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방황하던 청춘, 건축의 문을 열다
한국대학에서의 건축학과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결코 모범생이 아니었다. 밴드 활동을 한다고 수업을 빼먹고 연습실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이 일쑤였다. 고등학교 때 순수하신 담임 선생님을 설득해 밴드를 만들고 어설프게 활동했지만, ‘대학에 가면 공부에 전념하자’ 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내 학과 시절의 많은 부분은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일들로 채워졌다.
그러다 2학년이 시작되던 해, 마음을 좀 잡아보자던 친구의 권유로 한 설계 스튜디오에 함께 들어갔다. 그곳의 방장이던 형은 첫날부터 “공부 안 하면 쫓아낸다”라고 협박하듯 말했지만, 그 말속에는 진심이 있었다. 형은 설계의 재미와 건축의 매력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었고, 내가 수업을 빠지면 어김없이 동아리방까지 찾아와 나를 끌고 갔다. 나름 ‘무서운 동아리 회장’이었던 내가 그렇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더 긴장했을 정도였다. 그 형 덕분에 나는 건축쟁이로서의 삶에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밤을 새우며 모형을 만들고 도면을 그리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즐거웠다. 기타를 치며 밤을 지새우던 때처럼, 설계를 하며 고민하는 순간에도 묘한 보람이 느껴졌다. 나에게 건축은 점점 공부가 아니라 또 다른 연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품었던 ‘건축가’의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 형이다.
같은 해, 학교에는 새로운 교수님들이 부임하셨다. 그중 한 분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신 분으로, 서양 건축사를 강의하셨다. 첫 수업 날, 교수님은 “출석은 보지 않겠습니다. 시험으로만 평가하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하셨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좋았어, 마음 편히 연습실로 돌아가자.”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몇 주 뒤, 교수님은 갑자기 출석을 부르시며 “수업 빠지는 학생들에게 경고한다”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내 나태한 일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게다가 교수님은 수업 때마다 슬라이드 프로젝트를 준비하라는 등, 내가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셨다. 억울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하소연하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수업에서 무단으로 빠진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혹시 내가 또 도망갈까 싶어 일부러 쉬는 시간마다 일을 시키셨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나를 괴롭히려던 것이 아니라, 내가 놓치고 있던 가능성을 붙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의 수업 덕분에 나는 미흡하게나마 건축의 역사와 맥락에 눈을 떴고, ‘공부의 의미’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형과 교수님, 두 사람은 내 인생의 은인이었다. 한 사람은 나를 건축의 길로 이끌었고, 또 한 사람은 그 길 위에서 도망치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놈팡이 같던 시절의 나는 그제야 비로소 건축학도의 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무모함과 방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 손끝에서 나는 ‘건축’이라는 길의 첫 단서를 쥐었다. 어쩌면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어느 시점이든, 우리의 여정은 결국 ‘누군가의 진심’에서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