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가?'의 시작
내 기억의 실타래를 잡고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보이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아빠는 바빴다. 아마 그 시대의 아빠들 대부분 그랬듯 밤낮 없는 회사일과 밥먹듯이 하는 회식으로 바빠서 집에서 자주 보진 못하였고 바쁘기에 아빠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며 살아오진 못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프거나 반드시 필요한 때라면 아빠는 거의 대부분 나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 모든 아빠가 당연히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아이가 필요할 때 시간을 내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뒤늦게 아빠에게 고마워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에 기억된 아빠의 존재는 아이가 원할 때 가능하면 시간을 내주는 존재였다. 이런 다정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는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아빠의 팔과 다리에 매달리며 놀아달라고 졸랐지만 사춘기, 중고등학교 시험, 대학 입시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왠지 쉽게 다가가긴 어려운 흔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흔적으로 인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였고 아이가 태어났다. 남자아이였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는 아빠를 찾았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만큼 아이와 멀어질까 봐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못하였기에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코로나에 걸리진 않았지만 몸무게는 점점 늘어 확찐자가 되어 버렸고 그해 말에 실시했던 건강검진 결과 지방간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평일 출근하기 전 동네 2~3바퀴를 뛰거나 걸었다.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호수공원에 나가 걷고 왔는데 아이가 같이 가고 싶다는 말에 가끔 같이 가곤 하였다.
육아 휴직을 한 올해도 가끔 주말 아침 호수공원에 다녀왔다. 아이는 흥미를 잃어 더 이상 같이 가진 않지만 가끔 내가 아침잠 많은 와이프를 꼬시는 데 성공하면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호수공원에 갔다. 아침 일찍 아침도 먹지 않고 온 가족이 호수공원에 간 날은 김밥집에 들러 다 같이 김밥에 라면을 먹고 왔다.
그러던 중 와이프가 대학원 면접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말이 생겼다. 뭐하고 시간을 보내지 하다 호수공원이 생각났고 아이랑 둘이 나가서 아침 먹고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뜩 아이 반의 다른 집 아빠들이 궁금했고 같이 호수공원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구글 설문지를 통해 신청을 받아보기로 했다.
처음 신청을 받는 거라 설문지를 정말 꼼꼼히 작성하였다. 네이버 지도를 따와서 집결 장소, 코스 설명, 식사 예정 지점을 그림파일에 기록하고 설문지를 만들었다.
설문지를 만든 다음 와이프한테 부탁하여 아이 반톡에 입장하였고 엄마들이 주로 있는 아이 반톡에 매력적인 제안(아빠 어디 가?)을 올렸다. 사실 제안을 올리면서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에 긴장하였지만 다행히 아이 등하교 길에 자주 보던 엄마들이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호응을 해주셨다. 다행스럽게 참여하겠다는 아빠 한분이 있어 토요일 아침 '아빠! 어디가?' 1탄은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 없고, 정답이 없다’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님 말씀처럼 모든 일은 노력한 만큼 돌아올 것이고, 정답이 없기에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야 하는 초보 아빠 도전 ‘아빠! 어디가?’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상단 이미지 Nathan Dumlao’s photo.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