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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Nov 24. 2022

노랗고 예쁜 콩나물 콩

"저기 있는 콩? 이번에 농사지은 거여~ 다 해도 저것밖에 안돼~"


내 손끝을 보던 장모님은 헛웃음을 치며 아쉬운 듯 이야기했다. 노란 콩을 보니 콩나물 머리가 먼저 생각이 났다. 내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는 손부터 나간다. 살살 쓰다듬어보고, 굴려보고 들어도 보더니 이걸로 무얼 하는지 묻는다.


"음~ 콩나물 콩?"

"이거 콩나물 콩 아니여~ 그거 메주 쑤는 콩이여~ 근데 양이 너무 적어~ 적어서 더 사 와서 메주 만들어야지~"


잘 모르는 나는 콩나물 콩이라 대답하였고 장모님은 메주 쑤는 콩이라 알려준다. 아이는 콩나물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콩나물을 키울 수 있는지 물어본다. 대답 대신 부엌에서 음식 준비하시던 장모님이 투명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아이 손에 쥐어준다. 머뭇 거리는 아이 등을 밀며 한마디 더 해준다. 


"가서 할아버지한테 달라고 해~"


할아버지의 후한 허락을 얻은 아이는 본격적으로 마당에 쭈그려 앉아 콩을 고르기 시작한다. 고사리 같은 손이 대야에 한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노란 콩이 손끝에 열매처럼 맺힌다. 한알, 두 알 고르고 고른 콩은 비닐봉지에 담긴다. 쭈그려 앉아 있던 아이는 날 부르더니 손끝으로 무언갈 가리킨다. 


"저기 있는 의자 좀 줘~~"


아이 손 끝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니 생뚱맞은 목욕탕 의자가 하나 앉아 있다. 이게 왜 여기라는 생각에 빠질 때쯤 아이의 재촉이 나를 깨웠다. 


"아빠! 빨리 줘!!"


아이 말에 떠밀려 목욕탕 의자를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반가운 얼굴로 목욕탕 의자를 대야 옆에 놓더니 다시 집중하기 시작한다. 수능이 끝났지만 추워질 기미가 없는 아침 마당에 햇살이 가득하다. 햇살을 등지고 가만히 앉아 콩을 고르던 아이는 이내 더운지 겉옷을 벗어던지며 한마디 한다. 


"더워!!"


아이가 한참 동안 고르고 고른 콩의 양은 아이 주먹 하나만 했다. 작은 주먹만 한 욕심. 그게 아이가 가진 욕심의 전부였다. 그 작은 욕심을 뒤로하고 나는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 잠시 눕는다는 게 깊이 잠이 들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는 허물을 벗듯이 겉옷부터 벗어던졌다. 정수기 밑 수납장에서 일회용 국그릇을 꺼내는가 싶더니 송곳을 찾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송곳을 찾는 아이에게 먼저 콩을 물에 불려야 된다며 작은 냄비 하나를 내어 주었다. 짧은 손을 쭉 뻗어 냄비에 물을 담아 콩을 헹구고 식탁 위에 올리는 데 주방 바닥이 물 바닥이다. 


"아이고 이게 뭔 난리야~"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이 귀에 들릴리는 없겠지만 어지러워진 주방 바닥에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탄식에 가까운 혼잣말과 다르게 내 눈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또 찾고 있었다.


"준형아 이 까만 비닐봉지 쓸 거야?"

"응!!"


식탁 위에 까만 비닐봉지를 둘러쓴 콩나물시루가 금세 완성되었다.


'이게 뿌리가 나오긴 할라나?' 


의심과 다르게 다음날 아침 콩나물시루에 들어간 노란 콩은 하루 만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하얗고 뽀얀 뿌리가 조금 나오는가 싶더니 또 다음날엔 그 뿌리 길이가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었다. 뿌리가 나오자 아이는 신이 나서 춤을 췄다. 동글동글하고 촉촉한 노란 콩은 마치 아이처럼 쭉쭉 자랐다. 


뿌리가 자랐지만 까만 식탁 위에 까만 비닐봉지가 덮인 콩나물시루는 말이 없었다. 조용한 콩나물시루는 아이의 관심을 끄는 것에 실패했다. 아이에게 관심을 끌지 못한 콩나물시루는 결국 내 손에 붙들려 싱크대에서 물벼락을 하루에 한 번씩 맞고 자라고 있다. 말없는 콩나물시루 대신 오늘 저녁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준형아 콩나물 다 크면 어떻게 할 거야?"




Cover Image Licensor's Author by Macrovector on Freepik.com

Cover Image Edited by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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