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을 넘어선 프랑스 도시와 건축의 미래

1.8 프랑스 도시와 건축의 다음 단계와 비전

by Jeonghoon KIM

규범을 넘어선 건축의 미래

프랑스의 건축 규범은 단순히 건물의 모양이나 기능을 제한하는 기술적 제한이나 형식적 절차를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계획의 총체적 목표[1]에서도 확인되듯, 이 규범은 도시계획의 큰 목표와 맞물려 있고, 사회·환경·문화 같은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정교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은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짓는 창작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가치 속에서 해석되는 사회적 행위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를 걷다 보면, 길을 따라 이어진 건물들과 광장, 공원과 상점, 그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과 삶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마주한다. 이러한 순간, 건축과 규범이 도시의 일상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내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건축 규범은 단순한 제약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과 공간을 읽고 해석하며, 시민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언어처럼 작동한다.


툴루즈 중심가 근처의 호제 살랑그로 (Place Roger Salengro) 광장.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축 사이, 광장의 카페 한편에서 스쳐가는 일상을 즐긴다.


프랑스의 건축 규범과 제도는 건축이 도시와 사회 속에서 잘 어울리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공공성을 계속 만들어 간다. 특히 유산 보호 제도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장소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개발과 균형을 이루는 장치로 작동한다. 즉, 과거를 그대로 묶어두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려해 도시의 역사와 흐름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제도적 사고는 이미 19세기 나폴레옹 3세 시기의 오스만(Haussmann) 도시 재편[2]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좁고 불결한 중세 골목이 철거되고, 위생·채광·환기·교통을 고려한 대로와 광장이 새롭게 조성되었으며, 건물 높이, 파사드, 자재 등 세세한 규범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도시개조는 이후 프랑스 전역의 주요 도시들이 파리의 오스망 개혁을 모델로 삼아 근대적 도시계획을 추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제한을 넘어 도시의 위생, 공공 안전, 미관 등 사회적 목표를 제도화한 장치였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이 과정을 자본 순환과 부르주아 이익, 정치적 통제를 위한 제도적 개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l’Avenue de l’Opéra 개설 기본 계획안 (출처 :© Paris Unplugged – Nicolas Bonnell / Goodwing Network)

이 도면은 1869년 파리 오페라 가(Avenue de l’Opéra)의 계획 과정을 보여준다. 기존에 작은 골목들이 있던 오페라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의 구역을 철거하고 직선 도로를 신설한 방식, 그리고 거리와 건물의 배치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사진 : 오페라 지붕에서 광장으로 내려다본 전경 - View of the Place de l’Opéra from the top of the Opéra, c. 1870 (출처 :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이 역사적 그림은 1870년경 오페라 위에서 바라본 오페라 광장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Avenue de l’Opéra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 : 오페라 가 전경 (출처: © Flickr 사용자 abragad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공공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현대적 요구와 연결하여 재해석한다. 19세기 오스만의 규범이 도시 질서와 시민 삶의 조화를 추구했다면, 오늘날의 건축 규범은 환경 지속가능성, 에너지 효율, 탄소 저감 등 기후 대응과 결합하여 도시와 시민의 복합적 요구를 조율하는 장치가 된다. 즉, 과거의 제도적 설계 원리가 현대의 사회·환경적 목표와 맞물리며, 도시를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생태계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환경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건축 규범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수단으로까지 여겨진다. 건축가는 이제 멋진 디자인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친환경 기술과 창의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기술과 미적 감각을 합친 설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도시와 건축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환경·사회·문화가 얽혀 있는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된다.


프랑스의 건축 규범과 제도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도시라는 살아 있는 구조를 읽는 언어다. 거리를 걷고, 광장을 지나며, 건물과 공원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도시가 품고 있는 사회적·환경적·문화적 필요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조율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규제가 늘 긍정적 결과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세세하거나 경직된 규칙은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한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는 창의적 시도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도시의 삶과 환경, 사람들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을 담을 수 있는 유연한 제도다. 절차를 단순화하고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강화하며, 지역 특성과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여 도시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프랑스 사례는, 건축과 제도가 단순히 기술이나 법적 제한이 아니라, 도시와 시민의 삶, 공공성, 환경과 문화가 얽힌 복합적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걸으며, 머물며, 도시의 소리와 빛,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모든 순간이 도시를 읽는 과정이다. 규범과 제도는 그 속에서 도시를 해석하고 조율하는 도구가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지속가능성, 공공성, 정체성 문제를 도시 안에서 읽고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험은, 도시를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과 삶의 흐름이 담긴 살아 있는 텍스트로 읽는 법을 가르쳐 준다.


14세기 Musée des Augustins(오른쪽 뒤), 19세기 후반 오스만식 건물 (왼쪽), 21세기 증축된 Musée des Augustins의 입구 (오른쪽 앞)

한 장의 사진 속에서, 14세기 건축인 툴루즈의 Musée des Augustins, 길 건너 마주한 19세기 후반 오스만식 건물, 그리고 21세기 포르투갈 건축사무소 Aires Mateus가 증축한 Musée des Augustins의 새로운 입구가 공공 공간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겹겹이 쌓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도시의 시간과 규범의 층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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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de de l’urbanisme, Art. L.101-1에서 L.101-3


[2] 조르주 오젠 오스망(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은 나폴레옹 3세 시기 프랑스 내무부 산하 파리 센느 주 총독(préfet de la Seine)으로, 1853~1870년 대규모 도시 재편을 주도함. 대규모 정비 사업을 통해 도로, 광장, 건물 높이와 위생, 채광 등을 개선하였으며, 일부 사회적·경제적 부작용도 발생.


[3] David Harvey, Paris: Capital of Modernity, London, Routledge, 2003, pp. 107–116. – 그는 2장의 The Organization of Space Relations 편에서 오스만 (Haussmann) 도시 재편을 근대 자본주의 도시의 탄생과 연결하여 분석하며, 대로와 광장개설이 단순한 미화가 아니라 자본 순환, 부르주아 이익, 정치적 통제를 목표로 한 제도적 개입임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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