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박스

아이가 커가는 게 아쉬운 하루하루

by 지하

아파트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월요일인 데다가 이리저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아이스박스 작은 것을 버리려다가 고구마 보관용으로 놔두었던 큰 아이스박스가 거추장스러워 보였는데 마침 작은 아이스박스가 있길래 큰 아이스박스를 정리하고 작은 아이스박스로 바꾸어 두었다. 그런데 왠지 허전해서 아이스박스 윗면에 "고구마 박스"라고 써두었다.

부엌 베란다에 있는 조그마한 고구마 박스


집에 양파, 계란이 다 떨어져 가길래 와이프한테 사달라고 했더니 와이프가 새벽 배송으로 생협에 주문을 넣었던 것이 오늘 아침 8시 반쯤 배송되었고, 아침부터 생필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필품을 정리하자 덩달아 (우리 아이도 밥 먹고 유치원 가야 하는데 ㅜㅜ) 밥 먹다 나 따라서 박스에 담긴 물건을 꺼내면서 신나게 정리를 시작했다.ㅋㅋㅋ(아이고..ㅠㅠㅋ)


와이프가 먹고 싶은 샐러드 소포장된 거 2개, 리코타 치즈가 맨 위에 있었고, 그 밑에는 방울토마토, 우유 1개, 생수 얼린 것 1개(요즘에는 아이스팩을 넣어주지 않고 생수 얼린 것을 주로 넣어주는 것 같다.), 또 그 밑에는 계란 10개짜리 3개... 등등


부지런히 물건을 꺼내서 냉장 보관할 것은 냉장고에 집어넣고 계란은 계란 통에 옮겨 담고 있으니 아이는 까치발을 들어 낑낑거리며 박스 맨 아래에 깔려 있는 고구마와 양파를 꺼내려고 했다. 양파는 잘 못 꺼내면 흙가루랑 양파 껍질이 날아다닐 것 같아 와이프가 급하게 아이를 말린다.


와이프 : (다급하게) 준형아! 양파는 놔두고!! 양파는 놔두고~ 고구마만 꺼내~~

나 : (고구마를 꺼낸 아이를 보고) 준형아~고구마는 베란다에 있는 고구마 박스에 넣어줘~~ 고구마 박스 어디 있는지 알지?

아이 : 응~알았어~고구마 박스~~ 에 넣어 둘께~~(잠시 후 고구마 박스를 본 뒤)~~ 까르륵~!! 고구마 박스~?ㅋㅋㅋㅋㅋㅋ


아마 내가 그려둔 그림을 봤는지 까르륵거린다.


나 : 준형아~고구마 다 정리해 뒀으면 밥 먹어야지~밥~밥 먹고 유치원 가야지~

준형 : (신나는 표정으로) 응~(그러다 갑자기 다급한 표정으로)나 똥!!!(하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순간 와이프와 눈이 마주치며 아이의 뒷모습을 행복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신나게 정리하다가 갑자기 똥 마렵다고 엉덩이 잡고 뛰어가는 우리 아이가 내 눈에는 아직도 귀여운 아기로 보이는데 내 눈에만 그런 거겠지?


아이가 커가는 게 하루하루가 아쉬운 행복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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