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먹어~!!
아이가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작년 초복.
와이프와 나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직장 일과 집안 일로 정신없이 보니 지내다 복날이 온 것을 급식을 통해 겨우 알게 되었다. 복날이 다가오면 급식 메뉴에 항상 구운 닭다리와 닭죽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복날이 가까이 오면 대부분 와이프도 학교(직장)에서 닭죽을 먹고, 나도 학교(직장)에서 닭죽을 먹고, 아이도 유치원에서 닭죽을 먹고 집에 왔다. 당시 초복날이 일요일이라 토요일 아침 일찍 닭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매진이었고 그래서 초복 때 집에서 복달임 음식을 할 생각도 못하고 치킨을 먹었었다.
올해는 달랐다. 내가 육아휴직으로 집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기에 장을 보러 종종 마트를 왔다 갔다 하는데 마트 입구에 ‘초복 닭 예약받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나: (저녁을 먹으면서) 이제 조금 있으면 초복인가 봐? 마트 입구에 ‘초복 닭 예약받습니다.’가 붙어 있더라고
와이프: (그러냐면서) 그래? 준형아 초복 때 우리 닭고기 먹을까?
아이: (잠시 고민하더니) 응!
와이프: 그런데 준형아 닭고기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닭고기 못 구하면 뭐 먹을까?
아이: (당연하다느 듯이) 그럼! 소고기!! 구워 먹는 거!!
그렇게 우리 집 초복 복달임 음식 메뉴 첫 번째는 닭백숙이 되었고, 닭을 구하지 못하면 구워 먹는 소고기로 정해졌다.
다음날(초복 하루 전날).
다행히 날씨는 좋았고, 아이가 학원 간 사이 닭고기를 구하러 마트로 떠났다. 초복 하루 전날이라 닭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고민과 함께 마트에 갔는데 천만다행으로 닭이 있었다. 기쁜 마음을 가득 담아 생닭 두 마리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보너스로 전복도 같이 담았다. 집에 오는 마음과 발걸음은 가벼웠고 아이와 와이프한테 빨리 자랑하고 싶었다. ‘닭을 구했노라고, 같이 전복도 먹을 수 있다고’ㅋㅋ
초복날 오전.
와이프와 아이가 점심에 복달임 음식을 먹겠다고 해서 10시부터 부지런히 닭과 전복을 손질했다. 닭을 손질할 때는 관심 없던 아이가 전복을 손질하자 어느새 옆에 와서 뽀시락 거렸고 옆에 와서 낑낑대더니 결국 한자리 차지하고 싱크대 앞에 서서 전복을 솔로 싹싹 닦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귀찮고 성가셨지만 아이의 적극적인 태도에 항복하고 아이에게 전복 손질을 맡긴 채 옆에서 기다렸다. 이렇게 음식을 같이 만들고 나면 입 짧은 우리 아이가 그래도 열심히 먹으니 기다렸다.
재료 손질이 다 끝나고 냄비에 손질한 재료를 다 집어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이니 올해의 복달임 음식 ‘이북식 전복 닭백숙’이 완성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아이와 와이프를 식탁 앞으로 불러 음식을 차렸다. 그런데.. 아이가 음식을 대하는 모습은 마치 차가운 겨울의 초원이나 나무늘보 같았다. 음식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발랄한 생기(生氣)는 찾아볼 수 없었고, 아이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의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밥 몇 숟가락을 뜬 뒤 곧 일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엔 미련이 없었다.
나: (안타깝다는 듯이) 준형아~ 벌써? 다 먹었어?
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와이프: (믿기 어렵다는 듯이) 벌써? 더 안 먹어?
아이: 응~ 배불러!
아아.. 아이는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는 식탁을 떠났습니다(ㅜㅜ). 식탁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만 안타까웠습니다.
입 짧은 아이(+ 체격이 작은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는 늘 아이가 먹는 음식에 대해 신경 쓰지만 늘 어렵기만 하다. 이 음식을 하면 잘 먹을까? 아니 저 음식을 하면 잘 먹을까? 생각해서 요리를 해보지만 아이의 선택은 늘 야속하기만 하다. 식사시간에 내 아이가 잘 먹는 모습만 기다려지는 부모인지라. 마음을 내려놓고 싶지만 아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갔을 때 두 눈을 반짝이고 입은 쉴 새 없이 오물오물 거리며 양볼 가득 음식을 밀어 넣는 아이의 모습이 주는 행복감(+중독성)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부모란 그런 존재 인가 보다.
아이가 식탁을 떠난 뒤 남은 음식 양을 보며 ‘이 많은 걸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저녁엔 와이프가 제안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감자채 볶음을 해봐야겠다.
입 짧은 아이를 둔 부모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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