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향으로

00. 프롤로그

by Jeonghoon KIM

20년...

내일모레면,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살아온 지 꼭 스무 해가 된다.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건축학교에 들어가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사이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늦은 나이에 아들도 얻었다.
뒤돌아볼 틈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고, 돌아보니 어느새 내 삶의 많은 부분이 프랑스라는 땅 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타지에서 자리를 잡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버티고, 작은 성취를 쌓아가며 이곳의 삶에 스며들었다.
그 과정이 고되고 외로웠지만, 나는 늘 스스로를 다독였다.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그렇게 믿으며.


그런데 어느 날, 마음 한편에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스며들었다.
분명 불행하거나 슬픈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는 왜 건축가라는 길을 선택했어?”
“네가 유학을 결심했던 이유는 뭐야?”

하지만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확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의 긴 세월 동안, 처음의 열정과 목표는 일상 속에서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 몰두하며 살아오느라,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오래전 품었던 꿈이 떠올랐다.
프랑스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하며,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노라는...
그 꿈은 아직 내 안에 조용히 남아 있었나 보다.
어쩌면 이 공허함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그 꿈이 나를 다시 불러내는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일상의 틈 사이로 묵혀둔 기억과 생각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유학의 길을 걸으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배움, 낯선 땅에서의 삶,
그리고 가족과 함께 쌓아온 시간들까지 —

그 모든 이야기를 천천히 써 내려가려 한다.


이 글들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를 읽는 누군가에게
‘이 길을 걷는 건 나만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처럼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선 누군가가
이 글 속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은 그래서, 하나의 기록이자 고백이다.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삶을 꾸려온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조용한 편지다.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시작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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