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AP 법으로 보는 프랑스 도시의 기억과 창작

2.2 법이 만든 도시의 시간과 리듬, 창작과 기억의 연결

by Jeonghoon KIM

도시를 걸을 때, 오래된 석조 건물과 투명한 유리 파사드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마주하면, 마치 한 문단 안에서 오래된 문장과 새 문장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건물 하나하나가 말을 걸듯, 거리 전체가 하나의 문법처럼 읽힌다. 이러한 질서와 조화는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도시의 균형은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그 중심에는 2016년 제정된 창작의 자유, 건축 및 문화유산에 관한 법률(LCAP)[1]이 있다. 이 법은 단순한 행정 규정이 아니라, 프랑스가 도시와 문화유산을 대하는 철학을 제도 언어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법의 출발점은 이름 그대로 창작의 자유다. 제1편(제1조)은 “예술 창작은 자유롭다(La création artistique est libre)”[2]고 선언하며, 예술가와 건축가가 과도한 행정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 판단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무제한적인 자율이 아니다. LCAP는 공공의 가치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만 진정한 창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3조에서 규정하는 문화적 권리(droits culturels)[3]는 개인의 창작 활동을 사회 전체의 권리로 확장하며, 모든 시민이 예술과 건축을 통해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자유는 결국 공동의 삶 속에서 완성된다는 프랑스식 균형의 사유가 이 조항에 담겨 있다.


제2편은 이 법의 철학이 도시 공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 새롭게 도입된 중요 문화재 보호구역(Sites patrimoniaux remarquables, SPR)[4] 제도는 과거의 보존지구, 경관 보호구역, 건축·경관 가치 보존구역을 통합한 것으로,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도시 단위에서 관리하기 위한 장치다. SPR 안에서는 역사적 경관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건축은 기존의 재료와 비례, 색채를 해석적으로 이어받는다. 투명한 유리 파사드가 들어서도 거리 전체의 문법을 깨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문장으로 읽히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툴루즈 자연사박물관 (Muséum d’Histoire Naturelle de Toulouse)은 LCAP 법 제정 이전에 리모델링된 건물로, 17세기 수도원 건물 위에 현대적 디자인이 덧붙여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글에서 설명한 도시 문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사진 속 그랑 꺄레(Le Grand Carré)는 역사적 회랑 구조가 그대로 보존된 중심 공간으로, 옛 벽돌과 아치가 현대적 디자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도시의 질서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벽돌 건물, 유리 파사드, 녹색 정원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의 균형을 드러내, LCAP 법이 추구하는 도시적 질서와 창작의 자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툴루즈 자연사박물관의 입구 홀인 그랑 꺄레, 가끔씩 이벤트 공간으로도 이용한다


옛 수도원 건물과 그 앞에 새로 증축된 유리 파사드는 정원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LCAP 법은 또한 건축가의 참여 범위도 확대했다. 이전에는 170㎡ 이상 건축물에만 건축가의 참여가 의무였지만, LCAP는 그 기준을 150㎡로 낮추었다 [5]. 작은 규모의 건축에도 전문 설계가 개입되면서, 건물 하나하나가 도시의 전체적 품질과 리듬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도시의 질서는 개별 설계의 합이 아니라, 공공적 기준과 창의적 해석이 맞물리는 언어적 구조 속에서 완성된다.


제3편은 법 시행 체계를 정비하며, 문화유산법(Code du patrimoine)을 중심으로 기존 제도와의 연계를 명확히 한다 [6]. 이를 통해 도시계획법(Code de l’urbanisme), 건축 및 주거법(Code de la construction et de l’habitation) 등 다양한 규범이 하나의 언어처럼 작동하도록 조율되었다. 실제로 파리나 리옹, 툴루즈 등 주요 도시의 신축 허가나 리노베이션 심의 과정에서 LCAP의 원칙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건축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여 도시의 역사적 경관을 보호하면서도 새로운 창작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LCAP 법은 행정 문서 속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거리의 건물 비례 속에, 광장의 풍경 속에, 그리고 시민의 시선과 일상 속에 살아 있다. 대도시부터 작은 지방 도시까지 — 프랑스의 도시는 이 법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갱신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써 내려간다.


도시는 그렇게 읽힌다. 마치 한 권의 책처럼, 거리와 광장이 문장과 단락이 되고, 건물 하나하나가 의미를 더하는 단어가 된다. 그리고 이 문법을 해석하고 이어가는 사람, 즉 건축가와 시민이 함께 도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LCAP 법은 그 과정에 창작의 자유와 책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철학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법과 제도가 없는 도시라면, 새로운 건물은 역사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거리의 문장은 단절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도시는 다르다. LCAP 법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언어로 읽고 쓰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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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oi n° 2016-925 du 7 juillet 2016 — 창작, 건축 및 문화유산 관련 법 (Loi relative à la liberté de création, à l’architecture et au patrimoine)


[2] Article 1, Titre I — “La création artistique est libre.”


[3] Article 3, Titre I — 문화적 권리(droits culturels) 관련 조항


[4] Article 112, Titre II — SPR(Sites patrimoniaux remarquables) 제도 통합 규정


[5] Décret n° 2017-1466 du 12 décembre 2017 — 건축가 의무 참여 면적 150㎡ 적용


[6] Titre III — 문화유산법, 도시계획법, 건축·주거법 간 연계 체계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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