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만의 과학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을 통해 알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어지고 과학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연히‘과학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라는 질문이나 ‘ 과학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따라왔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1918~1988)도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1963년 시애틀 소재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주최한 ‘John Danz Lectures’시리즈에서 소개하였다. 그 당시 파인만은 ‘과학은 다른 분야의 사상과 아이디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의뢰받았었고 고민 끝에 강연 주제로‘The meaning of it all’을 선택하였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과학) 그 모든 것의 의미’ 정도가 될 것 같다. 총 3부로 이루어진 강연은 강연록으로 남겨졌고 우리나라에서는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로 출판되었다. 파인만이 생각하는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학은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를 비롯하여 과학이 알려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비유와 예시는 파인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얼마나 명쾌하고 사려 깊은지 알 수 있었다.
과학은 일상생활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 힘들고 재미없는 것 또는 어려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 같다(이지영, 2009). 이러한 과학의 이미지와 별개로 자신 또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에 과학은 꼭 필요하나 굳이 그 원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 같다. 단순하게 과학을 과학자만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써 과학의 인기는 높아져 가지만 과학이 정말 재미있어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 듯하다. 더불어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사인 나도 과학을 가르칠 때 고민은 늘어간다. 고민의 가장 큰 주제는 과학을 입시 수단으로서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과학의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가?’이다. 고등학교에 있다 보면 안타깝게도 학생들이 입시에 매몰되어 가르침을 요구할 때도 많다. 과학의 역사? 과학의 원리? 과학의 최신 경향? 과학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민을 더하게 된다. 이런 고민 중 파인만의 강연 중 언급된 과학의 특징은 나에게 날카로운 지적 같았다.
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과학의 현실적 응용, 그러니까 과학의 결과물을 통해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 중략 …)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능력에(그것이 선한 목적이든 악한 목적이든 간에),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라’는 설명서는 딸려 오지 않는다.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리처드 파인만(2017),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승산, p13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사실은 정말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못했을 ‘과학의 결과물을 통해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나는 얼마나 알려주고 있을까. 나 역시도 과학을 가르치면서 과학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였는지 잘 모르겠다. 나에겐 새롭게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과학자의 책임과 윤리의식이었다. 책임과 윤리의식이라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걸 해야 할까?’와 관련된 부분이다. 파인만은 여기서 질문을 섬세하게 둘로 나누었다. ‘이걸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첫 번째 질문과 ‘나는 이 일이 일어나길 원하는가?’ 하는 두 번째 질문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질문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두 번째 질문은 철학의 영역이며 순전히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선택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설명은 나의 머릿속에 있던 답답한 벽을 허물어 주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중요하며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파인만의 생각에 44년을 거슬러 응답하듯 과학의 책임과 윤리의식에 대한 문제를 [완벽에 대한 반론, The case against perfection]을 통해 다루어 주고 있다. 놀랍다. 생각이란 이렇게 이어져 가는 것일까. 읽고 싶은 책이 하나 더 늘어났지만, 생각의 연결을 발견한 기쁨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빨리 보고 싶어서다.
파인만의 강연에서 다루는 과학은 이것만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강연록 속에서 또 다른 과학의 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지은이 : 리처드 파인만
옮긴이 : 정무광ㆍ정재승
제목 :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출판사 : 도서출판 승산
출판연도 : 2017년 08월 09일
페이지 : 총 187면
· 마이클 샌델(2020), 완벽에 대한 반론, 와이즈베리
· 이지영(2009), 중학생들의 과학과 과학 학습에 대한 이미지와 과학 진로 선택 사이의 관계,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9권 8호, pp.934-950.
· 리처드 파인만의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 [https://youtu.be/3smc7jbUPiE]
· 리처드 파인만이 말하는 성실과 노력의 가치 [https://youtu.be/JX-YL2xNX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