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젓가락질
오곡밥(영양 찰밥)을 정말 좋아하는데 집에서 해먹을 엄두는 나지 않아 정월 대보름에 반찬가게에서 파는 오곡밥 사 먹는 걸 정월 대보름을 보내는 낙으로 하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 화요일 저녁을 다 먹고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정월 대보름인걸 깨달았다.(흑흑) 초저녁이지만 반찬가게에 전화를 돌려서 오곡밥을 수배하였고, 간신히 오곡밥이 남아 있는 반찬가게를 찾아 부리나케 오곡밥을 구하러 길을 떠났다. 오곡밥을 구하러 길을 떠난다고 선언하자 아이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잠시 후 오곡밥과 양념 김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당당했고, 내가 아닌 오곡밥을 맞이하는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활짝 피었다(참고로 우리 아이는 밥돌이라 오곡밥을 엄청 좋아한다.). 이미 밥을 먹은 상황이지만 배불러서 못 먹는 와이프만 빼고 아이와 나는 오곡밥을 한 그릇씩 퍼서 양념 김에 맛있게 한 번 더 먹었다.(ㅋㅋ)
다음날 한가득 남아 있는 오곡밥만 있는 게 아쉬워서 다시 나물을 구하러 반찬가게로 출동하였다. 오전 11시 반쯤 우리 가족의 취향에 꼭 맞는 반찬 가게에 갔더니 여러 반찬들이 나와서 포장되고 있었고 가장 맛있어 보이는 무생채 무침, 배추 겉절이, 시금치나물, 메추리알 장조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온 반찬을 오곡밥과 함께 내놓았더니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ㅎㅎ).
아이 : (잔뜩 집중해서 젓가락질을 하더니 메추리알을 집어 자랑하듯 보여준다) 아빠!! 이거 봐 봐~!! 짜잔~!
나 : 응? (신기해하며) 메추리알을 젓가락으로 집었네?ㅎㅎ 대단한데~ㅎㅎㅎ 준형이 젓가락질 이제 잘하네~~
와이프 : (대견하다는 듯이) 우와~준형이 젓가락질 잘하네~부럽다~ㅎㅎ
아이 : (고개를 갸웃거리며)응~? 엄마? 왜? 왜 부러워?
와이프 : (아이에게 자신 없는 표정으로)응~엄마는 젓가락질 잘 못하거든...ㅎㅎ
언제부터인지 아이는 우리와 같은 어른용 쇠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식사 시간 우리 집 식탁에도 어른용 식기만 올라온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바른 젓가락질과 글씨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틈나는 대로 교정해 주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제야 조금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손가락을 끼워서 사용하는 젓가락을 주었고, 아이가 익숙해지는지 끊임없이 관찰한 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싶을 때 조정해주었더니 이제는 아이가 젓가락질에 익숙해진 것 같다.
오랜만에 찬장 서랍을 열어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아이의 젓가락들을 하나 둘 꺼내 살펴보니 참 많은 젓가락들이 나왔다.
포크와 이별하고 4~5살 즈음 처음 만난 젓가락이 사진의 가장 왼쪽에 보이는 뽀로로 젓가락이다. 아마 이걸로 1년 반 정도 연습을 하고 약간 익숙해지자 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빼주었다. 처음에는 고리 하나만 빼주고 6개월 정도 보냈고, 다시 고리 하나 더 빼고 6개월 정도 지난 다음 사진의 가장 오른쪽 형태 젓가락을 6개월 정도 쓰다가 두 개로 완전히 분리된 어린이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식당에 가서도 잘 하진 못하지만 아이도 엄마 아빠와 같은 어른 젓가락을 쓰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지금도 물론 짜장면이나 파스타와 같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젓가락으로 먹기에는 잘 미끄러지는 면들에 왕포크를 사용하긴 하지만 여전히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기특할 따름이다.
젓가락질이 그렇듯이 아이가 배워나가는 모든 것은 스스로 배우는 부분도 있지만 옆에서 부모가 관찰하고 끊임없이 필요한 부분을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양이 줄어들기도 하고 아이의 독립성이 커지면서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줄어들겠지만 지속적이고 충분한 대화와 관찰만이 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