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건축유학, 쉽게 추천하지 않는 이유

12. 낯선 언어와 문화 속, 나 자신과 마주한 시간

by Jeonghoon KIM

유학을 선택할 때, 우리는 무엇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낯선 나라에서의 시간은 커리어를 넓혀줄까, 아니면 스스로를 더 깊이 흔들어 놓을까.
프랑스 건축유학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제 쉽게 “좋은 선택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스스로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너무 쉽게 다음 단계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로의 유학은 내게 단순히 학위를 얻거나 이력을 쌓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 가까웠다.
물론 이 경험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사례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프랑스 유학은 분명 값진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선택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프랑스 건축학교에서는 뭔가 대단한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다른 환경과 문화를 경험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건축 교육 시스템도 충분히 체계적이고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내가 막상 프랑스에 왔을 때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보다 본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프랑스에 남을지에 대한 질문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주한 불안과 서툰 자신,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끝없는 질문들이 하루하루를 채웠다.


어느 날, 주거세 문제로 관청을 몇 군데나 오가던 날이 있었다.
같은 서류를 들고 창구를 옮길 때마다 설명은 조금씩 달랐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줄을 서야 했다. 프랑스어로 상황을 설명하려다 말문이 막혀 고개만 끄덕이던 순간, 내가 얼마나 작은 선택 하나에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학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약했던 나를 더 드러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의 어려움은 단순히 말을 잘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수업 중 교수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고 얼굴이 붉어지던 순간, 동기들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혼자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고 조용히 웃기만 하던 시간들.
말이 부족할수록 나는 점점 대화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행정 시스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은행 계좌 개설, 집 계약, 체류증 연장 같은 일들은 모두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했다.
같은 문제라도 담당자에 따라 답이 달라졌고, 작은 실수 하나가 며칠, 때로는 몇 주의 지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일인지 체감했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 프랑스 유학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보다 내 안의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시간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애써 미뤄두었던 불안과 고민들은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졌을 뿐, 내가 마주한 불안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 감정들이 더 크게 울렸다.


또 어떤 이들은 ‘다들 가니까’ 혹은 막연한 기대만으로 유학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모든 유학은, 분명한 목표가 있다 해도 결코 가벼운 선택은 아니다.
도착하고 나서야 이 선택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게 된다.


입학 과정 역시 결코 느슨하지 않다.
정해진 어학 기준을 넘기지 못하면, 의지나 관심과 상관없이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영어가 아닌 제2외국어인 프랑스어는 준비 단계부터 이미 하나의 장벽으로 존재하며, 유학 생활 내내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 현지에서 자리를 잡는 문제도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자, 언어, 네트워크, 제한적인 채용 구조 등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더불어 프랑스의 건축 설계 시장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보수가 높은 편도 아니다. 안정적인 자리를 잡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말하게 된다.
프랑스 건축유학은 누구에게나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특히 반드시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길이다.
낯선 언어와 문화,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마주하고, 반복되는 불안과 시행착오를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용기가 있다면 프랑스 유학은 단순한 경력을 넘어 삶의 결을 바꾸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시간은 분명 다른 깊이의 성장을 남긴다.


어떤 선택의 앞에 서면, 나는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가 이 선택을 한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불확실함과 변화까지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에 솔직해질 수 있다면, 어느 길을 택하든 그 선택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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