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프랑스 지속가능 도시

1.6 지속가능한 건축과 도시계획 전략

by Jeonghoon KIM

21세기에 접어들며 프랑스는 기존의 도시계획과 문화유산 중심의 규제 체계에 더해, 지속가능성을 건축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기 시작했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넘어서, 건축이 환경 문제에 실질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제도 중 하나가 바로 2022년 시행된 RE2020 (Réglementation Environnementale 2020, 2020 환경 규정)이다.


RE2020은 기존의 단열 중심 기준이었던 RT2012에 비해 훨씬 포괄적이고 엄격한 규정을 도입했다. 건축물의 탄소 배출량, 에너지 효율, 자재의 환경성, 자연 채광 확보, 환기 시스템 성능 등, 건물의 생애 전 과정에서 환경적 영향을 평가하는 다층적인 기준이 적용된다 [1]. 특히 건축물 생애주기 분석(ACV : Analyse de Cycle de Vie)을 바탕으로 한 탄소지수 기준은 유럽에서도 선도적인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건축은 단순한 공간 설계를 넘어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한 설계 활동으로 의미를 확장하게 된다.


RE2020 비교표.jpg RT2012와 RE2020 비교표 (Guide RE2020 참조)


이러한 제도적 전환은 건축가의 역할에도 큰 변화를 요구한다. 현대 건축 설계는 조형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기술적 정당성과 환경 성능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목재와 재생 콘크리트, 패시브 디자인, 그린 루프 같은 기술들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친환경 건축이 단발적 선택이 아닌 설계 기준과 구조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는 HQE(Haute Qualité Environnementale, 고품질 친환경) 인증제도[1]를 중심으로 친환경 건축물 인증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널리 적용되며, 건물의 품질과 시장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툴루즈 메트로폴에 새로 지어진 전시컨벤션센터 MEETT는 HQE 인증과 LEED [3] 인증을 모두 획득하며, 프랑스 친환경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 건물의 설계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가 총괄했으며, 툴루즈 지역의 건축사무소인 Puig Pujol Architectures와 Taillandier Architectes Associés가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도시적 맥락과 프로그램의 통합, 유연한 공간 구성, 기능성과 혁신적 디자인의 조화를 핵심 철학으로 삼아 설계 전반에 반영하였다.


PB090835.JPG MEETT 외부 광장 전경


PB090850.JPG MEETT 전시동 사이 공간


PB090878.JPG MEETT 외부 광장 야경


MEETT는 툴루즈 북부에 위치하며, 도시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공공시설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총면적 약 155,000㎡로, 전시 및 컨벤션 공간, 회의실, 부대시설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양한 규모의 행사와 이벤트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모듈형 구조로 설계되었다. 프로젝트는 2011년 공모에서 선정되어 설계가 시작되었으며, 2020년 9월 26일 공식 개관되었다.

건물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건축 자재 선택과 폐기물 관리,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생태계를 보호하도록 계획되었다. 자연광 활용, 고효율 환기 시스템, 단열 성능 강화 등 다양한 기술적 장치가 적용되어 운영 에너지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4].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적 성능과 사용자의 건강, 쾌적성을 모두 고려한 이러한 접근은 MEETT가 공공건물이 지속 가능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임을 잘 보여준다.

이 사례를 통해, 프랑스 HQE·RE2020 건축은 공공과 민간 등 다양한 맥락에서 환경 성능과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언제나 순조롭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요구 수준이 높고 비용이 증가한다는 지적도 있으며, 특히 중소규모 개발업체나 저소득층 주택 프로젝트에서는 인증 요건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건축을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간주하며, 제도와 기술, 정책과 설계가 긴밀히 연결되는 도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HQE 제도는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거주자와 사용자의 건강과 쾌적성을 고려하도록 설계 기준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운영 효율성과 잠재적 경제적 가치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건축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도시와 건축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지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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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nistè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 Guide RE2020, p.1-7, p.24, 2024


[2] HQE(Haute Qualité Environnementale) : 1996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고품질 친환경 건축 인증제도로, 프랑스 환경부와 건축 관련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하였다. 이 제도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 자원 관리, 실내 환경 질, 운영 관리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지속 가능성과 거주자의 건강 및 쾌적성을 동시에 확보하도록 설계되었다.


[3] LEED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미국 US Green Building Council(USGBC)에서 개발한 친환경 건축 인증 제도로, 에너지 효율, 수자원 관리, 재료 사용, 실내 환경 질, 지속 가능한 부지 등을 평가하여 건물의 환경 성능과 지속 가능성을 인증한다.


[4] MEETT, Plaquette MEETT 2023, Toulouse: MEET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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