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머무는 시간

01. 타국에서 건축을 지으며, 삶을 짓다

by Jeonghoon KIM

나는 지금 툴루즈에 있는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8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 남부 옥씨따니(Occitanie) 지방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탄탄한 중견 사무소다.

사무소에는 두 명의 대표가 있다.
한 명은 공공발주 현상설계를, 다른 한 명은 민간발주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한다. 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민간발주를 담당하는 대표와 함께 진행한다.


우리 사무소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에서 흔히 보던 위계적 구조가 없다는 점이다.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두 명, 그래픽 업무를 전담하는 두 명, 그리고 설계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한 명을 제외하면, 열 명의 건축가가 모두 팀장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팀원의 역할을 맡는다.
프로젝트마다 마감일과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바쁜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회의를 거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방식은 대표와 직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 결과이기도 하고, 모두가 효율적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업무는 내가 속한 주거파트를 포함해서, 교육시설, 관공서 총 세 개로 나뉜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 교차하며 지원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업무 과중이 닥치면, 몇 명의 동료가 스스로 다가와 도와준다.


우리는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때때로 해결하기 힘든 난관이 생기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작은 인원으로도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런 협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어벤저스’라고 부른다.


나는 이렇게 매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동료들과 협력하고, 각자의 역할을 조율하며 하루를 보낸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가벼운 얘기를 나누며 친분도 유지한다.

사무소에서는 정기적인 회식이 거의 없다. 유럽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회식과 여름 바캉스 전의 전체 회식을 제외하면, 사소한 술자리조차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열린다. 코로나 이후로는 그런 자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여타 외국 회사와 마찬가지로, 사무소는 일과 후 개인의 생활을 존중한다. 그래서 저녁과 주말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남는다.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나는 일과 사람 속에서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결정들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답을 구해본 적은 없다.

한국에서 유학을 결심했던 순간,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모든 선택들까지—

이제는 그 질문의 답을, 그러나 분명히 찾아가 보려 한다.

아마 그 답은, 내가 처음 건축을 만나던 그 시절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흔들림과 선택, 그리고 그 위에 쌓여 온 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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