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롭게 엮이는 생활권과 공동체
1부. 규범의 층위를 걷다 - 3. 규범이 만든 도시의 질서와 아름다움
프랑스의 아침, 출근길을 걷다 보면 자동차 소음보다는 자전거 벨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먼저 귀를 채운다. 길을 따라 이어진 카페와 작은 상점, 공원과 학교의 풍경이 눈에 띄고, 걸으면서 도시의 일상적 활동이 서로 맞물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이 순간,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과 삶의 흐름을 담은 구조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최근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파리 소르본 대학교 도시학자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가 제안한 이 모델은 [1], 모든 주민이 보행이나 자전거를 통해 15분 이내에 주거,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 및 여가 등 일상적 필요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 구조를 목표로 한다. 단순한 이동 시간 단축을 넘어, 주민 삶의 질 향상,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공공 공간 재편, 환경적 지속가능성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전략을 의미한다.
공공공간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장소로서 사회적 교류와 문화 활동, 여가 활용의 장을 제공한다. 15분 도시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주민 중심적으로 배치하면서도 누구나 이용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유지하는 균형적 접근이 강조된다. 생활권 내 접근성이 높을수록 도시의 사회적 연결망과 지역 정체성이 강화되며, 이는 주민들의 일상 경험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도시에서 교통 과밀, 자동차 중심 구조, 장시간 통근으로 인한 환경 문제와 삶의 질 저하가 심각해지면서, 생활권 단위에서 자족성과 근접성을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도시 정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15분 도시는 단순한 교통 정책을 넘어 도시계획, 건축, 환경, 사회 정책이 융합된 복합적 패러다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Moreno, 2016).
파리에서는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2020년 재선 과정에서 15분 도시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며 정책화하였다 [2]. 도시 내 자전거 도로망을 확충하고 보행 공간을 확대하며, 학교 운동장, 근린공원, 광장 등 다양한 공공공간을 주민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원칙적 공공성을 유지하는 실질적 변화를 추진했다.
리볼리 가(Rue de Rivoli)의 경우, 2018년부터 일부 구간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었으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설치된 임시 자전거 도로(코로나피스트)가 이후 영구화되었다. 2022년 5월에는 해당 구간이 전면적으로 자전거도로로 확정되어, 버스, 택시, 일부 필수 차량만 통행할 수 있도록 제한되었다 [3]. 현재 하루에 수만 명의 시민이 자전거로 통행하고 있으며, 이는 파리의 이동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꾼 상징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도시가 효율보다 생활의 속도를 중심에 두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책은 교통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일상 경험과 도시 이용 패턴을 변화시키는 사회문화적 실험이기도 하다. 건축물 단위의 친환경 규범과 달리, 도시 전체의 기능적 질서와 거주 방식을 변화시키는 혁신적이면서도 기존 정책과 연속성을 갖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Rue de Rivoli 자전거 도로 (출처: © Jacques Paquier – Own work, CC BY 2.0, Wikimedia Commons 원본)
그러나 15분 도시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내포하고 있다. 정책 목표가 교외 지역에도 15분 도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기존 인프라와 서비스가 중심지에 집중되어 있어 외곽 주민이나 저소득층은 실제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또한, 일부 시민만 참여 가능한 선택적 근접성이나 배달 노동자, 교외 출퇴근자의 이동 문제도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4]. 이러한 점에서 15분 도시는 이상적 친환경·사회적 도시의 이미지와 현실적 불평등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15분 도시는 기존 프랑스 도시계획의 원칙과 연속성을 갖고 발전했다. 예를 들어, 2013년 툴루즈의 지속 가능한 정비 및 개발 계획(PADD : Le Projet d'Aménagement et de Développement Durable)에서는 근거리 이동성과 공공공간 공유, 지역별 자족성을 강조하며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15분 도시는 이러한 근거리 생활권 강화 원칙 위에 시간 중심 접근, 현대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회복력, 기술 활용을 통합한 모델로 볼 수 있다. 즉, 기존의 다극화(multi-polarisation)와 탈중심화(déconcentration) 전략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현대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회복력을 결합한 발전적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전략이 대도시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했다면, 15분 도시는 여기에 시간 중심 접근성과 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전면적으로 통합한 모델이다.
(툴루즈를 포함한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는 는 2000년대 중 후반부터 중심지 접근성을 자동차 외 교통수단으로 촉진하기 위해 보행과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광역권 자전거 기본계획을 통한 자전거 네트워크 안전성 확보와 보행 전용 구역, 혼합 구역, 보행자 통로 등 보행화 가능 구역 식별, 편의성과 친밀성 향상을 통한 보행 촉진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15분 도시는 도시 설계와 사회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공공공간의 주민 중심적 배치와 열린 접근성 유지를 통해 지역 공동체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강화될 수 있으며, 이는 삶의 질 향상과 도시적 회복력으로 이어진다. 다만 대도시 중심 개념이라는 점에서, 중소규모 도시에서는 기존 생활권 구조와 인프라에 따라 적용 방식과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지역적 맥락과 주민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15분 도시는 단순히 기술적 효율을 추구하는 구조가 아니라, 도시와 시민의 리듬을 읽고 조율하는 철학적 실천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 발전과 근로시간 단축은 시간의 민주화를 촉진하여, 개인이 자신의 삶의 속도와 리듬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걷고, 머물고, 자전거를 타며 경험하는 모든 순간은 도시의 이야기를 읽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도시가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 환경과 삶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15분 도시는 도시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의 구조로 인식하게 만들며, 시민의 시간과 삶을 회복하는 동시에 현대 도시가 직면한 사회적·환경적 위기에 대한 새로운 응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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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los Moreno, « La ville du quart d’heure : pour un nouveau chrono-urbanisme », La passion de l’innovation, 3 octobre 2016, https://www.moreno-web.net/la-ville-du-quart-dheure-pour-un-nouveau-chrono-urbanisme/?utm
[2] Ville de Paris, Programme Paris en commun – Projet pour Paris 2020–2026, Paris: Mairie de Paris, 2020, https://droitausommeil.fr/wp-content/uploads/2022/11/Programme-ParisEnCommun-2020.pdf
[3] Ville de Paris, “Où en est-on de l'aménagement des nouvelles pistes cyclables?”, Paris.fr, 접근일 2025년 10월 26일, https://www.paris.fr/pages/les-pistes-cyclables-provisoires-vont-devenir-perennes-18264?utm
[4] - Erik Elldér, The 15-minute city dilemma? Balancing local accessibility and social equity. Transportation Research Part D: Transport and Environment, 112, 104360, 2024 : 스웨덴 예테보리시 사례를 통해 15분 도시 모델이 젠트리피케이션과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Ioana Antonia Tănase, & Cristina Maria Povian, Accessibility Challenges in the 15-Minute City Concept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in Timisoara, Romania. Sustainability, 17(19), 8727, 2025 : 장애인 및 노약자 등 취약 계층의 접근성 제한 문제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