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들 준형이는 태어난 후 만 8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비롯하여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우리 아이 말고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버지 생신과 준형이의 생일이 비슷한 시기라 내려간 목포에는 작년 8월에 태어난 조카가 와 있었다. 조카의 이름은 선우. 이제 4개월이 조금 넘은 선우는 등장하자마자 온 가족의 시선을 빼앗았고 생일이라 기대를 가지고 목포에 왔던 준형이는 어른들의 시선에서 잠시 잊혔다.
“준형아. 엄마 애기 안아 봐도 돼?”
모든 어른들이 갓 태어난 아이에게 시선을 뺏기던 중 아내가 한 말이었다. 준형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를 보는 어른들의 얼굴엔 신기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어른들이 번갈아 가며 선우를 안아보고 있을 때 준형이는 연한 초록빛이었다.
그러나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나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 전 준형이는 짙은 초록빛으로 뒤덮였고 화산처럼 폭발했다.
“아빠는 내 아빠가 아닌 것 같고, 엄마도 내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준형이는 말을 마치고 이불속에 고개를 파묻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거실을 거쳐 안방으로 넘어가자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왔다.
“아 아ː니~ 준형이가 으째 그란데?”
울고 있는 손자를 본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으째 그라긴ː 서누보고 샘이 난께 그라제ː”
“아그들은 다ː 그래야ː 지하는 둘째 안고 어디 갈라고 하므는ː 그 아페 주저 안자가꼬 비키지를 않해브러쓰!”
조용한 목소리로 준형이의 초록빛을 설명하자 옆에 어머니의 대답이 추가됐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동생이 태어난 직 후의 나는 질투가 심했다.
“너는 더 해쓰야ː 지 동상을 을ː마나 샘냈는가. 말도 못한단께ː”
그 초록빛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나 보다.
“준형아, 준형아. 준형이는 엄마가 선우 안아주는 거 싫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옆에서 달래던 아내가 준형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이불에 고개를 묻고 작게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동생이 필요하다거나 동생을 낳아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엄마 아빠의 사랑을 빼앗기기 싫었나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그럼 엄마가 선우 안아주지 않으면 될까?”
“준형아ː낼은 할아버지랑 준형이 선물 사러 가까ː?”
결국 아내의 약속과 할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약속받고 아이는 연한 분홍빛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동생을 가지고 있는 첫째의 숙명이라고. 둘째를 처음 본 첫째의 충격은 부모님의 이혼과도 맞먹는다고. 그날 준형이가 그러했다. 엄마가 아기를 안아보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마음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내 아이의 짙은 초록빛의 감정은 낯설었다. 그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라면 더욱 익숙하지 않다. 다행인 건 우리 집엔 둘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준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사실 사랑이 부족한 걸까?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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