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가 멈춘 자리에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나의 서양 건축사 성적은 처참했다. 그 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은 3학년 때 ‘서양 근대건축사’ 수업도 맡으셨는데, 그때 비로소 공부가 조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달라지고 싶었다.
교수님 보란 듯이 이를 갈며 공부했고, 결국 과 전체 2등으로 A+를 받았다.
어느 날, 교수님 연구실 앞에 붙은 성적표를 보고 있던 나를 그분이 우연히 발견하셨다.
“정훈아, 이리 들어와 봐라.”
교수님은 손수 커피를 내려 주시며 다짜고짜 물으셨다.
“이거… 진짜 네 실력이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이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공부하는 걸 보니 흥미가 있는 것 같네. 유학 갈 생각은 없나?”
그때 나는 고민도 없이 “아니요”라고 잘랐다. 그런 성적도, 그런 흥미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교수님은 틈만 나면 유학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다녔다. 결국 나는 동 대학원에 진학했고, 군대 가기 전 인사차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그분은 여전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프랑스도 좋고, 일본도 좋다. 한 번쯤 나가서 공부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나는 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2년쯤 흘렀고, 군복무도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살던 지역의 부대로 전근을 오게 되었고, 얼마 뒤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다.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부랴부랴 빈소를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 뒤부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청개구리 같은 객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유학.”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프랑스로 향하는 길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역 후 복학하지 않고 1년 남짓 준비 끝에, 결국 나는 프랑스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르노블이라는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이 놀라울 만큼 지독하게 공부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교수님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내가 공부에 자질이 있다고 하셨던 말은 그냥 한 말은 아니었구나.’
전역 몇 달 전, 서점에서 우연히 나의 은인인 형을 만났다. 서로 근황을 나누다가, 우리는 둘 다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발 몇 주 전,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도 그르노블이라고? 나도 유학원 추천으로 결정했는데, 이게 뭐야?”
형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나보다 한 달 먼저 프랑스로 떠났다.
각자 따로 계획을 세웠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같은 도시, 그르노블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어쩌면 형을 닮고 싶어 했기에 이렇게까지 같은 길을 걷게 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후에 나는 1 지망이던 툴루즈 건축학교에 무사히 합격했다.
몇 년 뒤, 어느 날 문득 교수님의 프로필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 역시 바로 이 툴루즈에서 박사과정을 하셨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우연 같았지만,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길을 미리 닦아두신 듯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했다.
“교수님, 결국 당신이 바라시던 길로 오게 됐네요.”
그때의 결심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었다.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것은 스승이 남긴 말과 마음이 시간을 건너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난 순간이었다는 것을.
길의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 기억의 방향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