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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11. 2022

오해받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

확장된 표현형: 이기적 유전자, 그다음 이야기

자신의 주장이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완벽하게 오해받아 본 적이 있을까?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한다는 완벽한 오해를 받았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오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일부는 도킨스의 주장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킨스에게 질문이나 항의 메일을 보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구글에서 유전자 결정론을 검색하면 위키백과에 이런 내용이 있을까.


 ‘… 옥스퍼드 대학 생물학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
                                                                                        [위키 백과, 유전자 결정론 중에서 ]


억울했을 듯싶다. 나라면 자신이 주장하는 유전자 선택론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을 알았다면 적극적으로 수정한 개정판을 내지 않았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개정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 보주를 추가하여 해명한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 뼈대에 약간의 새로움을 덧붙여 이기적 유전자론의 대안으로 확장된 표현형을 써내어 사람들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런지 확장된 표현형은 이기적 유전자의 2편 같았다. 아니 도킨스의 진화론 1편은 [이기적 유전자]이고, 2편은 [확장된 표현형]인 듯했다. 정말 반가웠던 것은 2편이라 지칭한 [확장된 표현형] 앞부분에서 유전자 결정론처럼 보일 가능성에 대한 도킨스의 적극적인 해명이었다.


안타깝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쉽다고 표현해야 할까? 다양한 사람들(세 부류의 독자 - 생물학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 전문가, 일반 독자에서 전문가로 넘어가는 학생)을 위해 집필되었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와 다르게 전문가(동료, 진화생물학자와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 생태학자, 진화학에 관심 있는 철학자와 인문학자 및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원생과 학부생)를 위해 쓴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은 예전에 강원도에서 만난 안갯속 천릿길 같았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가 싶을 때도 많았으며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답답함에 얼굴이 종잇조각처럼 구겨졌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많은 사람이 [확장된 표현형]보다 [이기적 유전자]를 더 많이 기억하게 될 듯싶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다면 그런 형질들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껏해야 해당 형질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뿐이지 의지나 교육, 문화를 이용해서 바꿀 수는 없다(Gould, 1978, p.238).
<리처드 도킨스(2021), 확장된 표현형, 을유문화사 pp.41-42>


이것이 굴드가 정의한 유전자 결정론이고


다윈의 진화론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자연 선택의 기본 단위는 개체(유기체)가 아닌 유전 물질(유전자 또는 복제자)이며, 개체는 유전 물질을 위한 생존 기계에 해당한다. 생존 기계가 하는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 행동으로 유전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창조자(유전 물질)에게 의식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을 논할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2021),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이것이 내가 이해한 이기적 유전자론이다. 다르지 않은가? 물론 도킨스가 유전적 결정론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킨스가 말하는 것은 유전적 결정론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가 유전적 결정론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일부러 오해하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2021), 확장된 표현형, 을유문화사, p.41>


인지 편향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인지와 행동이 조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도킨스의 주장을 유전적 결정론이라 오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인지적 상황에 도킨스의 이론을 조화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아닐까?


도킨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갔다.


유기체의 표현형(생존 기계의 표현형)은 모든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 결과 나타난 산물이다. 이 산물의 범위는 작게는 개체에 국한되나 크게는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 이 표현형은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며, 모든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주변 유전자와 환경과 조화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전자가 선택된다.    <리처드 도킨스(2021), 확장된 표현형, 을유문화사>




자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1편(이기적 유전자)과 2편(확장된 표현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믿고 있는 인지적 상황과 도킨스의 이론을 조화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할 것인지 말이다.




에필로그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는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개정판을 내지 않고 보주와 새로운 장을 통해서만 수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확장된 표현형] 초반부에 나오는 옮긴 이의 말을 보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이라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보고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확장된 표현형]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이라니.. 내 생각보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보다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애정이 더 높은 것일까. 물론 이것은 도킨스만이 알 것이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이기적 유전자]보다 [확장된 표현형]이 더 어려울 뿐이다.


힘겹게 마지막까지  읽고 정리하고 나니 뭔가  과제를 해낸  같아 개운해졌는데 무엇인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서지 정보

지은이 : 리처드 도킨스

제목 :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옮긴이 : 홍영남ㆍ장대익ㆍ권오현

판사항 : 전면개정판

출판사 : (주) 을유문화사

출판연도 : 2021.11.30.

페이지 : 총 543면


Reference

Daniel Loxton(2021), 인지 부조화는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가, Korea Skeptic, Vol 28 p.50-79

Richard Dawkins(2021),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https://ko.wikipedia.org/wiki/유전자_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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