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짓는 일

04. 아빠는 집을 그리는 사람이야

by Jeonghoon KIM

아들이 네 살 무렵부터 내게 묻기 시작했다.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그 짧은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하는 일을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도면 속 숫자와 선, 구조와 공간의 개념을 어떻게 말로 풀 수 있을까.

마침 우리 집 앞 길 건너편에 내가 설계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는 저런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야. 우리가 사는 이런 집도 아빠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거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이해한 듯 보였다.


며칠 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같은 건축가들이야!”
집을 만드는 사람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아빠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기보다, 집을 그리는 사람이야.”

그 말을 한 뒤부터 아들의 그림 속 주인공은 자주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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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다.
“집을 그릴 때 뭐부터 그려?”
“먼저 땅을 그려야지. 집이 있는 땅.”

그리고 정성스럽게 땅을 그린 후 색칠까지 완성한다.

그다음엔 집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기단부를 그리고, 문과 창문을 그린다.
지붕은 늘 비대칭 박공지붕이고, 꼭 굴뚝이 있다.

“지붕이 왜 기울어졌어?” 하고 물으면

“비가 오면 빗물이 잘 흘러내리게 하려고.”
아들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 날은 지렁이처럼 울퉁불퉁한 지붕을 그렸다.
이유를 묻자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빗물이 골고루 흘러내리게 하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적잖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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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건축가들 중에도 아름다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 다섯 살짜리 아이는 자신이 그리는 선 하나하나에 ‘기능적 이유’를 담고 있었다.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나름의 해결책까지 세운다.
그 어린 손끝이 전하는 생각의 깊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런 걸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려줬어?” 하고 묻자

“아니.”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얼마 전부터는 집의 내부를 그리기 시작했다.
1층에는 식당과 거실, 그리고 엄마 아빠 방, 2층에는 자기 방.
계단은 나선형이다.

밖에는 커다란 수영장도 있다.
자신이 본 집과 살고 싶은 집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섞어내며
그럴듯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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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집을 그리는 사람이 멋있어.”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아들이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
이 일의 모든 수고를 단숨에 보상해 주는 듯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축설계는 어쩌면 도면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누군가의 꿈을 그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그리는 집 속에는 언제나 문이 있다.
언젠가 그 문을 열고,
그 아이가 상상한 세상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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