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과 피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
인간은 시각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동물이고,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토대로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생명과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분류학도 처음에는 시각적인 정보를 기초로 생물을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분류학은 시각적인 정보 외에 새롭게 알게 된 해부학ㆍ분자유전학 등 여러 분야의 정보를 토대로 분류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흔히 이야기하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은 정말 의미 있는 분류인가? 니나 자블론스키(Nina G. Jablonski, 2012)에 따르면 외모의 차이는 ‘인종’또는 ‘민족’의 개념을 발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생명과학적 근거를 고려해보면 피부색으로 ‘인종’ 또는 ‘민족’을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피부색에 의한 유전학적 차이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피부색은 의학적 상황, 즉 환자 치료를 위해 판단하는 근거로서만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의학적 치료를 위해 객관적인 피부색은 ‘분광 광도법(Spectrophotometry)’을 통해 피부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을 측정하여 구분하고 피부 색상 연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피부색 분류에 따르면 비교적 밝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햇빛에 노출될 경우 피부 손상이 올 확률이 높으나,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피부 손상은 적고 선탠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래 표는 분광 광도법에 따른 피부색과 햇빛 노출에 대한 반응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실제 어렸을 적에 밝은 색 피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햇빛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빨갛게 약한 화상을 입으나 짙은 색 피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금세 까맣게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선크림을 바르면 느껴지는 얼굴의 답답함을 잘 참지 못하였고, 종종 새빨갛게 익어서 고생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햇빛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피부가 붉어지며 까매지는 것을 경험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얼굴이 거무죽죽하며 붉은색이 돌자 정말 볼품없어 보여 그때부터 선크림을 열심히 발라 지금은 간신히 얼굴색이 예전으로 조금 돌아오게 되었다. 햇빛에 때문에 화상도 입고 피부색도 진해지는 내 피부는 Ⅲ~Ⅳ사이쯤 되려나?
적도 지방의 사람들의 피부색은 내 피부색보다 조금 더 진하다. 물론 최근에는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생활 반경이 굉장히 넓어져서 자신의 선조들이 살아온 환경이 아닌 환경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적도 지방의 사람들이 모두 피부색이 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신기한 사실은 지구 표면에 닿는 연평균 자외선 양과 피부색과의 관계이다. 지표면에 닿는 자외선의 양이 많은 지역의 피부색은 짙은 색이고, 자외선의 양이 적은 지역의 피부색은 옅은 색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완벽하게 피부색의 적응(자연선택)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피부색을 통한 ‘인종’이나 ‘민족’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외선 등 환경 요인과 피부색(피부 반사율로 측정된)의 관계를 이용하면 인간 피부색 지도를 예상하여 작성할 수 있으며, 이 지도에 표시된 색은 지역별로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의 피부색과 거의 일지 한다.
출처 : Nina G. Jablonski(2012), 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양문, p123
피부가 겪는 문제는 피부가 경험하는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천 년 간 고위도 지방에 적응한 피부가 갑자기 적도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 피부의 진화 속도는 환경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빠른 변화에 따라가기 힘든 건 사람도 피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피부색뿐만 아니라 피부의 구조적인 형태ㆍ모습은 우리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Nina G. 2012). 내가 있는 고등학교는 두발, 화장, 피어싱에 대한 교칙이 없어 1학년에 입학한 학생들 중 일부는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물론 2, 3학년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탈색, 염색, 피어싱 등등. 그러나 입학한 지 1년 정도가 지나면 학생들도 다들 적당한(?) 수준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가끔 깜짝 놀랄 만큼 강렬한 표현들이 보일 때가 있는데, 평소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연극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면 최근에 속상한 일이 있거나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을 때 외모에 강렬한 표현이 나타날 때가 많다고 하였다.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시각 정보 점검 목록을 크게 확대하였고, 겉모습(피부)에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해 정교하게 변화시켜 왔다. 이러한 신체 변형은 자신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 등을 알리기 위해 피부를 캔버스(도화지)로 사용한 것이었고, 넓은 의미에서 신체 변형(화장, 문신, 피어싱 등)은 ‘신체 미술’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미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원하는 형태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해준다(Nina G. Jablonski, 2012).
나도 가끔은 파마를 하고 싶고, 염색을 하고 싶다. 이건 나의 어떤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것일까?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내 피부는 나의 어떤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을까. 내 나이? 건강 상태? 아니면 마음 상태?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도 다름 사람을 보면 판단의 근거를 수집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Nina G. 가 강조한 것처럼 사람마다 피부색, 구조적인 형태, 모습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존엄한 존재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빌 브라이슨의 책 '바디'를 통해서 만나게 된 SKIN(2006)은 우리나라에서는 [SKIN(2012):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이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을 쓴 Nina G. Jablonski는 인류 및 비인간 영장류의 환경에 대한 진화적 적응을 연구해온 생물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며, 특히 인간 피부와 피부색의 진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해 온 학자로 오랫동안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SKIN(2006)을 완성하게 된다. 좋은 내용과 쉬운 전개로 이해하기 쉽고 재밌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인터넷 검색에서도 잘 나오지 않아서 처음 검색해서 찾을 때는 애를 먹었다. 어려운 내용은 없기에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이해를 하였으나 유튜브에도 Nina G. 의 훌륭한 강연이 있는 것을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 저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은이 : 니나 자블론스키(Nina G. Jablonski)
제목 : 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옮긴이 : 진선미
출판사 : (주) 양문
출판연도 : 2012.05.30.
페이지 : 총 314면
George Chpalin(2004), Geographic Distrbution of Environmental Factors Influencing Human Skin Coloration,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125, pp292-302
Nina G. Jalonski(2012), Breaking the illusion of skin color [https://youtu.be/tLsFl6QiFh4]
Nina G. Jablonski(2020), The Evolution and Meaning of Human Skin Color [https://youtu.be/sc4OFcT5m1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