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도마뱀 입양 회의
토요일 아침.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식탁과 거실 테이블 사이에서 아이가 왔다 갔다 분주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살짝 보니 가족회의를 해야 한다며 회의에 바쁘다. 아빠 자리, 엄마 자리, 자기 자리에 각각 A4용지 2장씩 놓고, 각 자리마다 연필 하나 지우개 하나 중앙에 형광펜, 빨간펜, 검정펜, 파란펜 등을 준비하느라 종종거리며 돌아다닌다. 도대체 무슨 회의를 하려고 저러나 싶은데..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와이프와 나를 식탁에 앉힌다.
아이 : (심각한 어투로) 자~ 지금부터 회의해야 돼!
나 : 응? 무슨 회의?
아이 : (그것도 모른다는 투로) 아이 참! 아빠 못 들었어?
와이프 : 준형이 도마뱀 키우는 것에 대한 회의?
아이가 며칠 전(?) 아니 몇 달 전인가(?)부터 거북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거북이가 1m 가까이 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도마뱀 키우기로 바꾸었나 보다.
와이프 : 자 종이 맨 위에다 날짜 적고, 2022년 3월 5일 가족회의
아이 : (와이프가 종이에 쓴 것을 보고 열심히 자기 종이에다가도 따라 쓴다.) 2022년.. 3월... 5일..... 가족 회의..
와이프 : 준형아~ 회의야 회의, 회의가 아니라~
아이 : 응? 알았어~ 회의~~(열심히 손가락으로 따라 적으며)
(이미 우리 집에는 사슴벌레가 있는데(흑흑), 심지어 그 사슴벌레는 알을 낳아서 애벌레가 두 마리다... 애네 어떡하니..... 여기서 또 도마뱀이 온다고? 아이고....)
나 : 준형아 사슴벌레는 어떻게 해? 누구 분양해 줄래?
와이프 :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분양은~ 무슨.. 어디다 분양해.. 누굴 주니.. 저걸....
나 : 그럼 양평 할머니 집 앞에 산에 놓아줄까?
아이 : (동의한다는 듯이) 응~!! 동의!ㅋㅋ
그러더니 자기 종이에 동의라는 의미의 체크 표시를 한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종이에 회의 내용이 자기가 적은 내용과 똑같은지 확인하고 자기 도장으로 쾅쾅!! 확인 도장을 찍어준다(웃음).
아이의 효능감을 위해 못 이기는 척 받아주며 회의를 따라가고 있지만, 회의를 진행하는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는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와이프나 나나 회의 내용보다 아이 얼굴을 보며 웃느라 바쁘다. 하지만, 아이 얼굴만 보고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삐지니 조심조심.ㅋㅋㅋㅋ
결국 이렇게 5월 5일 도마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입양되는 것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