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척하는 TV가 있는 집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우리 집 tv가 고장 난 줄 알고 있다. 와이프랑 내가 아이한테 스마트폰이나 tv를 오랫동안 보여주기가 싫어서 아이가 말길을 알아들을 때부터 우리 집 tv는 고장 났고, 고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나는 꼬박꼬박 케이블 tv 구독료를 내고 있고 아이가 자는 밤에 와이픈 tv로 드라마를 즐겨 본다.)
아이가 tv를 안 본다는 건 아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환경일 수 있으나 와이프와 나는 너무나도 버티기 힘들었다. 아이가 놀 때 항상 같이 놀아주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육퇴(육아 퇴근)는 아이가 잠잘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흑흑) 이 상황을 양가 부모님들에게도 설명했고, 우리 가족이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부모님들도 덩달아 tv를 보지 못하는 행운(오직 아이만 보고 있어야 하는 행운?)을 누리셨다.
그러다 보니 아이랑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아이가 가장 관심 있어하는 건 만들기, 책 읽기, 밖에서 뛰놀기였고 그중에서 내가 아이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책 읽기였다. 아이는 조금씩 책에 관심을 보였고 점차 책을 읽어 달라는 요구는 많아졌다. 책도 많이 읽어 주었다. 하루에 기본 1시간 이상씩 꼬박꼬박 읽어주다 보니 가끔은 목이 아파 와이프와 번갈아 가며 읽어 주던지 아니면 여기까지만 읽자고 실랑이를 벌였다.
나(또는 와이프) : (지친 목소리로) 아우~ 목 아프다 준형아~ 오늘은 이것까지만 읽자~응?
아이 : 아니야~아니야~ 이것도 읽어줘~여기까지 읽어줘~~
나(또는 와이프) : 그럼 이다음부터는 엄마(아빠)한테 읽어 달라고 해~~ㅠㅠ
아이 : (책을 들고 엄마(아빠)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엄마(아빠) 여기서부터 읽어줘~~ 빨리~~
그런 영향인지 아이는 글을 빨리 읽었고, 어느 순간 짧은 동화책은 스스로 읽었다. 긴 동화책만 와이프와 나한테 읽어 달라고 졸랐다.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도 점점 뚜렷해졌다. 동물, 곤충, 과학 원리, 모험이 주가 되었고 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 보였다.
그러다 작년 10월, 11월부터 톰 소여의 모험, 나무집, 걸리버 여행기 등등을 혼자 읽기 시작하였고, 이 정도면 해리 포터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해리포터 1편(마법사의 돌)을 소개해 주었더니 지금은 완전히 해리포터 홀릭이다. ㅎㅎ (만세!!)
그러더니 이제는 어느 육아 서적에만 있는 이야기처럼 바뀌었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도 놀아달라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해리포터 책을 찾아서 아침 식사 전까지 조용히 책을 읽고, 밥을 먹고 나서도 틈틈이 한두 시간 정도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만 7년이 걸렸다. 어느 날은 저녁을 먹고 아이는 책 보러 가고, 와이프와 나는 서로를 칭찬했다.
나 : 준형이가 책을 열심히 읽네ㅎㅎ 대단해ㅎㅎ
와이프 : 나는 우리가 더 대단한 거 같은데? 8년 동안(만 7년) tv, 스마트 폰 안보여주고 버틴 거잖아.ㅎㅎ
나 : 그런가? 우리가 더 대단한가?
육아는 장기전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