯한 느낌이 든다.


영어 학원을 갔다 온 아이는 학교에서 밥을 조금밖에 못 먹었다며 먹을 것을 찾는다. 마침 식탁 위에는 난생처음 주문하면서 당당하게 소스를 하나만 뿌려 달라고 요청한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있었다.


"먹어도 돼?"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손을 대지 않고 샌드위치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노려보던 아이는 같이 먹자는 말에 식탁에 앉는다.


"아빠 먼저 먹어봐~ 맛있어?"


아이 말에 먼저 한입 먹어본다. 그리고 아이 질문에 대답 대신 냉장고에서 돈가스 소스와 마요네즈를 찾아 식탁에 가져왔다. 샌드위치에 소스를 추가 한 뒤 아이에게 내민다. 아이는 작은 입을 벌리려 애를 쓰며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아이 한 입, 나 한 입 번갈아 가며 먹으니 금세 포장지만 남았다. 포장지만 남은 샌드위치를 보며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역시 맛없어.."


어이가 없었다. 또다시 배고프단 말을 하는 아이의 손에 바나나를 쥐어줘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짜장라면이 생각났다.


"짜장라면 먹을래?"


짜장라면 한 마디에 아이 얼굴이 활짝 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짜장라면부터 물어볼 걸 그랬다. 급하게 인덕션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물을 끓이니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빠 프라이팬에 라면 끓이게?"


계란 프라이도 김치도 없이 국그릇에 짜장라면만 덩그러니 담겨 식탁 위에 올려졌다. 식탁에서 뺄셈 공부를 하던 아이는 집중이 안되는지 자꾸 짜장라면 한번 보고 뺄셈 문제 한번 보고를 반복한다. 안 되겠다 싶어 문제지를 옆으로 치우고 짜장라면 그릇과 젓가락을 아이 앞으로 옮겨주자 아이는 후루룩 거리며 한입 가득 짜장라면을 집어넣는다.


"맛있어?"


양볼 가득 짜장라면을 밀어 넣던 아이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젓가락질 몇 번에 짜장라면은 금세 동이 났다. 다 먹은 짜장 그릇을 치우다 갑자기 엊그제 사둔 갈치가 생각났다. 저녁 메뉴로 갈치를 구우면 되겠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전부터 내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고민 하나가 사라졌다. 퇴근한 와이프도 구운 갈치를 먹으면 되겠다며 반가워했다. 구운 갈치가 반가운 건지 저녁 메뉴가 해결되어 반가운 건지 구분하긴 어렵다. 반가운 표정에 힘을 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갈치를 굽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저녁 식탁엔 프라이팬에 튀기듯이 구운 갈치가 올라갔다. 다 먹은 저녁을 치운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후식을 먹으면서 이번엔 와이프한테 물어본다.


"낼 저녁은 뭐 먹을까?"



Cover Image Licensor's Author by Storyset on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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