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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Nov 17. 2022

아빠 생각(2/2)

마트에 사과를 사러 간다고 했지만 낮잠을 자는 척하는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 옆에 와이프가 가서 누웠다. 엄마가 옆에 가서 눕자 머리가 아프다던 아이 손엔 어느새 책이 들려 있었다.


결국 아침에 중단한 숙제는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이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잡는가 싶더니 다섯 글자를 넘기지 못하고 엄마한테 질문한다.


엄마 뭐해?

엄마? 대학원 숙제해~ 준형이도 어서 써야지?


다시 연필을 잡고 다섯 글자를 쓰더니 이번엔 아빠한테 질문한다.


아빠 뭐해?

아빠는 공부하지 책 보고~

아빤 그게 재밌어?


재미없다는 표정의 아이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연필은 잡았지만 글씨를 쓰진 않았다. 아이의 느린 속도에 엄마의 잔소리가 아이의 어깨를 누른다.


준형아 오늘 그거 마무리해야 돼~

알아! 생각하는 중이야!


아이가 다시 뾰족한 삼각형이 되었다. 뾰족한 삼각형이 연필을 고쳐 잡더니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던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는지 술술 써간다. 그러더니 아이가 소리친다.


다 했다!! 엄마 다했어!! 아빠 다했어!! 히히 엄마는 아직 다 안 했지? 나는 다했는데~ 다했는데~~


엄마가 대학원 숙제를 못 끝내고 계속하고 있자 아이는 게다리 춤까지 추었다. 숙제를 끝낸 기쁨에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아이가 앉았던 책상엔 아이가 완성한 글짓기 종이만 남았다. 절대 보면 안 된다는 아이는 없고 노느라 바쁜 아이만 있었다. 이때다 싶어 아이가 완성한 종이를 훔쳐보았다.


내 아빠는 바쁘다.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청소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아빠는 저녁 시간과 아침 시간을 가장 좋아 하는 것 같다. 왜냐면 주말을 재왜하면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우리집 요리사이다. 아빠가 만든 음식은 맛 없는 게 하나도 없다.


나이 든 아빠가 생각났다.


속이 훤히 보이는 적은 머리숱.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40대 후반에 팔씨름으로 20대의 젊은 사촌 형들도 이겨버렸던 굵은 소나무 같은 팔뚝은 나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자작나무 같이 하얗고 얇은 내 팔뚝과는 달랐다. 외출 전 신발에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이 묻어 있으면 꼭 물티슈로 닦아내야 외출을 하는 아빠는 지금도 백화점 갈 때는 정장 바지를 입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빠는 1956년 무안 해제면 도리포 바닷가 아주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풀을 잘 먹여 다린 한복만 입는  할아버지와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구해 10킬로미터도 넘는 시장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왔다 갔다 하며 살았던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당신 아들들이 공부를 했으면 했기에 고등학교는 목포로 유학을 보냈다.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아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할아버지 몰래 술과 담배를 하며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여름방학이 되면 공부한다는 핑계로 시골집에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돌아온 날은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잔뜩 마시기 마련이었다. 해가 언제 졌는지도 모를 늦은 밤. 친구들과 술을 잔뜩 먹어 할아버지에게 걸릴까 봐 조심조심 쪽방에 들어갔으나 시골집이 으레 그렇듯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에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 할머니에게 낼 아침은 콩나물 국을 끓여 달라고 하셨다. 다음날 잠과 술이 덜 깬 얼굴로 할아버지 앞에 앉아 아침을 먹는 아빠에게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 한 마디 했다.


재춘이 어제 늦게 드러왔냐아?


공부를 하기 싫었다던 아빠는 군대에서 뭘 할지 고민하다 동네 어르신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니 성격이믄 공무원 하믄 쓰겄다~


아빠는 그렇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는 공무원이 인기가 없어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했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한 아빠는 술을 마시고 이야기할 때마다 전라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 있는 말투로 자랑을 한다.


아빠 나이때에 나 만치로 가정적인 사람은 없었제~~


밑도 끝도 없는 자랑이 시작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내가 서운한 것을 이야기할라 치면 능청스럽게 웃으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랑보다는 애증에 가까운 나의 마음은 그의 능청스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네시스를 타는 것이 남은 유일한 소망으로 보이는 아빠는 아직도 11년된 낡은 그랜저를 끌고 다닌다. 그의 거대한 포부에 기가 막힌듯한 표정의 엄마는 씨알데기 없는 소리라 쏘아 붙인다. 아빠가 이길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러지 않길 바라며 나는 묵묵히 아이가 내팽개쳐둔 아빠 생각을 아이 가방에 챙겨주려고 움직였다.



Cover Image Designed by Jcomp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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